▲ 김길수 논설위원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다. 묵은 한 해를 보내고, 병신(丙申)년의 첫날이 시작되는 날이다. 올해 병신(丙申)년은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의미를 갖고, 모든 게 치솟는 불길처럼 강하게 뻗어가는 기세와 열정을 품고 있다는 붉은 원숭이 해라고 한다. 모두가 한껏 새해에 대한 기대와 열망을 가져봐야겠다.
예로부터 설날이나 한가위 명절에는 헤어졌던 가족들이 모여 온정을 나누고, 함께 새해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날이었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한자리에서 서로에 대한 덕담을 주고받음은 물론, 한해의 안녕과 행복을 꿈꾸는 게 오랜 전통이자 풍속이었다.
특히 설날은 누구에게나 설렘과 기대로 한껏 부풀어 오르는 날이었다. 굳이 설날을 손곱아 기다리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요즘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 세월에도 설날은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을 던져주는 계기가 되는 날이었으니까.
지난 시간을 어렵고 힘들게 살았던 사람들도 ‘새해에는! 새해부터는!’ 하며, 새롭게 마음의 각오를 다지는 변곡점이 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요즘은 설이나 한가위 명절맞이가 너무 힘들고 어려워 아예 기피대상이 됐다고 한다. 가족 간의 갈등이 촉발되어 명절을 지나면 이혼청구건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거기다 2~30대 젊은이들에게도 이러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고 하니 새로운 풍속도(?)라 할 만하지 않을까? 이유야 뻔하다. 어느 분야 할 것 없이 모두 현실이 너무 각박하고 힘이 든다는 데서 비롯되는 일이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버그아웃(Bug-Out)족이란다. 버그아웃이란 말은 원래 전쟁이나 재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위의 부모나 친지들께서 어김없이 물어 올, 취업은? 결혼은? 출산은? 등등의 잔소리(?)가 듣기가 싫고, 마땅히 대답도 어려운 나머지 아예 가족모임을 피해 도망가는 부류들을 일컫는 말이라니 씁쓰레한 기분이다.
버그아웃 족들은 명절에 부모나 친지들과의 가족모임에서 삐지기 위해 각종 필계거리를 만든다. 여행을 간다거나, 수술 날찌를 잡기도 하고, 일부러 때맞춰 알바자리를 찾는 등, 모여야 할 시기에 오히려 헤어지려고 한다는 것이다.
청년들의 이런 행태가 이해되지 않는 거야 아니지만. 참 세상이 이렇게 변해가도 되는 것일까? 싶다. 도대체 우리의 정치지도자들을 비롯한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뭘 하고 있나? 싶은 푸념이 일기도 한다.
청년들의 희망절벽이니, 헬 조선이니 유행하는 언어에서 청년들의 심리적불안감이 느껴진다. 삼포세대니 오포세대라는 말은 이미 가마득한 옛날부터 유행해온 말이 아닌가!
이러한 현상에 더 놀라운 사실은, 각박한 세태에 편승하여 온라인 마트 등에서는 귀향하지 않고, 자취방이나 기숙사에 머무는 젊은이들을 위해 혼자 조리해서 먹을 수 있는 식료품세트까지 이미 출시하고 있다고 한다. 혼자라도 명절기분을 낼 수 있는 떡국, 라면, 부침가루 등 명절음식재료를 내놓고 있다니 약삭빠르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뛰어난 상술이라고 해야 할 지 헷갈린다. 은근히 이런 세태를 잘도 이용한다 싶어 일말의 거부감이 일기도 한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취업준비생을 위한 대피소까지 생겨났다는 메이저언론들의 전언이다. 취업준비생을 위해 외국어학원에서 명절대피소까지 개설 운영한다고 하지 않는가! 대형 강의실과 스터디 룸 등을 무료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참 묘한 세상으로 변해가는구나! 싶다.
아무쪼록 명절기피현상이 줄어드는 세상이 되어야겠다. 새해에는 이 땅의 모든 청년들이 현실에 너무 움츠리지 말고, 붉은 원숭이의 기운을 받아 더 큰 꿈과 의욕을 가지고 병신년 새해를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글 / 김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