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수 논설위원

한해를 마감하는 동지(冬至)다. 옛 중국 당(唐)나라까지는 한해가 시작되는 날이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까지는 당력(唐曆)의 영향을 받아 사실상 새해의 첫날인 설날이었다는 날이 아닌가!
동지(冬至)는 태양이 적도이남 23.5도의 동지선(남회귀선) 곧 황경(黃經) 270도의 위치에 있을 때라고 한다. 그래서 이날부터 밤의 길이가 짧아진다고 하니 한해의 첫 시작점으로 잡는 게 하등 이상할 게 없을 것 같다. 밤낮의 길이가 바뀜에 따라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도 새롭게 바뀔 수 있겠다는 아주 자연스러운 발상에서다.
지금도 대개 그렇지만 어릴 적에는 꼭 동지팥죽을 먹었다. 달콤한 팥죽에서 나이만큼의 새알을 먹어야 하고, 그래야 한 살을 더 먹는다는 이야기에 일부러 하나하나 새알을 세어가며 먹었던 기억도 난다. 나이도 한 살 더 먹고, 건강하게 한 해를 보낼 수 있다고 했다. 찹쌀로 빚은 새알심의 그 쫀득쫀득한 맛이 지금도 입안에 맴도는 기분이다.
팥죽을 끓여먹는 이유는 다들 알다시피 축귀(逐鬼)의 의미가 있다지 않은가! 팥의 붉은 색이 이를 싫어하는 잡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라고 한다. 어릴 적, 어머니는 정성껏 끓인 팥죽을 안방에다 큰 그릇 가득 담아 상위에 진열해 조상님께 고하고, 부엌, 장독대, 마루 밑, 헛간, 심지어는 변소까지 뿌리거나 갖다 두곤 하셨다. 이게 다 부정(不淨)을 예방하고 잡신들을 몰아냄과 아울러 기복(祈福)의 마음을 담은 우리의 전통 민속이었음을 철들어가며 알게 되었다.
올해는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세월호침몰이라는 미증유의 참사에다 경주리조트 체육관 붕괴사고 등 대형 참사가 한 둘이 아니었다. 모두 각종비리와 부조리에서 비롯된 인재(人災)였다는 점에서 가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는 참담함을 겪은 한해였다. 모두 법과 질서가 바로서지 않은데서 비롯된 일들이다. 법과 질서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실감한 한해였고, 정치지도자들을 비롯한 각급 지도층의 몰지각한 행태와 이기주의에다 흔히 말하는 ‘갑’질의 행태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는 한 해 이기도 했다.
그러니 누구하나 힘들지 않은 사람이 없다. 국가나 사회적으로도 그렇고, 침체된 경제적인 여건에다 각종 사회적 불안요소 때문에 국민 개개인 누구나, 모두모두 너무도 힘든 한 해를 겨우 겨우 보낸 것 같다.
그래서 오늘(12월22일), 동짓날에 팥죽을 먹으며 모든 걸 청산하는 기원을 올리자. 옛 민속대로 동지팥죽을 쑤어 대대적인 축귀의 퍼포먼스라도 열었으면 좋겠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맑고 청신한 기풍을 불러오도록 염원해야겠다. 그러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동지팥죽으로 전 국민이 각자 한 판 축제라도 벌이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하게 되면 다가오는 새해에는 좀 더 안정되고 평안한 한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 보다 밝고 동시에 인재를 줄이기 위해 가능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글 / 김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