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길수 논설위원

새해 연초, 어느 뉴스매체에서 통계청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나라 월별 이혼건수가 제일 많은 달이 7월이라는 보도를 한 바 있다. 2011년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조사한 내용이라고 하는데, 7월에 이혼한 건수가 1만 400건으로 다른 달의 평균 9천 500여 건에 비해 약 10%정도의 많은 수치라고 한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한 두 해가 아니고 해마다 같은 현상이 되풀이 된다는 점에서 일정한 경향(傾向)성을 띤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 7월인가?
전문가들의 분석결과는 대개 두 개의 원인을 들었다. 그중 하나는 설날에 빚어진 가정불화가 차츰 심화되다가, 대개 5월경에 이혼을 결심하게 되고, 법적 절차를 거쳐 정식 이혼에 도달하는 시기가 7월이라는 이야기다. 다른 하나는 4~50대의 경우, 자녀들의 학기 초 대학등록금을 해결한 후, 이를테면 경제적 문제를 한 고비 넘긴 후에 본격적으로 이혼절차에 착수하여 7월경에 이혼이 정리된다고 하는데 이게 거의 통설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설날을 전후하여 가정불화가 잉태되기 시작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왜냐하면 전통적으로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야말로 오랜만에 온 가족이 한데 모여 화목과 소통 그리고 단합을 이루는 시점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설날이 오히려 가정불화의 계기가 된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음은 물론, 우리의 전통명절이 평가절하 되는 것 같아 씁쓰레한 기분마저 든다.
우리의 설날을 생각해보자. 예나 지금이나 설날연휴를 기해 고향에 가기위한 귀성객들의 행렬만 보더라도 설 만큼 큰 멸절이 또 있는가? 귀성열차표를 구하려고 새벽부터, 아니 발매전날부터 줄서기 하는 모습을 얼마나 익숙하게 볼 수 있는가! 그렇게도 어렵게 이루어진 가족 간의 만남이 부부간의 불화를 일으키는 빌미가 된다니 참으로 기막힌 아이러니다.
이러한 현실은 부부간에 지켜져 온 전통적 가치관이 허물어진 결과라 해야겠다. 아내들의 사회진출이 많아지고, 남편과 아내의 역할분담이 달라졌음에도 구태의연한 자기주장을 하다 문제가 발생한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이는 한국남편들이 아내와 공평하게 집안일을 분담하는 비율이 북유럽 국가들의 절반수준이라는 조사 결과와도 무관치 않은 것 같다. 통계청의 '한국의 사회동향 2014' 보고서 집필자인 한경혜 서울대 아동가족학과 교수와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센터 장은, 같은 기사에서, 세계 12개국 남편들의 가사분담율도 함께 조사하여 위와 같은 가정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멕시코, 필리핀, 대만의 만 20세 이상 기혼남녀를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고 한다. 조사결과 집안일에 가장 소홀한 나라는 일본이고 다음이 우리나라인데 북유럽국가들에 비하면 그 비율도 현격하게 차이가 날만치 집안일을 등한시 한다는 것이다.
세탁, 식사준비, 장보기, 집안청소, 아픈 사람 돌보기, 소소한 집안수리 의 6개 항목을 조사했는데 소소한 집안수리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편들이 처리하는 비율이 낮았는데, 그중에서도 일본과 한국이 특히 낮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남자는 돈을 벌고, 여자는 가정을 돌봐야 한다는 성 역할 고정관념이 한국과 일본에 상대적으로 많이 남아있는 것이 이런 조사 결과를 불러온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이다.
평상시의 이러한 가사분담의 불균형에서 비롯된 일상의 앙금이나 불만이 명절을 맞아 대가족이 한데 모인데다, 제수준비 등 집중적인 가사로 인해 스트레스가 가중되다 폭발하는 결과가 가정파탄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설날이나 명절을 고유의 명절답게 보내려면 아내나 며느리의 가사분담을 덜어주는 지혜가 필요하겠다. 전통적인 사고방식대로 부엌일은 으레 여자가 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이제는 모두 버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명절이면 언론에서도 어김없이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간다. 명절이면 으레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이라는 말이 아주 자연스럽게 회자되고, 그로인해 누구나 낯익은 단어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이런 말이나 방송들도 너무 자주하다보면 가볍고 쉽게 생각하던 아내나 며느리들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피해의식을 느끼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말해 설날 명절이 즐겁고 행복한 날이 되어야 할 것임에도, ‘명절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인해 가정파탄이 온다면 이는 분명히 어딘가 잘못된 사회일 것이다. 설사 이혼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드러나지 않은 가정불화는 얼마나 많이 일어났을 것인지를 유추하다보면 정말 명절이 명절답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을미년 새해 설날이 코앞이다. 올 설날에는 모두모두 정말 즐겁고 행복한 설날이 되도록 미리미리 자신이 할 일을 챙겨야겠다. 남편은 남편대로, 아내는 아내대로 각자 할 일을 미리 챙긴다면 스트레스 받을 일이 줄어들거나 아예 없어지지 않을까? 그래서 모두가 웃을 수 있어야겠다. 소문만복래’(笑門萬福來)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글 / 김길수 부울경뉴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