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52회 <마지막 향연>
Symphony in C minor ‘Fate’

마지막 향연

선고일 하루 전 22:00
해운대와 울산 사이 해안도로변 숲속 외딴 펜션

간판도 없었다. 고급별장 같은 유럽풍의 하얀 단층양옥이었다. 보안등 세 개가 밝혀져 있는 펜션 정원에 하얀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거실 창문에서 바라보이는 먼 바다 수평선에도 하얀 달빛이 내려앉아 은빛 주단주름처럼 반짝였다.

거실 전등은 꺼져있고 대신 직사각형 원목식탁 모서리마다 세워진 은촛대에 빨간 양초 촛불 네 개가 밝혀져 있었다. 식탁 위에는 먹다 남은 술안주 등 음식접시와 거의 다 비워진 양주병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양주병 옆에 1회용 필로폰주사기 하나도 보였다.

― 오늘의 마지막 향연이 남았어요. 자, 이제 침대로 가세요.

박영애가 최경호의 한 팔을 들어 어깨에 걸치고 부축하듯 일으키며 말했다. 두 사람 모두 잠옷 차림이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반투명 실크잠옷 안에 비치는 박영애의 육감어린 몸매가 촛불처럼 고혹적으로 일렁거렸다. 이미 술과 마약에 취한 최경호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풀려 있었다.

박영애가 최경호의 팔을 부축하여 안방으로 가서 침대에 뉘었다. 침대 머리맡 빨간 조명등을 켠 박영애가 최경호의 잠옷을 벗기며 속삭이듯 말했다.
― 자, 오늘 밤은 정말 천국으로 보내 드릴게요.

이때 최경호는 꿈결처럼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 아니, 오늘 천국으로 갈 사람은 내가 아니라 네 년이야. 지금까지 모든 것은 네 년의 소행이었어. 죽은 김인환의 목에서 내 머리카락이 발견된 것도, 네 년이 유지연에게 5억 원을 받은 것도, 지금까지 정해현의 돈을 빼돌리라고 한 것도, 모두 네 년이 날 조종한 것이었어. 내가 모를 줄 알았지.)
― 아이, 왜 이래요. 눈을 떠보세요.

(― 마지막 향연이라고? 그래, 지금 이 시간 네 년을 마지막으로 품은 후 너는 네 손에 목을 졸여 죽게 된다. 아니, 삽입을 한 채로 절정의 순간에 네 년의 목을 조를 거야. 그러면 정말 천국으로 가는 기분이겠지. 그런데 왜 이럴까? 왜 자꾸 눈이 감길까? 왜 이렇게 잠이 쏟아지지? 턱과 혀는 왜 자꾸 굳어질까?)

― 아이, 눈을 뜨고 절 똑똑히 보세요. 아름다운 내 몸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천국으로 가야하지 않겠어요?
최경호의 잠옷을 모두 벗긴 박영애가 스스로 잠옷을 벗고 나신으로 최경호의 페니스 골반을 걸터앉은 자세로 말했다.

(―이년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그런데 정말 왜 이럴까?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어.)
― 지금까지 당신이 먹은 음식과 술에는 많은 수면제가 들어있었어요. 치사량이 넘는 양이죠. 신경안정제도 몇 알 넣었고요. 그러나 벌써 잠들면 안돼요. 천국에 가기 전에 내 얘기는 듣고 가야지요.

(― 뭐라고? 왜? 네가 나한테 왜 이래?)
가까스로 눈을 뜬 최경호의 동공이 커졌다.
― 그래요. 날 똑바로 봐요. 벌써 잠들면 안돼요. 왜냐고요?
최경호가 반쯤 입을 벌리고 눈을 끔벅였다.

― 그래요. 말해 줄게요. 옛날, 옛날, 옛적에 배우를 꿈꾸는 한 소녀가 있었어요. 여고를 졸업한 어느 날, 소녀는 어느 연예기획사에 오디션을 보러 갔지요. 그날, 현장실습을 해야 한다는 기획사의 말에 속아 소녀는 어느 룸살롱에 따라갔지요. 그곳에서 소녀는 성폭행을 당하고, 강제로 마약을 주사 맞고, 그 후 그곳에 갇혀 2년간이나 윤락행위를 강요당해야 했어요.
최경호의 눈빛이 공포로 일그러졌다.

― 그뿐인 줄 아세요. 그들은 그 소녀를 마약범으로 몰아 검찰에 넘겼어요. 검찰의 마약범 검거 실적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죠. 폭력인신매매 조직과 검찰이 짝짜꿍하고 있었던 거지요. 그런 일을 당신들은 ‘밀대질’이라고 하지요.

박영애가 침대에서 내려가 옷장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꺼내 입었다. 박영애가 침대에 걸터앉아 최경호를 바라보았다. 그사이 잠이 들었는지 최경호의 눈은 다시 감겨 있었다. 박영애가 최경호의 뺨을 손바닥으로 토닥이며 혼잣말처럼 계속 말했다.

― 벌써 잠들면 안 돼요. 내 얘길 끝까지 들어야지요. 그 후 소녀는 마약범으로 몰려 3년간이나 교도소에 있었어요. 지독한 고문도 당했고요. 이제 내가 왜 이러는지 아시겠지요. 당신과 박형기가 가짜 연예기획사를 차려놓고 배우를 꿈꾸는 여자들을 윤락가에 팔아넘기고, 송철준이 그 여자들을 감금해 놓고 마약과 윤락행위를 시키고, 또 김인환의 검거 실적을 만들어주기 위해 마약범으로 넘기고……. 내 얘기 듣고 있어요?

그러나 최경호는 완전히 잠이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슴이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죽은 줄로 알 것 같았다. 박영애가 최경호의 귀에 바짝 입을 갖다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 이제 당신들은 그 죗값을 치러야지요. 아시겠어요. 오늘을 위해 내가 당신의 여자가 되고, 유지연이 박형기의 여자가 되었어요. 당신과 박형기가 통장에 넣어준 돈은 그동안의 보상으로 받을게요. 자, 이제 정말 천국에 갈 시간이에요. 당신들의 속된 말로 제삿날이라고 하지요. 천국에 먼저 가있는 김인환에게 전하세요. 정해현도 곧 그곳에서 만나게 될 거라고요.

박영애가 일어나 다시 거실로 나왔다. 핸드백에서 휴대전화를 꺼낸 박영애가 폴더를 열었다.

*

선고일 하루 전, 같은 시간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가 열린 창문으로 불어오는 습기 머금은 바닷바람을 깊숙이 들여 마셨다. 사내는 호텔 객실에서 어울리지 않게 검은 안경에 수술용 고무장갑을 끼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닿을 정도로 길게 자라 있었다. 사내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는 표시가 깜빡거렸다.

사내가 폴더를 열었다. 휴대전화의 화면에는 단지 ! 표시 하나가 들어와 있을 뿐이었다. 사내가 방문을 나섰다. 호텔 복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비상계단을 걸어 호텔 지하주차장으로 갔다. 사내가 주차장에 있는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사내의 차는 어느덧 호텔을 벗어나 굽이치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선고일 하루 전 23:40
해운대와 울산 사이 해안도로변 숲속 외딴 펜션
사내의 차가 열려있는 대문을 통과하여 마당에 멈췄다. 사내가 차에서 내려 현관문에 이르는 낮은 계단을 오를 때 문이 안에서 열렸다. 사내가 안으로 들어갔다. 박영애가 사내를 맞아 안방으로 인도했다. 안방 침대 위에 최경호가 나신으로 누워 있었다. 최경호는 전혀 의식이 없었다.

박영애가 사내의 도움을 받아 장롱에서 꺼낸 최경호의 속옷을 입히기 시작했다. 사내가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맨 최경호의 팔을 어깨 뒤로 돌려 세워 부축하여 거실로 나왔다. 여자가 다른 방으로 들어가 어깨끈이 달린 노트북 가방을 들고 나왔다. 여자가 먼저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사내가 타고 온 차의 뒷문을 열었다.

사내가 최경호를 부축하고 현관문을 나와 뒷좌석에 태웠다. 박영애가 들고 나온 노트북 가방을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가 시동을 걸자 박영애는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 펜션을 빠져나갔다. 사내의 차는 어느덧 해운대 마린시티호텔로 가는 해안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선고일 00:20
마린시티호텔 지하 3층 주차장
사내의 차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주차구역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사내가 차에서 내렸다. 사내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 사내가 다시 차로 돌아와 조수석에 놓인 노트북 가방을 왼쪽 어깨에 울러 메고 뒷좌석에 쓰러져 있는 최경호를 부축하여 엘리베이터로 갔다.

사내가 당도하자 미리 눌러놓은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며 문이 열렸다. 축 늘어진 최경호를 부축한 사내의 모습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사라졌다. 8층에서 멈춘 엘리베이터에서 최경호를 부축한 사내가 나타나 804호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고일 00:3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호택 객실 침대에 최경호를 눕혔다. 그때까지도 최경호는 여전히 의식이 없었다. 사내가 객실 응접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검은 서류가방을 열었다. 가방 속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그 주사기에는 이미 주사액이 채워져 있었다.

사내가 주사바늘의 뚜껑을 뽑았다. 사내가 침대에 누워있는 최경호의 왼팔을 들어 올려 와이셔츠 소매를 걷고 주사바늘을 꽂았다. 주사액이 천천히 근육 속으로 스며들었다. 사내가 빈주사기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선고일 00:4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욕실로 들어가 욕조 샤워기를 틀었다. 욕조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사내는 물을 그대로 틀어 놓은 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사내가 침대 위에 누워있는 최경호를 다시 일으켜 객실 응접소파에 앉혔다. 사내가 응접탁자 위에 놓인 노트북 가방에서 먼저 휴대전화 하나를 꺼내고 노트북을 꺼냈다. 사내가 노트북을 열고 전원을 켰다.

노트북에 한글파일 화면이 켜졌다. 사내가 최경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한 팔을 뒤로 돌려 끌어 앉듯 최경호의 두 손을 양손으로 잡았다. 사내가 의식이 없는 최경호의 손가락을 잡아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사내가 자판을 두드릴 때마다 화면에 한글이 하나씩 나타났다. 작업을 마친 사내가 노트북의 한글파일 저장버턴을 눌렀다.

선고일 00:5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켜진 노트북을 탁자 위에 그대로 둔 채 최경호를 일으켜 다시 침대에 눕혔다. 사내가 다시 욕실로 갔다. 욕조에는 물이 2/3 가량 채워져 있었다. 사내가 샤워기를 잠갔다.

욕실에서 나온 사내가 최경호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사내가 벗겨진 옷을 호텔 옷장 옷걸이에 단정하게 걸었다. 사내가 여전히 의식이 없는 최경호의 벌거벗은 몸을 일으켰다. 사내가 최경호의 팔을 어깨 위로 돌려 부축하여 욕실로 끌고 갔다.

사내가 최경호의 나신을 천천히 욕조에 담갔다. 최경호의 몸이 완전히 욕조에 담기자 물이 금방 밖으로 흘러넘칠 것처럼 찰랑거렸다. 사내가 다시 욕실에서 나와 탁자 위에 놓인 가방 속에서 빈주사기와 캡이 달린 면도날을 꺼냈다.

사내가 그것을 들고 다시 욕실로 갔다. 사내가 욕조에 담긴 최경호의 오른손 검지와 중지 사이에 주사기를 끼우고 엄지를 주사기 머리 위에 얹었다. 사내가 최경호의 오른손을 잡고 자기의 엄지손가락을 최경호의 엄지손가락 위에 얹었다. 사내가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어 주사기 머리를 눌렀다. 사내가 주사기가 들린 최경호의 손을 욕조 바깥으로 내밀어 주사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이번에는 사내가 면도날을 최경호의 오른손 엄지와 검지, 중지를 붙인 세 손가락 사이에 끼웠다. 사내의 왼손이 욕조에 담긴 최경호의 왼팔을 들었다. 사내가 최경호의 오른 손등을 감싸 쥐면서 엄지와 검지, 중지를 자기의 같은 세 손가락으로 단단하게 부여잡았다.

사내가 면도날로 최경호의 왼팔 손목 동맥을 깊게 절단하였다. 사내는 피가 흐르는 최경호의 왼손을 욕조 속에 담갔다. 최경호의 오른손에 들린 면도날을 욕조 안에 떨어뜨렸다. 욕조에 담긴 물은 이내 빨간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내가 욕실 밖으로 나왔다.
 

선고일 01:0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응접탁자 위에 놓인 검은 서류가방을 다시 열었다. 사내가 가방에서 비닐로 감싼 수건뭉치 하나를 꺼냈다. 사내가 그것을 풀기 시작했다. 수건 속에서 피가 응고된 면장갑과 망치가 나왔다. 사내가 탁자 위에 수건을 펼치고 그 위에 면장갑과 망치를 가지런하게 놓았다.

사내가 다시 가방에서 하얀 사각봉투 하나를 꺼냈다. 사내가 봉투 속에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사내가 봉투를 탁자 위에 놓고 사진을 그 봉투 위에 놓았다. 사내가 다시 가방에서 소형녹음기를 꺼내어 사진 위에 놓았다.

선고일 01:1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노트북 가방에서 꺼내 놓은 휴대전화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욕실로 들어갔다. 욕조는 붉은 핏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내가 최경호의 오른손 팔을 들어 올려 손목의 맥을 짚었다. 사내가 최경호의 코앞에 바짝 얼굴을 들이밀었다. 최경호의 맥과 호흡이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한 사내가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폴더를 열었다. 사내가 전화번호를 누른 후 곧 호흡이 멎을 듯 힘겨운 발음으로 말했다.

― 마지막 정보, 마린시티호텔 804호.

사내가 욕조에 담긴 최경호의 왼손에 휴대전화를 쥐어주었다. 사내가 최경호의 손을 놓았다. 최경호의 왼손이 다시 욕조에 빠지면서 휴대전화가 켜진 채로 욕조에 빠졌다.

선고일 01:15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사내가 다시 욕실에서 나왔다. 사내가 도어의 잠금장치를 하고는 문을 열고 나갔다.

선고일 01:20
마린시티호텔 1층 로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사내가 나왔다. 로비를 가로질러 나간 사내가 출입문으로 가지 않고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비상구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 안녕히 가십시오.
1층 로비 프런트에 있던 신경민이 사내를 발견하고 큰소리로 인사했다. 사내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그대로 걸어가면서 왼손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라미를 만들어 뒤를 향해 살짝 들어보였다. 신경민이 빙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고일 01:30
마린시티호텔 지하 3층 주차장
사내가 다시 지하 3층 주차장에 나타났다. 사내가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사내의 차가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나갔다.

선고일 01:40
마린시티호텔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해안도로변 갓길 공터
사내가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도로 아래 절벽에서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소리가 들렸다. 사내가 그때까지 끼고 있던 수술용 고무장갑을 벗어 호주머니에 넣었다. 사내가 끼고 있던 검은 안경을 벗었다. 사내가 머리카락을 잡아 당겼다. 사내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긴 장발가발이 떨어져 나왔다.

구름에 가려 있던 달이 나타났다. 사내의 얼굴이 달빛에 드러났다. 사내는 KNB방송국 보도부장 유철주였다.

유철주가 다시 차에 올랐다. 막 시동을 켜려는 순간, 맞은편 반대차선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헤드라이트 불빛이 보였다. 그 차가 유철주의 차를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 차는 KNB방송국 보도국의 현장실황 중계차량이었다.

선고일 01:50
마린시티호텔 1층 로비
― 804호실 투숙객이 누구입니까?
정시영이 호텔 로비 프런트에 있던 신경민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 왜 그러시는데요?
신경민이 정시영 뒤에서 무거운 카메라를 어깨 위에 올려놓은 카메라기자를 보고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 804호실 보조키 있지요? 빨리 804호실로 갑시다.

선고일 02:0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신경민이 보조키로 804호실의 문을 열었다. 정시영과 카메라기자가 먼저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신경민은 따라 들어가지 않았다. 카메라기자가 실내 전경을 찬찬히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응접탁자 위에 놓인 물건에 초점을 맞췄다. 탁자 위, 펼쳐진 수건 위에 놓인 응고된 피가 묻은 망치와 면장갑이 카메라에 잡혔다. 하얀 사각봉투 위에 놓인 사진과 소형녹음기가 잡혔다. 켜진 채로 있는 노트북 화면이 잡혔다.

정시영이 욕실 문을 열었다. 붉은 핏물로 가득 찬 욕조 속에 한 사내의 시신이 잠겨 있었다. 정시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카메라기자가 욕조 속에 잠겨있는 사내의 시신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카메라 화면에 정시영의 얼굴이 나타났다.

선고일, 위 같은 시간
마린시티호텔 1층 로비
프런트 안쪽 벽 아래에 놓인 작은 TV 화면에 정시영의 얼굴이 나타났다. TV를 보고 있던 신경민이 휴대전화를 꺼내어 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 박 경위님. 마린시티호텔 신경민입니다.

선고일, 위 같은 시간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마이크를 잡은 정시영이 말했다.
― 여기는 부산 해운대에 있는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입니다. 김인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어 지명 수배된 정해현 의원의 전보좌관 최경호의 시신이 김인환 씨가 살해되었던 바로 이곳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804호실의 현장모습입니다.

화면이 바뀌고 최경호의 시신이 잠겨 있는 욕실현장이 나타났다. 욕조 안 붉은 핏물 속 정경이 모자이크로 처리되어 화면에 나타났다. 정시영의 멘트가 다시 이어 졌다.
― 지금 보시는 화면은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욕실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최경호의 시신은 핏물이 가득 찬 욕조에 잠겨 있습니다.

다시 화면이 바뀌고 응접탁자에 초점을 맞춘 실내현장이 나타났다. 정시영의 멘트가 다시 이어 졌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이곳 804호실 응접탁자 위에는 휴대용 노트북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펼쳐진 수건 위에는 망치와 피 묻은 면장갑이 있고, 다시 그 옆에 놓인 소형녹음기 아래에는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이 사진이 어떤 사진인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카메라가 사진에 초점을 맞춰 확대했다. 정시영의 멘트가 다시 이어졌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사진 속의 인물은 김인환 씨의 살해 혐의로 오늘 선고를 앞두고 있는 피고인 박형기입니다. 이 사진은 목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김인환 앞에서 범행 도구로 보이는 칼을 들고 있는 박형기의 모습입니다.

카메라가 다시 녹음기를 비췄다. 정시영의 멘트가 계속 이어졌다.
― 보시는 화면은 휴대용 녹음기입니다. 여기에서 이 녹음기에 어떤 내용이 녹음되어 있는지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정시영이 녹음기의 재생버턴을 눌렀다. 정시영이 마이크를 녹음기스피커 앞 부문에 바짝 갖다 대었다. 스피커에서 탁하고 화난 음성이 흘러나왔다.
“무슨 일이야?”
“바로 작업에 착수하겠어. 지금 바로 처치해 버리겠어.”

“그래, 자식아. 죽여 버려. 반드시 죽여 버려! 그 벌레보다 못한 인간, 그 인간이 나 대신 의원이 되는 것을 내가 어떻게 보고 있어. 내 자리를 빼앗아간 그 인간! 없애 버려!”

잠시 끊어졌던 녹음기에서 다시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 경호다. 씨팔. 그래 내가 니 시키는 대로 김인환의 목을 따 놓았다. 이제 속이 시원하냐? 씨팔.”
“그래? 김인환의 목줄을 끊었다는 말이지? 정말, 수고 하셨소. 최 보좌관님, 정말 장한 일을 했소.”

― 카메라, 여기를 비춰 주세요.
녹음소리가 완전히 멈추자 이번에는 정시영이 탁자 위 노트북을 가리키며 말했다. 카메라가 노트북에 초점을 맞췄다. 정시영의 멘트가 다시 이어 졌다.
― 보시는 화면은 휴대용 노트북입니다. 지금 이 노트북은 켜진 채로 화면이 나타나 있습니다. 본 기자가 노트북 화면에 나타난 글의 전문을 읽어보겠습니다.
카메라가 노트북 화면을 확대하여 비췄다. 정시영이 화면에 나타난 글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 양심선언, 저는 오늘 죽음으로 죗값을 치르고자 합니다. 김인환은 저와 박형기가 살해했습니다. 선거에서 패배하자 정해현은 김인환을 없애라고 우리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망치로 김인환의 머리를 때리고 박형기가 칼로 목을 베었습니다. 고 홍한일 박사님 사건도 정해현이 공천을 받기 위하여 저와 송철준을 시켜 조작한 것입니다. 정해현은 죽어 마땅한 인간입니다.

저는 이제 죽음으로 홍한일 박사님과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자살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 마약을 주사하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었습니다. 저는 이제 곧 죽음의 문턱에 와 있습니다. 제가 김인환을 살해한 바로 이 장소에서 죽음으로써 그동안에 제가 저지른 모든 죄가 씻어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최경호 드림.

선고일 02:10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 현장을 통제해.
갑자기 도어가 활짝 열리며 카랑카랑한 김용훈 검사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경일과 최수환이 뛰어나와 정시영과 카메라기자를 밖으로 쫓아냈다.

*

선고일 09:00
변호사 박기영 법률사무소
― 곽형일 판사님 부탁드립니다.
― 예, 곽 판사입니다.
― 판사님, 오늘 선고가 있는 피고인 김준하의 변호인 박기영 변호삽니다. 이미 보도를 보셨겠지만, 오늘 선고를 연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변호인의 뜻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선고 여부는 재판부가 결정할 일입니다.

*

선고일 10:00
부산지방법원 제000호 형사법정
―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 200×고합1279 살인. 피고인 김준하. 박형기.
― 예.
― 예.
― 선고하겠습니다. 먼저 피고인 박형기.
― 예.

― 피고인은 무죄를 항변하고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 및 이 법정에서 나타난 증거에 의하면 피고인의 유죄는 인정됩니다. 특히 피고인의 범행이 피해자의 목을 절단하는 잔혹한 수법에 의한 점을 이 법원은 고려합니다. 또한 피고인이 10억 원이라는 거액을 받고 범행에 가담한 점, 범행이 발각되기 전 미국으로 도주하고자 했던 사정을 이 법원은 특별히 주목합니다.

또한 이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것은 아니지만, 이미 보도된 공지의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피고인은 유죄라는 사실을 이 법원은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고하겠습니다. 피고인 박형기를 징역 15년에 처하고, 범죄수익금 10억 원을 추징한다. 다음으로…….

곽 판사가 잠시 말을 멈추고 준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준하가 곽 판사를 향해 공손한 태도로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곽 판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고 준하의 이름을 호명했다.
― 피고인 김준하.

준하는 말했다. 어느 누구도 나를 심판할 수 없다고. 이제부터는 내가 그들을 심판할 것이라고. 그러나 이러한 준하의 공언은 현실 앞에는 무력하다. 이제 준하도 어쩔 수 없이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고내용이 무죄이던, 유죄이던 이제 준하는 어쩔 수 없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를 탓하지 말자. 설사 그에게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이자. 그의 말대로 신명나는 한판 굿이었으니까.

― 예.
대답하는 준하는 흔들리지 않았다. 마지막 선고를 앞두고도 여전히 여유롭고 당당했다.
― 피고인 김준하에 대한 선고를…….
선고를 하겠다는 곽 판사의 말이 막 떨어질 찰나였다.

― 잠깐만요. 재판장님!
어디선가 다급하게 큰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곽 판사, 배석판사, 입회서기, 기영, 방청석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법관 출입문을 통하여 법원직원 한 명이 황급히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

직원이 숨을 몰아쉬며 들어와 입회서기에게 서류 한 장을 건넸다. 입회서기가 일어나 그 서류를 곽 판사에게 건넸다. 서류를 살펴본 곽 판사가 양쪽 배석판사와 낮은 소리로 의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곽 판사가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 피고인 김준하에 대하여는 방금 검사의 공소취소서가 이 법원에 접수되었습니다. 형사소송법 제255조는 공소는 제1심 판결의 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고, 이러한 공소취소에 대하여 형사소송법 제328조는 판결이 아닌 결정으로 공소를 기각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본 재판부는 피고인 김준하에 대하여 재판권이 없습니다. 이상 선고를 마치겠습니다.
 

*

선고일 17:00
여의도 국회의사당 국회의장실 앞
― 여기는 현재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KNB방송 보도국 임시취재본부입니다. 헌정 사상 초유의 현역 국회의원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하여 체포동의안이 발부된 가운데 이제 조금 있으면 국회의원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회의사당 내 국회의장실 앞에 나가 있는 정시영 기자를 불러보겠습니다. 정시영 기자 나와 주세요.

― 예, 여기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국회의장실 앞입니다.
― 정시영 기자, 곧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당사자인 정해현 의원은 현재 어디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 예, 현재 정해현 의원은 이곳 국회의장실에 머물면서 자신에 대한 체포동의안의 가결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 정작 당사자인 정해현 의원은 자신에게 씌워진 혐의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가요?
― 현재 정해현 의원이 머물고 있는 국회의장실에는 보도진의 출입을 차단하고 있어 취재가 불가능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정해현 의원은 오늘 새벽 시신으로 발견된 전보좌관 최경호가 자살할 이유가 없으며, 최경호는 누군가에 의하여 타살된 것이고, 특히 자기에게 씌워진 혐의는 누군가의 음모에 의한 누명이라고 항변하고 있다고 합니다.

― 정시영 기자, 오늘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기까지의 경위에 대하여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 예, 오늘 체포동의안이 발부되게 된 계기가 된 김인환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저희 KNB방송 보도국이 ‘마지막 정보, 마린시티호텔 804호’라는 음성메시지를 받은 시점이 오늘 새벽 2시경이었습니다. 이에 저희 KNB방송 취재진은 즉각 이 음성메시지가 알려준 마린시티호텔 804호실로 긴급 출동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본 취재진이 최초로 최경호 전보좌관의 시신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또한 저희 취재진은 오늘 여러 차례 보도된 바와 같이 이곳에서 최경호가 자살하기 직전 작성한 양심선언문과 최경호가 정해현 의원을 살해하는데 사용한 망치를 발견하였고, 특히 현재 정해현 의원의 체포동의안 상정의 결정적 증거가 된 정해현 의원이 직접 김인환을 살해하도록 지시하는 음성이 녹음된 녹음기를 단독으로 입수하여 보도하였던 것입니다.

― 정시영 기자, 이와 같이 오늘 체포동의안이 상정되기까지는 저희 KNB방송 취재진의 신속 정확한 보도가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희 KNB방송의 보도 이후 검찰이 취한 조치를 정리해 주시겠습니까?

― 예, 저희 KNB방송 취재진의 보도 이후 검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들이 조작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밤을 새워 그 분석 작업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발견된 노트북과 휴대전화가 최경호 전보좌관이 사망하기 전 평소 사용하던 것임이 밝혀지고, 김인환 피살 사건의 공판 과정에서 쟁점이 되었던 범행도구로 사용된 피 묻은 망치가 현장에서 발견됨에 따라 최경호의 죽음을 자살로 추정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검찰은 공교롭게도 김인환의 살해 혐의로 기소되어 오늘 선고가 예정되어 있던 피고인 김준하에 대한 공소취소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고,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에 따라 최경호에게 살인을 지시한 정해현 의원에 대하여 체포동의안을 발부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 정시영 기자, 이 체포동의안의 발부는 누가 하였다고 하는 가요?
― 예, 이번 김인환 피살 사건을 담당하였던 부산지방검찰청 김용훈 부장검사가 직접 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김용훈 검사는 체포동의안의 가결 여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정해현 의원과는 같은 고등학교 같은 반에서 수학한 동창이라고 합니다.

― 정시영 기자, 현재 국회의사당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헌정 사상 초유의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 회기 중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것 같습니까?

― 예, 일단 이 사건이 어떤 정치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정적에 대한 살인교사라는 정해현 의원의 개인범죄라는 점에서 체포동의안은 무난하게 통과되지 않을까하는 분위기입니다. 야당은 물론이고 정해현 의원이 속한 여당 또한 체포동의안의 찬성을 당론으로 채택했다는 소식이 방금 있었습니다. 아, 지금 체포동의안의 가결에 대비하여 정해현 의원의 신병을 인수할 수사진이 방금 도착하였습니다.

― 정시영 기자, 지금 화면에 보이는 사람들이 신병을 인수할 수사진인가요?
― 예, 방금 체포동의안을 발부한 김용훈 검사가 직접 수사진과 함께 도착하여 정해현 의원이 머물고 있는 국회의장실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 수사진이 도착하였다면 곧 체포동의안의 상정이 있겠군요?
― 예, 방금 국회의장이 체포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하여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럼 마이크를 국회 본회의장에 나가있는 유철주 보도부장에게 넘기겠습니다.

선고일 17:30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 지금 저희 KNB방송 보도국은 헌정 사상 초유의 현역 국회의원에 대한 국회 회기 중 체포동의안이 가결될 것인가의 여부에 대하여 생중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국회 본회의장에 나가 있는 유철주 보도부장을 불러 보겠습니다. 유철주 부장, 나와 주세요.

― 예, 여기는 국회 본회의장입니다.
― 방금 국회의장이 체포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하여 의장실을 나섰는데요. 지금 의장님이 본회의장에 도착하였습니까?
― 예, 지금 국회의장께서 본회의장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선고일 17:35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 방금 국회의장께서 체포동의안을 상정하기 위하여 의장석에 섰습니다. 잠시 의장님의 말씀을 들어보겠습니다.

―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그리고 동료의원 여러분. 저는 지금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들의 동료의원 한 사람이 선거에서 졌다는 이유로 살인을 교사하여 결국 당선자가 살해된 의정 사상 미증유의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참담하고 부끄러울 뿐입니다. 국회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으로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어린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상정합니다. 의원 여러분은 동의 여부에 대하여 기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유철주 부장, 방금 체포동의안이 상정되었군요?
― 예, 그렇습니다. 지금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마련된 기표소에 투표하기 위하여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 유철주 부장, 투표에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요? 결과는 언제 나올 것 같습니까?
― 예, 의원들이 무사히 투표를 마치면 약 30분 후에는 그 가결 여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유철주 부장, 수고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잠시 오늘의 이 상황에 대하여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서울역에 나가 있는 보도차량을 불러 보겠습니다.

선고일 18:10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
― 유철주 부장, 다시 나와 주세요?
― 예, 여기는 국회 본회의장입니다.
― 체포동의안에 대한 개표가 완료되었습니까?
― 예, 조금 전 개표를 마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국회의장이 발표를 위하여 의장석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의 가결 여부를 발표하겠습니다. 총 투표수 284표, 전원의 만장일치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선고일 18:30
여의도 국회의사당 내 국회의장실 앞
― 정시영 기자, 나와 주세요.
― 예, 여기는 국회의장실 앞입니다.
― 조금 전에 정해현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었는데요. 정해현 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의 집행준비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 예, 체포동의안의 가결 소식이 정해현 의원이 머물고 있는 이곳 국회의장실에 방금 도착하였습니다. 곧 체포영장 집행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 방금 의장실 문이 열리고 체포영장을 집행하러 왔던 부산지방검찰청의 김용훈 검사가 나오고, 그 뒤로 부산 해운대경찰서 소속 박경일 경위와 최수환 경위의 호위를 받으며 나오는 정해현 의원의 모습이 보이고 있습니다.

선고일 18:40
변호사 박기영 법률사무소
사무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던 기영은 일어섰다. 결국 준하가 의도했던 것은 이것이었구나. 준하의 마지막 살풀이춤은 이것이었구나. 준하는 자신의 공언대로 어느 누구로부터도 심판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심판했다.

용훈의 꽹과리와 기영이 울린 징은 그 심판을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구나. 그런데 준하는 최경호의 자살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선고를 앞두고서도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일까? 문득 떠오르는 의문과 함께 기쁨보다는 깊은 허탈감이 밀물처럼 파고들었다. 엄청난 피로감이 한꺼번에 엄습했다.

이런 날, 그 소녀가 함께 있었다면…….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51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연재 제53회 <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은 2019. 10. 21.(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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