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45회 <증거를 인멸하라>
Symphony in C minor ‘Fate’

증거를 인멸하라

제발 무사해야 할 텐데……. 자정이 임박한 시간이라 차가 막힐 염려도 없었다. 원활한 교통 흐름이라면 부민동 변호사사무실에서 남포동까지는 불과 십여 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거리였다. 전방에 법원 앞 사거리신호등이 보였다. 저 신호등에 걸려 버리면 늦을지도 모른다. 기영은 소통이 조금 더 원활한 1차선으로 끼어들었다.

빵, 빵. 뒤에서 헤드라이트 불빛이 번쩍거렸다. 신호등이 바뀔 찰나였다. 앞에 차 세 대가 있었다. 제발, 빨리 가자! 그러나 앞차는 느림보로 꾸물댔다. 신호가 바뀌었다. 앞 선 두 대는 교차로를 지나갔으나 바로 앞차가 속도를 늦추면서 정지선 앞에 멈추고 있었다. 안 돼. 그대로 달려!

기영은 비상등을 켜고 다시 2차선으로 끼어들어 사거리교차로를 그대로 달려 나갔다. 빵빵, 빠아앙, 옆에서, 뒤에서, 맞은편에서 요란한 경적과 함께 헤드라이트가 번쩍거렸다. 기영의 차로 인해 사거리 교통이 완전히 뒤엉켜 버렸다. 욕하는 소리가 귀에 왕왕 울리는 듯 했다. 너무 긴장하고 조바심을 낸 탓에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했다.

사거리를 벗어나 속도를 올려 왼쪽으로 거의 직각으로 꺾어진 2차선 도로로 접어들었다. 그쪽이 지름길이었다. 그런데 도로를 꺾어 돌자마자 앞에는 차들이 빽빽하게 멈춰서 도로는 마치 주차장 같았다. 앞쪽에서 경찰들이 붉은 경광봉을 들고 차량통제를 하고 있었다. 앞에 멈춰 서 있는 차는 스무 대가 넘을 것 같았다.

사고가 났나? 아니었다. 2차선 도로를 아예 봉쇄하고 음주단속을 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에! 이미 기영의 차 뒤에도 차가 몇 대 따라붙고 말았다. 도로는 외길, 옆으로 벗어날 수도, 뒤로 돌릴 수도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차를 멈추고 음주단속 순서를 기다려야했다. 기영은 스스로 화가 나 손바닥으로 운전대를 내려쳤다.

*

이 시간, 남포동 소재 동명빌딩 25층 2516호 부일물산(주)

정해현은 오후부터 비밀 비즈니스 룸으로 사용하는 이곳에 나와 있었다. 초저녁부터 혼자 찔끔거리며 양주 한 병을 거의 다 비웠다. 술로도 초조감을 달랠 수 없어 송철준이 보내준 딸 같은 어린 여자 둘과 격렬한 섹스를 하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자정이 임박한 시간인데도 여전히 기다리는 소식은 오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조바심으로 가슴은 꽉 조여오고 입안은 바짝 메말라 왔다. 그때 드디어 휴대전화가 울렸다. 급하게 폴더를 열었다.

― 의원님, 방금 그 계집을 찾았답니다.
― 그래! 어디에서?
― 남포동에 있는 소피아라는 카페랍니다.
― 등잔 밑이 어둡다고, 바로 지척에 있었군. 그래, 검찰이나 경찰이 눈치 챈 것은 아니겠지?
― 그건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바로 애들을 보내어 그년을 잡아오겠습니다.

― 애들을 보내어 일이 되겠나? 송 회장이 직접 나서야지. 잡아올 필요도 없어. 쥐도 새도 모르게 바로 없애버려.
― 그년이 최경호와 내 얼굴을 압니다. 먼저 주걱턱을 보내어 잡아들인 후 내가 직접 처리할 겁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 최경호, 그 새끼는 아직도 못 찾았나?
― 하, 이거 참, 그 새끼가 어디 땅속으로 꺼져버렸는지 통 무소식입니다. 그러나 조만간 찾아낼 것입니다. 자식이 뛰어봐야 벼룩이지요.

새벽에 송철준과 통화를 한 이후부터 하루 종일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정해현은 비로소 다소나마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안심하기엔 일렀다. 경찰이나 검찰이 먼저 여자의 신병을 확보한다면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우선 여자만 처리된다면 최경호는 어떻게든 회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 종일 생각해봐도 뾰족한 다른 방법은 없었다. 말을 듣지 않는다면 그 자식 또한 영원히 숨을 쉬지 못하게 할 수밖에 없다. 정해현의 핏발선 눈이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

이 시간, KNB 방송국 근처 심야커피숍

박경일은 방금 방송국에서 나온 KNB방송 유철주 보도부장을 만나고 있었다.
―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기자로서의 치욕이었습니다.
― 치욕이라니요?
― 그때 내가 M룸살롱에서 홍한일 박사의 사건을 보도한 것은 오랫동안의 잠입취재 끝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 당시에는 잠입취재의 개가라고, 온통 그렇게 보도되지 않았습니까?
― 우쭐대기 좋아하는 신출내기 기자의 공명심 때문이었지요.
― 그렇다면 그 사건의 보도는 다른 취재과정을 거쳤다는 말씀인가요?

― 예, 그렇습니다. 그것은 그날 저녁에 있었던 단순한 제보전화 한통 때문이었습니다. 그날 밤 열한시경, 나는 홍 박사가 어린 여학생과 함께 M룸살롱에서 마약에 취해 있다는 전화 한통을 받았지요. 그 전화는 당시 홍 박사가 있었던 M룸살롱의 호실까지 정확하게 말할 정도로 신빙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갔지요.

그런데 현장을 목격하는 순간 정말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양심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추한 모습을 하고 있다니……. 정말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죠. 그때 나는 햇병아리 기자의 정의감에 사로잡히고 말았지요. 이 시대 최고의 양심이라는 얼굴로 가면을 쓰고 있는 이런 사람은 철저하게 응징되어야 한다는…….

그래서 그때 받은 전화제보 사실을 숨기고 오랫동안 잠입취재를 한 것처럼 현장중개를 해버렸습니다. 당시 갓 출발한 신출내기 기자로서 근사한 특종 하나를 터트리겠다는 공명심이 너무 앞섰던 것이지요.

― 그렇다면 그때 제보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봤습니까?
― 그것이 당시 나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그때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면 그 사건의 실체를 쉽게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사건 보도 직후 홍 박사가 자살을 하자, 어쩌면 그 사건은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조작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지금 조작이라고 하였습니까?
― 예, 어쩌면 그날, 내게 제보를 한 자가 홍 박사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 음모로 현장을 그렇게 꾸며놓고 나를 통해 언론에 보도가 되도록 미리 함정을 파 놓은 것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왜 그런 생각을 하였습니까?
― 우선 제보자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고, 그 제보자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고 기자인 나를 통해 먼저 보도부터 나가게 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 홍 박사를 음해하려는 자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다는 겁니다. 여론을 통한 매장작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런 음해세력의 함정에 부장님께서 걸려들었다는 말씀입니까?
― 예, 그렇습니다. 그 이후 취재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상황에 대하여 홍 박사는 정말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홍 박사는 이미 목숨을 끊고 말았지요. 그 이후 나는 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우쭐대기 좋아하는 신출내기 기자의 섣부른 공명심이 이 시대 최고의 양심을 죽게 했다는…….

― 그 이후에 얻은 다른 정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아뇨,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그 사건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파고들었다가 잠입취재를 하였다는 내 거짓말이 탄로 날까 두려웠습니다.
― 그런데 왜 지금에서야 이 이야기를 합니까?

― 어제 홍 박사 사건과 관련된 메시지가 보도된 이후 나는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생각, 즉 홍 박사를 음해하려는 자들이 사건현장을 꾸며 놓고, 나를 이용하여 그 현장을 보도하게 하고, 그 때문에 홍 박사는 여론의 질타를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고…….

만약 내 추리처럼 이 사건이 누군가의 음모에 의해 조작되었고, 그래서 홍 박사가 목숨을 끊었다면, 나는 본의 아니게 살인에 가담하게 된 셈이지요. 사실 이제까지 그러한 죄책감에서 나는 한시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사건의 실체를 다시 파헤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내 헛된 명예와 공명심 때문에 진실이 은폐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보도부 기자들과의 전체회의에서 이런 내 생각을 밝히고, 당시 사건의 실체를 캐기 위해 모든 취재원을 가동하도록 했습니다. 취재가 끝나면 진실이 밝혀지겠지요. 진실이 밝혀지면,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조금이나마 죄책감을 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을 하는 동안에 유철주의 얼굴은 고뇌로 일그러져 있었다. 밤이 늦은 시간인데도 방송국 근처 심야커피숍은 꽤 붐비고 있었다. 유철주의 생각처럼 이 사건이 음모라면 정말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보다 지금쯤 최수환은 손나영의 신병을 확보했을까? 음성메시지가 알려준 기록을 분석한 김용훈 검사의 지시처럼, 먼저 손나영과 최경호의 신병을 확보해 둘 필요가 있었다. 김용훈 검사의 방을 나온 즉시 최수환이 최경호의, 박경일이 손나영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박경일은 먼저 손나영의 현재 주소지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그러나 관리사무소에도 집전화만 나와 있고 휴대전화번호는 없었다. 손나영이 사는 아파트를 직접 찾아 갔으나 그녀는 집에 없었다. 맞은편 아파트에 사는 아주머니가 손나영은 혼자 산다고 했다. 저녁쯤에 나가 새벽녘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야간업소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 아주머니도 손나영의 연락처를 몰랐다.

박경일은 손나영이 집에 돌아오면 즉시 연락을 해 달라는 부탁을 하고 일단 그 집을 나왔다. 그러나 손나영의 신병확보가 한시가 급한 마당에 마냥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가 없었다.

박경일은 세무서로 가서 부산 전체의 사업자등록명부에서 손나영 명의로 된 주점이나 유흥업소 상호가 있는지를 찾아보았다. 그런 주점이 있다면 그곳으로 찾아가 볼 참이었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인 명부에서도 손나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박경일이 퇴근시간이 다 되어 세무서를 나서는데 최수환이 휴대전화로 연락을 해 왔다. 그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최경호가 갑자기 땅 속으로 꺼져버린 듯 흔적조차 없다고 투덜대고 있었다.

그래서 밤이 늦었지만, 박경일은 최수환을 손나영의 아파트 근처에서 기다리게 하고, 당시 홍 박사의 사건을 현장에서 최초로 보도한 KNB방송국 유철주 보도부장을 만나보기로 했다.

최초 보도자인 유철주 부장은 무려 6개월 동안에 걸친 잠입취재 끝에 사건을 보도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유철주는 오랜 잠입취재 기간 동안에 얻은 또 다른 유익한 정보를 갖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박경일이 방송국으로 전화를 하자, 유철주는 밤 11시는 넘어야 겨우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밤 정규뉴스 시간을 마쳐야 한다고 했다. 박경일은 다시 한 번 손나영의 아파트로 가서 확인을 한 후에 밤늦은 시간에 방송국 근처 심야커피숍에서 유철주를 만났다.

그러나 유철주는 보도와는 달리 그 사건이 잠입취재의 결과가 아니라 사건 당일 있었던 단순한 제보전화 한 통 때문이었고, 더구나 그 제보자 또한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유철주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박경일의 기대도 무산된 셈이었다.

―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경일이 막 일어서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 김용훈 검삽니다. 지금 즉시 남포동 부광빌딩 20층 카페 소피아로 가십시오. 손나영이 그곳에 있습니다. 급합니다. 즉시 그곳으로 가서 손나영의 신병을 확보해 주십시오.
― 예, 알겠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박경일은 커피숍 5층 계단을 급하게 뛰어내려와 차를 세워둔 KNB방송국 주차장으로 달려가며 최수환에게 전화를 했다.
― 최 경위, 남포동 부광빌딩 20층이야. 손나영이 그곳에 있어.

*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남포동 번화가는 여전히 붐볐다. 멀지 않는 곳에 부광빌딩이 보였다. 기영은 차를 도로변에 주차시킬 수 있도록 미리 차선을 바꾸었다. 차가 부광빌딩 앞에 도착하자, 기영은 지하주차장 출구 옆 도로변에 차를 세워두고 건물 로비를 향하여 달렸다.

기영이 1층 로비로 막 들어섰을 때, 로비 중앙 오른쪽 엘리베이터에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뒤돌아서 밖을 바라보는 막 닫히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한 남자의 얼굴. 아! 저 자는……. 유별나게 하관이 쭉 빨은 주걱턱 사내! 기영은 온몸으로 강한 전류가 흐르는 듯 했다.

고등학교 때, 집 앞 골목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그 치욕의 순간이 떠올랐다. 놈이 잭나이프로 턱을 치켜 올릴 때 느꼈던 차가운 칼날의 감촉, 놈에게 명치를 걷어 채여 쓰러진 땅바닥에서 스멀거리던 타다만 연탄재 냄새. 그때보다 나이가 들어 살이 좀 오른 듯 했지만 어찌 그 잔인한 얼굴을 잊을까.

― 잠깐만요. 멈추세요. 같이 갑시다.

기영이 로비를 가로질러 달려가며 외쳤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는 기영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대로 닫히고 말았다. 두 대의 엘리베이터 중 좌측에서 내려오는 한 대가 13층에 머물러 있는 표시가 보였다. 비상구 계단을 통하여 20층까지 올라가는 것은 시간이 너무 걸린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런 급한 판국에 엘리베이터는 왜 이리 늦게 내려오나! 기영이 놓친 엘리베이터는 이미 16층에 도달했는데도 13층에 있는 엘리베이터는 무슨 유람이라도 하는 듯 각 층마다 멈추면서 이제 겨우 6층을 지나고 있었다.

그놈들이다. 위험하다. 빨리 피해라고 알려주어야 한다. 기영은 카페 소피아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제발, 빨리 전화를 받아.
― 예, 소피아입니다.
― 여보세요. 손나영 씨. 손나영 씨? 여보세요? 여보세요……?

갑자기 끊어져 버린 전화. 이런! 그놈들이 벌써 도착했구나. 이를 어쩌나? 그때 13층에서 내려온 엘리베이터문이 열렸다. 내리는 사람들 동작은 왜 이리 굼뜨나. 드디어 마지막 사람이 내리고 기영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문이 닫혔다.

기영은 곧바로 20층을 눌렀다. 아차! 엘리베이터는 오히려 지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우라질! 기영은 너무 화가 나 손바닥으로 엘리베이터 벽을 내려쳤다. 엘리베이터는 지하 3층 주차장에 가서야 멈췄다.

문이 열리자 지하 3층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남자가 탔다. 기영은 다시 20층 버턴을 누르고는 조바심으로 아예 엘리베이터 벽에 기대어 눈을 감고 말았다. 제발,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 전화가 끊긴 건 그놈들이 들이닥친 때문이 아닐까?

기영은 다시 전화를 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안이라 통화불능 지역이라는 멘트가 울렸다. 자정이 넘은 시간인데도 1층에서 승객을 가득 태운 엘리베이터는 다시 유람선이 되어 한가롭게 각 층마다 열렸다 닫혔다 하며 올라갔다.

용훈이 이미 무슨 조치를 취했겠지! 경찰이 먼저 왔을지도 모른다. 너무 조바심을 내지 말자. 그러나 조금 전 엘리베이터에 탔던 남자는 분명 그날 그 골목에서 보았던 폭력배였다. 그놈들이 먼저면 손나영이 위험하다. 가슴이 다시 타들어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가 20층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이토록이나 오래 걸릴 줄이야. 18층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 한 쌍이 내리고, 이제 엘리베이터 안에는 지하 3층 주차장에서 탔던 두 남자만 남아 있었다.
 

드디어 20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기영은 쏜살같이 달려가 카페 소피아의 문을 열었다. 유지연이 기영을 보고 기다렸다는 듯 큰소리로 말했다.

― 변호사님!
― 손나영, 나영 씨 어디 있어요?
― 그렇지 않아도 연락드리려고…….
― 나영 씨 어디 있어요?
기영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 조금 전에 경찰서에서 나왔다는 사람과 함께 갔어요? 혹시 오시는 길에 만나지 못했어요?
― 경찰?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어요?
― 예.
― 어느 경찰서 소속이라고 하던가요?

의외의 목소리에 기영과 유지연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기영과 함께 지하 3층 주차장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던 두 남자가 입구에 서 있었다.
― 해운대경찰서 박경일 경위와 최수환 경위입니다. 박기영 변호사님이시죠?

― 안 돼! 그놈들은 경찰이 아니야. 손나영이 납치됐어. 방금 전이라고 했지?
기영이 대답 대신 유지연의 어깨를 잡고 흔들며 말했다.
― 예, 방금 전에요.

기영은 다시 쏜살같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박경일과 최수환이 기영의 뒤를 따랐다. 엘리베이터 앞에 다시 멈춘 기영은 엘리베이터 숫자 표시를 보았다. 기영이 타고 올라왔던 엘리베이터는 17층, 다른 엘리베이터는 10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대 모두 내려가고 있었다.

방금 전이라면? 손나영은 지금 10층에 머물고 있는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갔다 다시 올라오는 동안을 기다리다가는 놓치고 만다. 기영은 비상구 계단을 향하여 뛰기 시작했다. 박경일과 최수환이 기영을 뒤따라 뛰었다. 박경일이 기영을 앞지르며 소리쳤다.

― 놈들이 내릴 곳은 지하 1, 2, 3층 주차장 밖에 없습니다. 내가 지하 3층으로 갈 테니까 최 경위는 2층으로 가. 변호사님은 1층으로 가세요. 비상연락은 김용훈 검사님을 통해 하십시오.

고함을 지르며 뛰어가는 박경일과 최수환은 이미 기영보다 한 층을 앞 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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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제46회 <위기의 순간>은 2019. 9. 2.(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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