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교향곡, 연재 제24회 <악동클럽 2>
Symphony in C minor ‘Fate’

악동클럽 2

일주일이 지났다. 악동클럽의 보복은 없었다. 그러나 소년은 여전히 불안했다. 교실에서 대하는 악동과 그들 무리의 적의는 여전히 소년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들의 보복은 언제쯤 시작될 것인가.

2학년이 되면서 보충수업 시간이 늘어났다. 평일 수업을 마치면 이미 밤 10시가 넘었다. 소년과 대장은 항상 함께 등, 하교를 했다. 그것은 소년이 대장 집에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만은 소년 혼자서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난 후 담임선생이 반장인 대장을 교무실로 불렀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시내버스가 다니는 넓은 대로를 벗어나 집으로 가는 좁은 골목길로 접어들었을 무렵이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그 골목은 어두웠고, 인적이 드물었다. 거의 직각으로 구부러진 골목길을 돌자, 골목 어귀에서 갑자기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깡패무리 넷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중 한 녀석은 사복을 입은 따까리였다.

따까리도 소년보다 덩치가 컸지만, 나머지 셋은 따까리보다 키가 한 뼘 정도나 더 크고 체격도 훨씬 우람했다. 아직 추운 날씨인데도 셋 모두 하나같이 함께 맞춘 듯 찰싹 달라붙은 반소매 검정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불퉁불퉁 운동으로 단련된 근육질 가슴과 어깨팔뚝, 짧게 깎은 머리이지만, 분명 학생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이가 그리 들어보이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소년또래이거나 소년보다 두세 살 정도 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소년과 대장이 다니는 길을 미리 봐두고 있다가 어둡고 인적이 드문 이곳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 이 새끼가 맞아? 둣놈이라면서?
무리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녀석이 담배를 꼬나문 채 연기를 뿜어대고 있다가 옆에 서있는 따까리에게 물었다. 유난히 하관이 빨아 턱이 주걱턱처럼 보였다.
― 예, 형님. 맨날 같이 댕기는데, 오늘은 따로 오는 모양입니더.
따까리가 말했다.

―그래? 할 수 없지. 오늘은 이 새끼만 끌고 간다.
주걱턱이 침과 함께 꽁초를 퇴, 뱉고는 말했다. 주걱턱이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들더니 찰칵, 하고 날을 펼쳐들고 소년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이하 같음)

(― 침착해. 기회를 봐 도망가야 해.)

위기에 처한 동물의 본능이 이럴 것이다. 소년보다 덩치가 크고 더구나 칼까지 든 깡패 넷을 혼자서 상대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그들 넷은 순식간에 둘씩 나뉘어 좁은 골목길 앞, 뒤를 차단해 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그렇다고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들 용기도 솟아나지 않았다. 속수무책 당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겁이 났다. 공포심으로 전신이 오그라드는 것 같았다. 소년의 코앞에까지 다가온 주걱턱이 잭나이프 칼등으로 소년의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 야, 이 좆만 한 새끼야. 니가 우리 유신클럽을 깔보고서도 성할 줄 알았더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년은 아랫배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배를 끌어안는 순간, 명치끝이 뜨끔하며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길이 확 치솟았다. 주걱턱이 아랫배에 주먹을 내지름과 동시에 앞으로 꼬꾸라지듯이 주저앉는 소년의 명치를 무릎으로 쳐 올렸던 것이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하늘이 노래지며 머릿속에서 하얀빛이 쏟아졌다. 쓰러진 채 볼에 닿은 땅바닥의 감촉이 차갑게 느껴졌다. 저항하고 싶었다. 아랫배와 가슴에 와 닿는 극심한 통증보다도 녀석들 앞에서 속절없이 주저앉아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있어야하는 굴욕감에 눈물이 나려고 했다.

그러나 소년은 이를 악물고 눈물을 참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은 더 큰 치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일어나려고 했다. 마냥 굴복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일어나기 위해 한 손으로 땅바닥을 짚고 무릎을 세우는 순간, 이번에는 따까리가 내지른 발길질이 옆구리에 날아와 꽂혔다.

소년은 힘없이 옆으로 뒹굴었다. 옆구리를 엄습하는 고통에 새우처럼 허리를 구부린 채 모로 쓰러져 겨우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쓰러져 있는 소년의 볼 위에 주걱턱이 구둣발을 올려놓고 짓이기며 말했다.

― 야, 이 새끼야. 니가 뭘 믿고 지랄을 떨었노?

아마 대장을 반장으로 추천한 일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너무도 큰 굴욕감에 맹렬한 분노가 솟아났다.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다. 일어나야 한다. 일어나 달려들어야 한다. 소년은 볼 위에 놓인 주걱턱의 발목을 잡고 비틀면서 일어나려고 안간힘을 섰다.

― 엇쭈, 이 새끼 봐라?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이번에는 턱에 강한 충격이 왔다. 고개가 힘없이 옆으로 홱 돌아가며 벌렁 나자빠진 팔다리에 감전된 것처럼 경련이 몰아쳤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의식이 혼미해져 왔다. 목구멍으로 끈끈하고 뜨거운 액체가 흘러 들어왔다. 코와 터진 입술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일어나! 달려들어! 가물가물해지려는 의식을 붙들고 속으로 외쳤다. 그러나 몸은 의식을 배반하고 있었다. 팔다리가 바르르 떨리다가 갑자기 마비되어 버린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다. 골목길 어딘가에 누군가가 타다 남은 연탄재를 버린 것일까.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겨우 숨만 몰아쉬고 있는 코로 매캐한 연탄가스 냄새가 풍겨 왔다.

― 야, 너희 둘은 이 새끼 끌고 와. 너는 이 새끼 가방 들고 와.

주걱턱이 나머지 두 녀석과 따까리에게 명령을 내렸다. 소년은 속절없이 양팔과 어깨를 두 녀석에게 잡혀 질질 끌려갔다. 골목을 벗어나자 차도에 검은색 승용차가 한 대 주차해 있었다.

가방을 든 따까리가 먼저 달려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 두 녀석이 소년을 팽개치듯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두 녀석이 뒷좌석 좌우에 올라타 소년의 허리를 일으켜 세워 양팔을 껴 반항을 억제했다.

따까리가 소년의 가방을 들고 조수석에 먼저 타고, 마지막으로 주걱턱이 운전석에 올라 차를 출발시켰다. 그때까지 소년은 의식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축 늘어져 있었다. 차가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다.

잠시 후 정신을 차려 차창 밖을 바라보니 부산진역이 보였다. 차가 부산진역 앞에서 좁은 이면도로로 접어들었다. 골목에 이어진 집집마다 청사초롱 같은 붉은 조명등이 걸려 있었다.

소년은 생각했다. 쉬는 시간에 학교 화장실 벽 옆에 숨어 몰래 담배를 피우던 아이들이 킬킬거리며 얘기하던 부산진역 앞 사창가가 이곳이구나. 차는 골목길 회색벽돌 건물 외벽에 세로로 붙은 <홍콩아가씨>라는 간판 앞에 멈췄다. 좌우에 앉은 두 녀석이 다시 소년을 끌어내렸다. 따까리가 먼저 내려 뛰어가 간판 옆 알루미늄 미닫이 출입문을 열었다.

― 어서 와. 일루 따라 와. 작은 사장님이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어.

월남치마에 분홍한복 윗저고리를 입은 짙은 화장을 한 중년여자가 나와 호들갑스럽게 말했다. 그새 출입문으로 먼저 들어온 주걱턱이 여자를 따라 앞장서고 두 녀석이 소년을 질질 끌고 따라갔다.
 

여자는 복도처럼 늘어선 열 개도 넘는 방 중 제일 안쪽 방 앞에서 멈췄다. 따까리가 소년의 가방을 들고 나무창살 미닫이 방문을 열었다. 주걱턱과 따까리가 먼저 방안으로 들어섰다.

― 야, 이 새끼야. 작은 사장님 앞이야. 똑바로 서.

두 녀석이 소년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주걱턱이 대뜸 소년의 뺨을 후려치며 말했다. 소년의 어깨를 양쪽에서 부축하다시피 껴안고 있던 두 녀석이 소년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다. 소년은 다리에 힘을 주고 고개를 들어 방안의 광경을 보았다.

앉은뱅이 직사각형 술상을 가운데에 두고 오른쪽에 사복을 입은 악동과 그 맞은편 왼쪽에 깡마른 젊은 남자 하나가 앉아 있었다. 왼쪽 뺨에 기다란 칼자국흉터가 나 있는 것이 한 눈에 보아도 폭력배 같은 인상이었다. 뼈만 앙상한 얼굴에 유난히도 광대뼈가 툭 튀어나와 그 때문에 깊은 구멍처럼 움푹 꺼져 보이는 두 눈이 마치 해골 같았다.

작은 사장님이란 바로 그 남자를 지칭하는 것 같았다. 그 사창가의 진짜 큰 사장이라고 불리는 포주는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아직 학생인 악동이나 소년또래보다 네댓 살 위로 보였다. 그 해골 옆에 붉은 바탕에 하얀 꽃잎 수가 놓인 한복을 입은 앳된 여자가 앉아 술시중을 들고 있었다.

방안은 담배연기로 부옇게 보였다. 그러나 독한 담배냄새는 나지 않고 시골 고향에서 여름날 덜 마른 풀로 모깃불을 피운 것 같은 풀냄새가 났다. 해골과 여자 앞 술상 위에 습자지 같은 하얀 종이로 담배처럼 돌돌 말아 반쯤 피우다만 꽁초가 있었다. 아, 저것이 말로만 듣던 대마초구나, 라는 생각이 얼핏 소년의 머리에 스쳤다.
― 오늘은 이 새끼만 끌고 왔어.

따까리가 소년의 가방을 문설주 기둥 옆에 놓고 악동 옆으로 가 앉으며 말했다. 따까리가 해골의 눈치를 살피는 듯 눈을 두리번거리다가 슬그머니 술상 위에 놓인 꽁초를 집어 들었다.

따까리가 고개를 돌려 벽 쪽으로 향하고 꽁초에 불을 붙여 볼이 홀쭉해 지도록 깊게 빨고는 연기를 내뿜었다. 소년은 그 매캐한 연기에 숨이 막히는 것 같아 자신도 모르게 콜록콜록 기침을 했다. 악동이 술상에 놓인 술잔을 들어 마시고 일어나 소년 앞으로 왔다.

― 칼 이리 줘.

입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겼다. 악동이 제보다도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 주걱턱에게 반말을 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주걱턱이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찰칵, 날을 펴서 악동에게 건넸다.

― 야, 이 새끼야. 어디를 찔러 줄까? 여기 눈을 찔러 줄까? 코를 베 줄까? 아니면 목을?

악동이 바로 눈앞에서 칼날을 살랑살랑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악동이 마치 눈을 찌를 듯이 칼을 위로 치켜들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비틀며 반항했다. 그러나 꽉 껴안고 있는 두 녀석의 완력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대신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극심한 공포가 몰려왔다.

― 뭐? 여러분들의 자유는 내가 지킨다고? 그 새끼한테 똑바로 전해.
악동이 이번에는 목에 칼날을 대고 아래위로 번갈아 뒤집어 싹싹 비비면서 말했다. 목에 닿는 칼날의 차가운 감촉은 한겨울 집 앞 개울의 얼음장처럼 섬뜩했다. 오소소 소름이 돋는데도 저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 일주일 시간을 준다. 자유고 나발이고 간에 일주일 내로 그 새끼가 반장을 사퇴하도록 해. 그렇지 않으면 너나 그 새끼들 모두 그냥 두지 않는다. 네 깐 놈의 새끼들 셋 다 모두 골로 보내 버린다. 알았나, 이 새끼야!
 

악동이 말하는 셋, 이란 물론 대장과 안경, 소년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말끝에 힘이 실리면서 악동의 손목에 힘이 들어간 모양이었다. 칼날이 닿은 목 부분이 뜨끔했다. 칼날이 목 살갗을 파고 든 모양이었다. 칼날이 파고 든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견갑골을 타고 내리는 것 같았다.

― 아이고, 도련님, 그러면 애가 겁을 먹습니다. 뭘 시키려면 애가 좋아하는 걸 해야지요. 하하하.
해골이 조롱 섞인 웃음 띤 어조로 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나왔다. 물론 도련님이란 말은 부일방직산업 회장의 외아들인 악동을 높여 말하는 것이었다.

― 야, 너 이리 나와.
해골이 술시중을 들고 있던 여자에게 손짓을 하며 말했다. 여자가 소년 앞으로 왔다.
― 너, 옷 모두 홀랑 벗어.
해골이 여자에게 말했다.
― 예?
여자가 해골을 바라보며 영문을 몰라 반문했다.

― 예, 는 무슨 예, 야. 야, 이 가시나야. 옷 벗어, 라는 말귀도 못 알아들어?
해골이 손바닥으로 여자의 뒷머리를 치며 말했다.
여자가 옷을 벗기 시작했다. 먼저 한복저고리를 벗고, 치마를 내리고, 다시 속옷저고리와 속치마를 내리자 브래지어와 팬티차림이 되었다. 여자가 잠시 머뭇거렸다. 소년또래보다 더 어려보이는 미성년소녀였다.

― 모두 홀랑 벗어. 내 말 못 들었어?
해골이 다시 여자의 뒷머리를 치며 말했다. 여자가 브래지어 끈을 내려 풀고 유방을 드러내었다. 아직 제대로 자라지도 않은 둔덕 위에 피어난 빨간 유두가 꽃잎처럼 보였다. 팬티를 벗은 샅엔 아직 덜 자란 음모가 솜털처럼 보송보송했다. 소년이 성적인 대상으로 여자의 나신을 눈앞에서 본 것은 처음이었다.

― 이제 저 새끼 바지를 내려.
해골이 여자에게 다시 명령했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었다. 여자가 소년의 허리벨트를 풀고 바지를 내렸다. 팬티도 내렸다. 와하하, 갑자기 해골의 웃음이 터졌다.

― 이 새끼 이거 아직 껍데기도 까지지 않았어. 하하하!
해골이 허리를 굽히고 오른손으로 소년의 성기 표피 끝을 잡고 집어당기며 킬킬거리며 말하자, 방안에 있던 모두가 와하하, 웃었다. 소년은 수치심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랫입술을 더욱 더 세게 꽉 깨물었다.

― 야, 이 새끼 이것 벌떡 일어나도록 네가 한 번 빨아 줘.
해골이 여자에게 다시 명령했다. 여자가 소년의 허벅지를 양손으로 잡고 성기를 입안에 넣었다.
― 야, 이 가시나야. 그래가지고 그게 일라서겠나. 껍데기 홀랑 까서 빨아야지.

해골이 여자의 뒷머리를 잡고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와하하, 악동을 위시하여 방안에 있던 모두가 다시 한 번 크게 웃었다. 소년은 질끈 감은 눈꺼풀 안에서 동공이 확장되어 터질 것만 같았다. 꽉 깨문 아랫입술이 터져 드디어 피가 흘러내렸다. 수치심에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벗어나려고 몸을 뻗대 보았지만 두 녀석의 완력은 더 억셌다.

― 야, 이제 됐어.
해골이 소년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굻고 앉은 여자를 떼어내며 말했다. 여자가 일어나 손으로 입술을 문지르고는 고개를 돌리고 토할 것처럼 캑캑거렸다.
― 이 가시나가 지랄을 떨고 있네.
해골이 여자의 뒤통수를 대뜸 올려붙이며 말했다.

― 야, 이 좆만 새끼야.
해골이 소년의 뺨을 좌우로 찰싹찰싹 때리며 말했다.
― 아까 도련님이 하신 말씀 그 새끼에게 똑바로 전해. 알았어?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 이 새끼가 대답이 없어.
해골이 소년의 뺨을 세게 올려붙였다.

― 그건 그렇고, 넌 우리 유신클럽에 들어오는 것이 어때? 들어오기만 하면 저런 가시나랑 빠구리도 할 수 있고, 대마초도 피울 수 있어. 너 대마초맛 아직 모르지? 어때? 들어올래?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크게 뜨고 해골을 노려보았다. 그것만이 소년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었다.
― 아 이 새끼 이게 어디서 째려 봐.
해골이 주먹으로 소년의 콧등을 내려쳤다. 코피가 사정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년이 눈을 부라리고 다시 해골을 노려보았다.

― 이 새끼 눈 깔지 못해.

이번에는 해골이 소년의 눈두덩을 주먹으로 세게 내려쳤다. 눈에 불꽃이 번쩍하며 눈동자가 터져버린 듯이 한순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골이 다시 손바닥으로 소년의 뺨을 좌우로 번갈아 세차게 후려치며 말했다. 입술에서도 피가 터져 흘러내렸다. 소년이 눈에 불을 켜고 다시 해골을 노려보았다.

― 이 새끼 이거, 그래도 제법 성깔은 살아있네. 그건 그렇고, 야, 너희 둣놈, 새벽마다 좆 빠지게 뛰어다니며 신문배달 한다며? 그렇게 신문배달해서 한 달에 얼마 벌어? 천 원? 이천 원? 야, 그렇게 좆 빠지게 고생하지 말고 내 말대로 우리 유신클럽에 들어와. 들어와서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매달 삼천 원, 아니 오천 원 줄게.

말을 마친 해골이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백 원짜리 지폐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해골이 10장을 세어 천 원을 소년의 교복 왼쪽 가슴호주머니에 꽂아 넣어주며 말했다.
― 자, 오늘 선금으로 먼저 천 원 줄게. 아니, 천 원 더 줄게. 그리고 미리 말해 두지만, 들어오지 않으면 이 돈 이자까지 쳐서 갚아야 해. 알았어?

해골이 다시 10장을 세어 소년의 가슴호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팔을 들어 손목시계를 보고는 말했다.
― 야, 통금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그 돈으로 택시타고 가. 재수 없게 짭새에게 잡히지 말고. 오늘은 이쯤 해두지만 계속 말 안 들으면 도련님 말씀대로 너희 셋놈 다 골로 보내버린다. 알았어? 야, 이 새끼, 이제 그만 보내 줘.

*

소년은 가방을 들고 중년여자가 열어주는 쪽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왔다. 골목길에 띄엄띄엄 서있는 가로등이 부옇게 빛나고 있었다. 가로등 아래 서서 고개를 들어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낀 까만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처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허탈했다. 속수무책으로 철저히 당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허허로운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때서야 비로소 굴욕감과 수치심에 떨면서 참고 또 참고 있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 내렸다.

― 어, 학생 울고 있구나. 왜 무슨 일이 있었어? 예쁜 누나들이 잘 해 줄 거야. 오백 원이면 할 수 있어. 천 원이면 자고 갈 수도 있고. 자, 날 따라와.
언제 왔는지 근처 사창가에서 나온 호객꾼여자가 소년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 안 가요. 이거 놔요.
소년이 울음 섞인 화난 목소리로 꽥 고함을 질렀다.

― 얘가 안 가면 그뿐이지 왜 고함은 지르고 지랄이야.
여자가 몸을 돌리고 걸어가며 투덜거렸다. 그때 소년의 머리에 문득 해골이 넣어준 가슴호주머니의 돈이 생각났다. 소년이 여자의 등에 대고 불쑥 말했다.
― 잠깐만요?
― 왜? 갈려고? 그래에! 잘 생각했어. 어서 날 따라와.

여자가 총총걸음으로 뛰어와 소년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소년은 여자에게 이끌려 근처 사창가 건물로 들어갔다.
― 얘 금자야. 손님 왔다.
여자가 큰소리로 말했다. 한복을 입은 곱슬곱슬 파마머리여자가 나왔다.
― 다른 누나도 불러주세요.
소년이 말했다.

― 왜, 마음에 들지 않아? 얘, 숙자야. 네가 한 번 나와 봐. 보고 마음에 드는 사람 골라서 하면 돼. 자고 갈 거지? 자고 갈려면 천 원이야. 자, 돈부터 내.

여자가 소년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때 숙자라고 불린 여자가 나왔다. 파마곱슬머리 여자보다 더 어려 보였다. 머리도 단발머리였다. 소년또래쯤의 나이로 보였다. 소년이 가슴호주머니의 돈을 모두 꺼내어 열장씩 둘로 나누었다.

― 자, 가지세요.
소년이 두 여자에게 각각 천 원씩을 건네며 불쑥 말했다.
― 어머머! 얘가, 얘가, 욕심은 있어가지고, 아이고! 하루 밤에 둘이나 불러 하려고!
호객꾼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 아뇨. 그냥 가지세요. 안녕히 계세요.

소년은 말하고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사창가의 문을 열고 다시 골목으로 나왔다. 꽉 막혀있던 가슴이 비로소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새까만 밤하늘에서 빗방울이 우두둑 떨어졌다. 소년은 손등으로 눈물을 문지르며 골목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 연재 제25회 <악동클럽 3>은 2019. 4. 8.(월) 에 게재됩니다.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24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