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25회 <악동클럽 3>
Symphony in C minor ‘Fate’

악동클럽 3

멍든 얼굴과 터진 입술을 대장에게 감출 수는 없었다. 대장은 이미 악동무리의 보복이 시작된 것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그러나 소년은 대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악동무리에 맞서 변변한 대항 한번 못한 채 처참하게 당해 버린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소년이 아무 말도 않자, 그 마음을 알아챈 듯 대장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악동이 소년에게 정한 일주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악동무리의 적의는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소년은 조바심이 났다. 대장이 반장을 사퇴하지 않으면 더 큰 보복이 가해질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반장을 사퇴하라는 악동의 말을 대장에게 그대로 전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을 전한다는 것은 악동무리의 위협에 굴복해버린 비굴한 모습을 대장에게 보여주는 결과밖에 되지 않았다. 어릴 적 양키 군인들이 길바닥에 던졌던 껌을 주워들었던 것과 같은 부끄러운 행동을 다시는 대장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소년은 속이 탔다. 그러나 대장은 태연했다. 대장은 분명 소년이 악동무리로부터 보복을 당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소년의 수모임과 동시에 대장 자신의 수모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장은 어떤 내색도 하지 않았다. 드디어 악동이 정한 일주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그날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던 안경이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일찍 학교를 마친 소년과 대장은 안경의 집을 찾아 갔다. 그러나 안경은 집에 없었다. 병원에 있다고 했다.

병상에 누운 안경의 얼굴은 소년이 당한 얼굴보다 더 엉망이었다. 시퍼런 멍이 들고 퉁퉁 부어올라 아예 감겨버린 눈두덩에 코뼈가 내려앉았는지 얼굴에 삼각지지대를 세우고 목에는 깁스를 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도 안경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면서 농담부터 했다.

― 야, 까딱 잘못했으면 내 고귀한 숫총각 딱지 떼일 뻔 했어.
안경의 장난 같은 뜬금없는 말에 대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소년은 안경의 그 말뜻을 알 수 있었다. 아마 안경도 그 사창가로 끌려가 소년처럼 나신의 여자를 통하여 치욕에 가까운 수모를 당했을 것이다.

― 해골 같이 이상하게 생긴 새끼가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며 면도칼로 소매치기시범을 보여주더라. 그러면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오천 원을 주겠다고 했어. 아, 씨~, 그 기술 전수받고 오는 건데.
안경이 또 웃으면서 말했다. 말을 길게 하자, 목 깁스와 코 지지대가 흔들려 아픈지 목소리와는 달리 안경의 얼굴 표정은 마치 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더 우스웠다.

― 뭐? 그래서?
대장이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 그래서 내가 대학가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니 같은 새끼들 모조리 잡아넣어 주겠다고 했지. 아, 씨~, 그래서 이렇게 죽사발 되도록 얻어터졌고. 진짜 맞아죽는 줄 알았다.
안경이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삼총사끼리 학교에서 얘기할 때, 안경은 일찌감치 대학의 진로를 정해두고 있었다. 법대에 갈 것이고, 대학에서 사법고시를 보겠다고 자주 얘기했다.

해골은 소년에게도 시키는 대로 하면 돈 오천 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 말은 결국 소년이 그들과 어울려 소매치기로 돈을 훔쳐 상납하면 그 돈 중 일부를 떼어주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안경의 말로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 악동새끼가 일주일 내로 반장을 사퇴하라고 하더라.
피딱지가 앉아 잘 벌어지지도 않는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얼굴을 찡그리고 안경이 다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배어 있었다.

― 사퇴할까?
대장도 웃으면서 말했다.

― 뭐라고? 그 따위 소리하려고 여기까지 왔어? 농담이라도 그딴 소린하지 마. 정말 사퇴하면 넌 친구가 아니다.
안경이 단호하게 말했다. 안경은 알고 있었다. 소년도 알고 있었다. 대장의 성격상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대장은 결코 사퇴하지 않을 것이다. 악동클럽의 폭력에 굴복하느니 차라리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

악동이 안경에게 경고한 일주일이 다시 흘러갔다.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내렸다. 오후에도 쉬지 않고 내리던 비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그쳤다.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모두 마친 밤 열시가 되기까지도 악동클럽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소년은 두려웠다. 분명 하굣길 어딘가에서 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대장에게 평소 다니던 골목길로 가지 말고 다른 쪽으로 가자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악동무리를 피하여 다른 길로 간다는 것은 굴욕이었다. 비겁이었다. 대장에게 그런 비겁함을 보일 수는 없었다. 대장은 소년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처럼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대장은 오히려 악동무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윽고 악동무리에게 당했던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거의 직각으로 꺾어진 모퉁이를 돌자, 골목 어귀 담장 아래에서 담배를 꼬나문 주걱턱의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 왔다. 그 뒤로 다섯 명이 더 있었다. 처음 소년에게 린치를 가했던 주걱턱과 따까리일행 네 명에다 악동과 해골까지 나와 모두 여섯이나 되었다.

앞서가던 대장이 걸음을 멈추었다. 오른손으로 담배를 꼬나문 주걱턱이 청바지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선두에서서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좁은 골목에서 악동과 해골이 그 뒤에 나란히 붙고, 따까리와 나머지 두 명이 그 뒤를 따랐다. 소년 때처럼 녀석들이 두 패로 나뉘어 길을 차단하지는 않았다.

― 뒤로 물러나.
대장이 손에 든 가방을 소년에게 건네며 침착하게 말했다.
― 조심해, 자식들이 칼까지 들었어.
소년이 대장이 건네는 가방을 받아 들고 엉거주춤 뒤로 물러서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앞장 선 주걱턱이 침과 함께 퉤, 하고 꽁초를 담벼락에 튕겨 뱉고는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잭나이프를 꺼내 찰칵, 하고 날을 펼쳤다.

― 너거 둣놈이 우리 유신클럽을 아주 우습게 알고 있다 이거지? 지금이라도 꿇어앉아 빌면 용서해준다. 맞고 꿇어앉을래? 그냥 꿇어앉을래?
어느 새 대장의 발치께까지 다가온 주걱턱이 오른손에 든 잭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말했다.

― 꼬챙이 치워.
대장이 말했다. 그 음성은 조용하고 침착했다.

― 와, 이 새끼 봐라.
주걱턱이 가소롭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침을 찍, 뱉으며 말했다. 한 발짝 더 다가온 주걱턱이 손에 든 나이프를 대장 얼굴 바로 앞에서 휙휙 휘둘러 위협했다. 그러나 대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주걱턱이 휘두르는 칼을 피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 이 새끼!
칼을 휘두르던 주걱턱이 앞으로 내달으며 왼 주먹을 뻗어 대장의 얼굴을 가격하고 나왔다. 그러나 대장은 그 자리에 가만히 선 채로 고개만을 뒤로 살짝 젖혀 피했을 뿐이었다. 내지른 주먹이 빗나가 버린 주걱턱이 이번에는 오른쪽 다리를 뻗으며 돌려차기를 시도하고 나왔다.

―악!
순간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렸다. 대장은 그대로 서 있었다. 비명은 주걱턱의 입에서 토해진 것이었다. 주걱턱이 퉁겨지듯 몇 발자국 뒤로 게걸음질을 하다가 손에 든 칼을 떨어드리고 양손으로 사타구니를 움켜잡은 채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주걱턱의 얼굴은 극도의 고통으로 일그러져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돌려차기를 하는 주걱턱이 오른쪽 다리를 드는 순간 대장이 가만히 선 자세에서 녀석의 사타구니 급소를 정확하게 올려 차 버린 것이었다.

주걱턱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자, 뒤에 서 있던 악동과 해골이 한꺼번에 대장에게 달려들었다. 주걱턱처럼 둘 다 손에 잭나이프를 들고 있었다. 해골이 대장의 머리를 겨냥하고 솟아오르듯이 발을 올려 차며 공격을 해왔고, 악동이 대장의 복부를 겨냥하고 칼을 찔러 왔다.

대장이 가볍게 머리를 숙여 해골이 내지르는 발차기를 피함과 동시에 허리를 옆으로 비틀어 악동이 내지른 칼을 피했다. 순간, 두 개의 비명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 악!
― 아아악!

대장의 머리를 겨냥하고 올려 차기를 시도하던 해골이 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뒤로 벌렁 자빠졌다. 해골은 햇볕 쨍쨍한 한 여름날 자갈길에 패대기를 쳐져 배를 드러낸 개구리처럼 드러누운 채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개구리처럼 뻗어버린 해골 또한 대장이 정확하게 겨냥하고 올려 찬 발에 사타구니 급소를 걷어차인 모양이었다.

소년이 해골에게서 눈을 돌려 악동을 바라보자, 어느 새 대장의 손에 잡혀 팔이 등 뒤로 꺾여 버린 악동이 칼을 떨어뜨린 채 어깨를 위로 치켜 올리면서 아아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에 악동 뒤에 서있던 따까리와 나머지 둘은 지레 겁을 집어먹은 채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었다. 대장이 팔이 뒤로 꺾인 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악동의 무릎을 뒤에서 가볍게 걷어찼다. 아악, 악동이 또다시 비명을 지르며 빗물이 고여 있는 골목 물웅덩이에 철벅, 무릎을 꿇었다.

― 이이익! 씨이~.
악동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장의 완력에 굴복 당해 분을 참지 못하고 내지르는 소리였다.

― 모두 여기 앞으로 나와 꿇어 앉아. 그렇지 않으면 이 자식 어깨가 절단난다.
대장이 다시 한 번 꿇어앉은 악동의 팔을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악동이 아아악, 다시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 어서 와 꿇어앉지 못해. 좋아, 이 새끼 갈비뼈도 추려줄게.
대장이 악동의 팔을 뒤로 꺾어 잡은 채로 그때까지 옆에 드러누워 있는 해골의 옆구리를 호되게 걷어차며 말했다.

해골이 다시 악, 하는 비명과 함께 옆으로 뒹굴며 빗물에 젖어있는 흙바닥에 얼굴을 쳐 박았다. 그 순간, 몇 발자국 떨어져 무릎을 꿇고 있던 주걱턱이 벌떡 일어나 칼을 내지르며 기습공격을 해왔다.

― 조심해.
소년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대장이 재빨리 한 발짝 옆으로 비켜서는 것과 동시에 허리를 뒤로 거의 직각으로 휘면서 주걱턱의 칼을 가까스로 피했다. 칼이 빗나가버린 주걱턱이 다시 자세를 갖추려는 순간 허리를 세우는 반동과 함께 대장이 돌려 찬 오른발이 주걱턱의 명치에 그대로 꽂혔다. 주걱턱이 숨이 콱 막힌 듯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털썩, 무릎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그런 주걱턱의 턱을 대장이 다시 내질렀다.

― 이리와 꿇어앉지 못해. 진짜 이 새끼 어깨 절단 나는 것 보고 싶어.
대장이 다시 악동의 팔을 세게 꺾어 올렸다.
― 아아악! 야, 새끼들아. 빨리 시키는 대로 해. 빨리!
악동이 울음에 가까운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외쳤다.

뒤에 서있던 따까리와 나머지 녀석 둘이 겁을 먹고 주춤주춤 다가와 먼저 무릎을 꿇었다. 해골도 엉금엉금 기듯이 다가와 악동 발치께에 무릎을 꿇었다. 주걱턱은 잠시 기절을 했는지 여전히 엎어진 채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어서 사과해.
대장 뒤에서 가방을 든 채로 엉거주춤 서 있는 소년에게로 악동을 돌려 앉히면서 대장이 말했다. 고통을 참느라 벌겋게 상기된 악동의 얼굴이 소년의 발아래에 있었다. 소년은 악동의 얼굴을 그대로 걷어차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악동에게 당한 보복을 고스란히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은 참았다.

― 아악! 잘못했어.
대장이 다시 한 번 팔을 꺾어 올리자, 악동이 비명을 지르면서 마지못해 소리쳤다. 대장이 다시 악동을 돌려세우고는 등 뒤로 꺾어 잡고 있던 팔을 풀어 주는 것과 동시에 발바닥으로 엉덩이를 걷어찼다. 악동이 꿇어앉은 녀석들 앞으로 엎어질듯이 뒤뚱거리며 몇 걸음을 내딛고는 겨우 균형을 잡고 멈춰 섰다.

― 비겁하게 다른 사람을 괴롭히지 마. 시비 걸고 싶으면 내게 직접 해.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다리를 절룩거리는 해골과 오른손으로 턱을 받친 주걱턱, 왼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감싼 채 골목을 떠나는 악동의 등에다 대고 대장이 소리쳤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얼마 있지 않으면 통행금지 시간이 될 모양이었다. 비가 그친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

그해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대장에게 수모를 당한 악동클럽은 이상하게도 여름 방학이 다 지나도록 잠잠했다. 소년은 그런 평온이 오히려 더 불안했다. 아직까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여전히 악동클럽의 적의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분명 다른 방법으로 보복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대장과 안경에게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소년은 속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었다.

9월이 되었다. 일요일, 밤이 이슥해서야, 소년은 고향에서 어머니가 싸 준 쌀과 밑반찬거리를 가지고 대장 집으로 돌아왔다. 소년은 대장 집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로 별도로 하숙비를 내고 있지는 않았다. 대장 어머니가 받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은 시골 고향에서 농사를 지은 쌀과 잡다한 반찬거리 등을 수시로 가져와 하숙비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전날 토요일, 막차를 타고 고향에 갔던 소년이 쌀과 몇 가지 찬거리가 든 보퉁이를 들고 집에 돌아오니, 대장 어머니가 대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 이제 오는구나. 부모님 두 분 다 무고하시던?
― 예.
― 그런데 얘가 왜 이렇게 늦는지 모르겠구나. 아침에 학교에 간다고 했는데.

그러고 보니 밤이 늦은 시간이라 응당 집에 있어야 할 대장이 보이지 않았다. 대장이 아무런 말도 없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소년은 문득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불현듯 악동무리의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 제가 한 번 나가 볼 테니, 어머님은 그냥 계세요.
― 배고플 텐데, 밥이라고 먹고 나가렴.
― 괜찮습니다. 나중에 같이 먹을게요.

소년이 집을 나와 골목 어귀까지 나왔을 때까지도 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오는 것일까. 소년은 시내버스 정류소까지 나가 보았다. 몇 대의 버스가 지나쳤지만, 대장은 나타나지 않았다. 얼마 있지 않으면 시내버스도 끊어질 시간이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악동무리의 얼굴이 다시 한 번 눈앞에 어른거렸다. 소년은 점점 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정류소에서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을 돌자, 책가방을 들고 앞에서 걸어가는 대장의 뒷모습이 보였다. 무사하구나. 소년은 가슴을 쓸어 내렸다. 대장과 단지 길이 어긋났을 뿐이었다.

― 왜 이렇게 늦었어?
소년이 앞서가고 있는 대장을 뒤쫓아 뛰어가며 말했다.
― 기다리고 있었니?
― 그래, 버스정류소에서 한참을 기다렸어.
― 자식들이 시비를 걸어오잖아. 그래서 좀 늦었어.
― 누구? 악동자식들 말이니?
― 응, 그 자식들 아니면 누가 시비를 걸겠어.

대장이 걸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둘이 함께 집으로 들어서자, 그때까지도 마당에서 서성이며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가 비로소 안심을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대장이 갑자기 멈칫하며 마당 모퉁이에 있는 수돗가로 가서 손을 씻었다. 손에는 피같이 보이는 붉은 자국이 묻어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못 본 척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장 어머니가 알게 되어 걱정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녁을 먹고 방으로 건너온 소년이 대장에게 물었다.

― 무슨 일이 있었는데? 아까 손에 묻은 것, 피 맞지? 어떻게 된 거니?
― 별일 아니야. 학교를 나오는데, 따까리자식이 학교 뒤 공터로 불러내잖아. 그곳에서 악동새끼들 몇 놈 쥐어박아 줬어. 그런데 따까리자식이 분을 못 참았는지, 제가 휘두르던 칼로 제 배를 찔러 버리잖아. 그러자 나머지자식들은 비겁하게 모두 도망을 가버리고. 그래서 할 수 없이 혼자서 따까리자식을 병원에 데려다 주고 왔어.

― 그 새끼들 어째 조용하다 했더니, 결국 사고를 치고 마는구나. 그래서? 어디 다친 데는 없어?
― 그 자식들 무더기로 덤벼봐라. 내 몸에 어디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있는가. 별일 아니니 걱정 마. 의사말로는 다행이 바깥 피부만 조금 찔려 몇 바늘 꿰매면 된다고 했어. 자식이 죽을 것 같지는 않더라. 그만 자자.

대장이 요 위에 벌렁 누우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오후 내내 덜컹거리는 시골버스에 시달린 소년도 피곤했다. 불을 끄고 대장과 함께 누웠지만 어쩐지 불안했다. 몸은 피곤하였지만, 의식은 더욱 말똥말똥해지면서 불안한 상념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대장은 따까리가 제 배를 찔러 자해를 했다고 했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다. 대장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 대장이 악동무리가 가지고 다니는 칼과 같은 무기를 가지고 다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장 자신의 몸이 바로 무기였다. 대장은 어릴 적부터 골목대장이었고, 어떤 왈패들과의 싸움에서도 한 번도 진 적이 없었다.

대장은 그것이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배운 단전호흡과 기체조氣體操 때문이라고 했다. 고향 마을에서 대장은 아침마다 아버지와 함께 산이나 집에서 수행을 했다고 했다. 노루사냥이 있었던 그날도 대장 아버지는 산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 수행과정에는 단전호흡이며 악동무리를 제압했던 호신술이나 무술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대장과 함께 생활하게 된 이후로, 소년도 시간이 날 때마다 대장으로부터 단전호흡이며 기체조를 배우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어릴 적부터 수행이 몸에 밴 대장처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가끔씩 대장은 마당에서 소년이 처음 보는 아주 느린 동작으로 춤을 추기도 했다. 기무氣舞라고 했다. 단무丹舞라고도 했다. 그것은 중국무술을 가르치는 체육관 앞을 지나다가 본 적이 있는 태극권太極拳 동작과 유사했다.

느리고 미세한 하나하나의 춤동작에 집중해 있는 그 순간, 대장의 표정은 아주 평화롭게 보였다. 그 동작은 우아하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대장은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함께 해 온 수행을 통하여 호신술이며 태극권 같은 무술을 배워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악동무리가 덤벼들었을 때도 녀석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러나 소년은 내심 불안했다. 특히 따까리가 자해를 했다는 것이 목에 걸린 가시처럼 영 꺼림칙했다. 악동은 싸움으로는 대장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폭력으로는 도저히 대장을 굴복시킬 수 없었던 악동이 뭔가 다른 음모를 꾸몄던 것은 아닐까?

따까리가 자해를 한 것은 악동이 그동안 치밀하게 준비한 음모일지도 모른다. 악동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녀석이다. 악동이 따까리를 사주하여 일부러 대장에게 시비를 걸어 칼로 자해를 하도록 하고, 이것을 대장이 찌른 것으로 뒤집어씌운다.

악동이 치밀하게 준비한 음모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들자, 소년은 불안한 마음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대장은 아주 편안하게 잠들어 있었다.

*

다음날, 대장과 함께 학교로 걸어가는 동안에도 소년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러나 대장은 태평스러웠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 교실에는 악동도, 그를 추종하는 다른 녀석들도 보이지 않았다. 따까리는 자해를 하여 병원에 있다고 하더라도, 악동과 다른 녀석들은 교실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수업이 시작되기까지도 녀석들은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악동이 결석을 했다는 사실이 더욱 불안했다. 오전 수업을 마칠 때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국사 시간이었다. 소년의 자리는 창가였다. 창밖으로 보면 학교 운동장이 한 눈에 들어왔다. 수업이 시작되어 텅 빈 운동장으로 회색 점퍼를 입은 두 남자가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직감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두 남자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소년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복도 쪽 창가에 교장 선생님과 두 남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교장 선생님이 창문을 통하여 수업을 하고 있는 국사 선생님을 손짓으로 불렀다. 복도로 나간 국사 선생님에게 교장 선생님이 무언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다시 교실로 들어온 국사 선생님이 대장을 불러내었다. 대장이 국사 선생님과 함께 복도로 나갔다. 두 남자가 대장에게 뭔가를 얘기하는 모습이 보였다. 대장과 교장 선생님, 두 남자가 복도에서 사라졌다. 불안은 현실화되고 있었다. 두 남자와 대장이 나란히 서서 운동장을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 어, 저기 뭐꼬? 저거 수갑 찬 거 아이가?

소년 뒷자리에 앉은 학생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운동장을 걸어가는 세 사람을 바라보고 얼결에 소리쳤다. 수업 중인데도, 교실 안에 있던 학생들 모두가 우르르 창가로 모여들었다. 소년도 똑똑히 보았다.

두 남자가 좌우 양쪽에서 호위하듯 대장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 중간에서 양팔을 잡힌 채 운동장을 걸어 나가는 대장의 손목에서 점차 여위어 가는 가을햇살이 반짝이고 있었다.
 

*

소년이 교실에 남겨진 대장의 가방을 들고 집으로 왔다. 그날, 대장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미 학교에는 대장과 악동클럽이 벌인 싸움 얘기가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일요일 밤, 학교 뒤편 공터에서 악동무리와 대장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고 했다.

따까리와 대장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런데 수세에 몰린 대장이 갑자기 칼을 꺼내어 따까리의 배를 찔렀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한 따까리의 병문안을 갖다 온 한 학생이 녀석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라고 했다.

나흘째 되는 날, 악동과 그를 추종하는 녀석들이 학교에 나타났다. 악동이 입에 거품을 물고 대장을 욕했다. 대장이 따까리에게 얻어맞게 되자 비겁하게 칼을 꺼내어 따까리의 배를 찔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해골과 주걱턱 같은 진짜 폭력배가 대장의 발에 채여 나가떨어질 때도 칼을 사용한 것은 오히려 그들이었다. 대장이 칼을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칼을 들고 덤비는 녀석들을 맨몸으로 단번에 제압하는 대장을 이미 보았던 터였다. 그것은 터무니없는 모략이었다.

대장은 따까리가 자해를 했다고 했다. 자해를 한 녀석을 직접 병원에 데려다주고 왔다고 했다. 대장이 거짓말할 이유가 없었다. 악동무리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학생은 없었다. 그렇다고 악동무리가 하는 말에 토를 다는 학생도 없었다.

악동무리 외에 따까리와 대장의 싸움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싸움에는 악동무리 네 명과 대장만 있었을 뿐이었다. 악동을 위시한 무리의 얘기가 사실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년은 악동무리의 거짓 주장에 반박하지 못했다. 안경도 어쩌지 못했다. 대장이 없는 상태에서 악동무리에게 대항해 보았자 오히려 더 큰 보복만이 돌아올 터였다. 그리고 싸움 현장에 없었던 소년이나 안경이 그들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할 방법도 없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서도 대장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병원에 입원했다는 따까리가 드디어 교실에 나타났다. 배를 드러내고 꿰맨 자리를 자랑삼아 내보이며 대장이 칼로 찔러 생긴 흉터라고 했다. 입에 거품을 물고 대장을 욕하며 대장은 교도소에 갈 거라고 했다. 경찰이 그렇게 말했다고 했다. 그 말을 확인이라도 하듯 대장에 대한 재판이 열린다는 법원통지서가 집으로 왔다.

소년과 안경은 조퇴를 하고 대장 어머니와 함께 재판이 열리는 법원으로 갔다. 소년이 귀띔을 해둔 탓인지 의외로 소녀도 법정에 나와 있었다. 법정은 어두컴컴하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이름이 호명되고, 재판정 옆쪽에 나있는 출입문을 통하여 푸른 수의를 입은 대장이 나왔다. 소녀와 대장 어머니가 곧 울음을 터트릴 듯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대장이 방청석으로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소년, 소녀, 안경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대장의 눈빛은 잔잔했다. 그 눈빛은 자신은 죄가 없으니, 아무런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검은 법복을 입은 검사가 일어섰다. 검사가 대장에게 따까리의 이름을 호명하고는, 따까리의 배를 칼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실이 있느냐고 물었다.

― 없습니다. 내가 찌른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제 배를 찔러 자해를 한 것입니다.

대장이 추호도 머뭇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했다. 검사가 따까리와 악동무리 둘의 이름을 차례로 호명하며 그들을 증인으로 신청하겠다고 했다.

2주일 후에 다시 재판이 열렸다. 먼저 따까리가 나왔다. 검사가 싸움을 할 때 대장이 그의 복부를 칼로 찔렀느냐고 물었다.

― 예, 틀림없습니다. 바로 여기를 찔렀습니다.
따까리가 증인석에서 교복 아래 티셔츠를 위로 걷고 실밥 자국 흉터가 나있는 배를 내보이며 대답했다. 대장이 따까리를 쏘아보았다. 대장의 눈길을 마주 친 녀석이 움칠했다. 대장이 판사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 거짓말입니다.

악동무리 둘이 다시 증인으로 나왔다. 검사가 같은 질문을 했다.

― 예, 제가 틀림없이 보았습니다.
두 녀석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말했다. 대장이 녀석 둘을 쏘아보았다. 대장의 눈길을 마주친 녀석들이 고개를 숙이고 눈길을 돌렸다. 대장이 다시 판사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 모두 거짓말입니다.

다시 2주일 후에 판사의 선고가 있었다.

― 보호소년은 비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합의를 하지 않았고, 반성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보호소년을 소년원에 송치한다.

대장 어머니와 소녀가 동시에 울음을 터뜨렸다. 옆에 앉아 있던 안경이 주먹을 불끈 쥐고 법정의자를 내려쳤다. 소년 또한 울고 싶었다. 이것은 아니다. 일어나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소년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소년의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대장은 이미 악동이 치밀하게 쳐놓은 덫에 단단히 걸려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판사의 선고에도 대장은 담담했다. 모든 것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처럼 의연했다. 대장은 선고를 하는 판사를 오히려 애처로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길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오판을 하는 판사에 대한 무언의 항의이자 대장 나름의 분노의 표시였다.

대장이 고개를 돌려 방청석에 있는 소년과 안경을 보았다. 소년도 안타까운 눈길로 대장을 마주 바라보았다. 대장의 가슴에는 분노가 이글거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장은 차가운 의지로 맹렬하게 타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대장의 눈길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대장이 소년과 안경에게 말했다.

― 절대로 굴복하지 마! 절대로!

대장의 목소리는 깊고 담담하면서도 단호했다. 그 목소리에는 묵직한 힘이 실려 있었다. 혹시나 대장이 없어진 학교생활 동안, 소년과 안경이 악동무리에게 더 큰 수모를 당하더라도 결코 굴복해서는 안 된다는 대장의 의지와 당부가 배어 있었다.

― 어머니를 부탁해.

대장이 정리에게 이끌려나가면서 말했다.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분노와 안타까움, 안경의 눈에도 눈물이 흘렀다.

그해 가을, 대장은 그렇게 소년의 곁을 떠나갔다.

― 연재 제26회 <사랑과 용서 1>은 2019. 4. 15.(월) 에 게재됩니다.
― 《다음 검색창》에서 『살인 교향곡』을 검색하시면, 지금까지 연재된 모든 연재물(연재 제1회부터 제25회까지)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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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악동클럽 1, 2, 3>에서의 배경과 상황묘사는 작가가 유년시절 겪었던 직접 체험이 바탕이 되었다. 작가는 시골에서 중학을 중퇴하고 부산으로 이사를 왔는데, 너무 가난하여 더 이상 학교를 갈 수 없었다.

그때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좌절감과 자포자기상태에서 중학 2학년 어린 나이로 사회생활을 하며 만났던 형이 있었다.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나이가 네 살 많았고, 그 아버지가 종업원 200명 정도를 거느린 회사 사장에다 삼촌이 검사로 재직하고 있다는 유복한 집안의 외동아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집안환경에서도 그 형은 학교에 가지 않고 당시 우범지역의 폭력배들과 어울려 사창가를 전전하며 소매치기를 하고 대마초를 피우고 다녔다. 그 당시 반은 강요로 반은 호기심에 이끌려 6개월여 동안 그 형을 따라다녔는데, 어느 날 밤, 그 형에게 이끌려갔던(?) 사창가에서 이 단락에서 묘사한 장면과 유사한 폭력과 패싸움이 있었고, 그 때문에 그 형과 몇몇이 한 달여 동안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작가는 정말 필사적으로 그들 무리로부터 도망쳤다. 그 후 작가는 심기일전 혼자 공부하여 중학과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법대에 진학하였다. 그때 어린 나이로 철모르고 그 형을 따라다니며 만났던 여러 폭력배들의 모습이 악동, 해골, 주걱턱, 따까리 등 이 소설에 나오는 작중인물들의 캐릭터로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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