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19회 <첫사랑 1>

Symphony in C minor ‘Fate’

첫사랑 1 

곽 판사 : 피고인 김준하.

김준하 : 예.

곽 판사 : 공소장 부본 송달받았지요?

김준하 : 예.

곽 판사 : 내용을 읽어 보았나요?

김준하 : 읽어보지 않았습니다.  

낮고, 느린, 그러나 목소리에 힘이 실린 뚜렷한 대답.

준하의 도전적인 어투에 곽 판사의 얼굴이 굳어진다.  

곽 판사 : 공소장을 받고서도 읽어보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김준하 : 예, 특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준하의 여전히 도전적인 어투.

두터운 안경너머로 말없이 준하를 응시하는 곽 판사.

준하도 곽 판사의 눈길을 피하지 않는다.

팽팽한 긴장 속에 휩싸이는 법정.  

곽 판사 : 피고인 박형기.

박형기 : 예.

곽 판사 : 공소장 부본 송달받았지요?

박형기 : 예.

곽 판사 : 내용을 읽어 보았나요?

박형기 : 예.  

곽 판사가 다시 한 번 준하를 날카로운 눈초리로 응시하고는 말한다.  

곽 판사 : 검사의 모두진술冒頭陳述을 듣기 전에 미리 말씀드립니다. 피고인 김준하, 피고인의 불손한 태도는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검사는 기소의 요지를 진술해 주십시오. 

검사석에 앉아 있던 용훈이 일어나 공소사실의 요지를 진술해 나가기 시작했다.  

― 피고인 김준하는 19××. ×. ××. 특수상해죄로 소년원 송치, 19××. ×. ××. 국가보안법 및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3년의 실형을 받은 전과가 있다. 피고인은 당시 위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검사인 김인환을 보복 살해하기로 마음을 정하고……. 

용훈의 목소리는 피고인들의 범죄사실에 대한 유죄를 단정하는 확신에 차 있다. 재판이 진행되기도 전에 이미 유죄를 단정하는 용훈의 확신에 찬 어조는 기영을 다시 한 번 깊은 무력감에 빠져들게 했다.  

기영이 준하를 위해 준비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비록 유치장 접견실에서 준하가 무엇을 암시하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것이 검사의 공소사실을 반박할 증거나 진술이 될 수는 없었다. 기영은 자신이 준하의 변호인이 아니라 오히려 방청객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져들고 있었다.  

기영은 눈을 들어 피고인석에 선 준하를 바라보았다. 기영의 조바심과는 달리 준하는 여전히 침착하고 단정했다. 흔들리지 않는 담담한 표정에 온화한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기영은 준하에게 향했던 시선을 돌려 방청석을 돌아보았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피고인과 재판부를 응시하고 있었다. 방청석은 마치 생명이 없는 목각인형을 앉혀 놓은 것처럼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혹시, 아니 분명 그녀가 와 있을 것이다. 기영은 방청석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곳에 기영이 찾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체한 듯 가슴이 꽉 메어졌다. 오지 않는 것인가. 만약 그녀가 있다면, 그녀만 나타난다면…….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

3월, 새 학년을 맞았지만, 소년은 4월이 되기까지 학교에 가지 못했다. 노루사냥이 있었던 그날 저녁부터, 소년은 계속되는 고열과 기침에 시달리며 앓았다. 단순한 감기 몸살이 아닌 것 같았다. 일주일이 지나도 미음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하고 고열과 기침이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자 어머니가 훌쩍이며 푸념처럼 말했다.

― 아이고, 노리(노루)고기 먹으면 재수 없다 카더마는 노리구신(노루귀신)이 단단히 씌었나베. 뭐 할라고 어른들 노리 잡는데 쪼맨(작은, 어린) 니가 따라갔단 말이고. 노리구신 떼내는 굿이라도 해야겠네.

어머니의 말대로 노루귀신이 붙었는지도 몰랐다. 일주일 내내 기침과 고열에 들떠 있는 소년의 뇌리에서 춤을 추는 것처럼 너울거리며 떨어지던 노루의 환영이 지워지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눈물에 젖은 맑고 여린 노루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때마다 소년의 가슴도 눈물에 젖었다. 실제로 큰 굿은 하지 않았지만, 무당이 소년의 머리맡에서 요령을 흔들며 주문을 외고 방문에 부적을 붙이고 갔다.

그러나 무당의 부적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노루귀신을 쫓는다고 두 시간도 더 넘게 방문을 열어놓아 찬바람을 쇤 탓인지 병세는 오히려 더 심해졌다. 가슴을 쥐어짜는 통증에 가래에 피가 섞여 나오기도 했다. 열흘이 지나 아버지가 읍내에 가서 의사를 모셔왔다. 읍내에서도 병원이라고는 한 곳 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가 소년의 엉덩이에 주사를 놓으며 말했다.

― 감기몸살이 도져 폐렴으로 번졌어요. 진작 병원으로 데려왔으면 빨리 나았을 텐데. 병을 키워 놓았네요.

아버지가 닷새 장날마다 읍내를 다녀오고, 읍내 병원에서 받아온 알약을 열흘이나 먹고 난 뒤에야 고열과 기침은 다소 가라앉았다. 아버지가 읍내 장터에서 사온 운동화가 소년의 머리맡에 놓여 있었다. 소년이 아파 누워있는 동안에 대장이 말없이 떠나버린 것처럼, 그해 겨울도 인사도 없이 가버리고 봄이 왔다. 소년의 집 앞 개울 언덕배기 매화가 먼저 꽃망울을 터트렸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봄은 언제나 진한 매화향기 속에 씁쓰름한 쑥 내음을 머금고 왔다. 소년의 집 마당 뒤편 양지바른 돌담 아래에서 쑥이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니가 그 쑥을 캐어 쌀가루를 풀어 끊인 쑥국이 그나마 쇠약해진 소년의 기운을 북돋웠다. 그러나 소년을 괴롭히던 기침과 고열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어느덧 봄이 완연해진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소년은 병석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학교에 갔다. 아버지가 사다 준 처음 신어보는 운동화는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다. 그러나 3교시가 되었을 때 다시 끓어 오르는 기침 때문에 결국 조퇴를 하여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학교 운동장 정문을 나와 해묵은 버드나무 가로수가 줄지어 선 신작로를 따라 한참 걸어가면 닷새마다 열리는 장터가 나왔다. 이 장터 초입 신작로 왼편에 빨간 벽돌로 외벽을 쌓은 간이우체국이 있었다. 장터 인근 마을 거의 모든 집들이 울퉁불퉁한 돌담이나 투박한 흙벽을 쌓은 것이었다. 그러나 재작년에 새로 지어진 이 우체국만은 빨간 벽돌로 아담하고 맵시 있게 단장되어 있었다.

버드나무 가지에는 어느새 파릇파릇 새움이 실눈을 뜨고, 신작로 옆 논두렁에서는 벌써 웃자란 연초록 새싹들이 봄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싱그러운 봄 향기에 그토록 지끈지끈하던 두통도 다소 가셔 소년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소년은 줄지어 선 늙은 버드나무 가로수 밑동에 나있는 새 가지 하나를 꺾어 버들피리를 만들었다. 이제 한창 물이 오르는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 껍질이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비틀면 껍질 속 나뭇가지와 껍질이 따로 분리된다.

그리고 한손으로 껍질을 모아 쥐고 또 한손으로 분리된 속 나뭇가지를 굵은 쪽 가지에서 조심스럽게 당기면 껍질은 속이 빈 대롱이 된다. 이 대롱의 한쪽 끝 바깥쪽 표피 부분을 앞니로 살짝 깨물어 벗겨내고 대롱 입구를 납작하게 만들어 불면 대롱에서 삘~릴리, 피리소리가 나는 것이다.

소년은 버들피리를 불면서 신작로를 따라 장터를 향해 걸었다. 신작로 옆으로 펼쳐진 새파란 보리밭에는 아지랑이가 너울거리고, 소년이 부는 삘~릴리, 버들피리소리에 보리밭에서 이제 막 털갈이를 끝낸 노고지리 떼가 날개를 파닥이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소년이 버들피리를 불면서 한참을 걸어 장터 가까이 다다랐을 때, 왼편 간이우체국 출입문 계단에 앉아있는 한 소녀가 눈에 띄었다. 작년 겨울방학이 되기 전까지 등, 하굣길마다 매일 우체국 앞을 지나쳤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낯선 아이였다.

새 학년을 맞아 5학년이 된 소년보다는 분명 아래 학년으로 보이는 얼굴 피부가 유난히 뽀얀 여학생이었다. 연두색 스웨터에 가늘고 긴 목, 단정한 단발머리, 자주색 스커트와 하얀 양말에 까만 단화를 신고 있었다. 소년이 다니는 시골학교의 촌티 나는 여학생과는 맵시부터가 달랐다. 소녀가 크고 동그란 눈을 말갛게 뜨고 버들피리가 신기한 듯 소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의 시선을 의식한 소년은 공연히 멋쩍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5학년이나 된 소년이 1, 2학년 어린 꼬마들이나 불고 다닐 버들피리를 불고 있었다는 것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더욱이나 처음 보는 깔끔한 차림새의 도회지 소녀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소년은 괜스레 부끄러워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마저 붉어졌다.

소년은 소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불고 있던 버들피리를 신작로 길 위에 슬며시 떨어뜨리고 말았다. 소년은 뛰다시피 빠른 걸음으로 우체국 앞을 지나쳤다. 소녀가 앉아있는 계단 앞을 지나치는 순간, 소년은 갑자기 심장이 세차게 뛰는 것을 느꼈다. 쿵쿵, 심장에서 울리는 고동소리가 귀에까지 들렸다.

얼마를 나아갔을까. 갑자기 뒤에서 삘~릴리, 버들피리소리가 들렸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우체국 계단에 앉아있던 소녀가 신작로 중간에 나와 서서 소년을 바라보며 버들피리를 불고 있었다. 소년이 부끄러워 길 위에 떨어뜨렸던 바로 그 버들피리였다. 소녀의 머리 위에서 너울너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년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소년이 뒤돌아보자, 소녀는 도망치듯 뛰어가 우체국 안으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소년은 그대로 길 위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귀에는 여전히 삘~릴리, 버들피리소리가 들리고, 눈에는 소녀의 잔영이 아지랑이 속에서 너울거렸다.

*

소녀는 간이우체국에 새로 부임해 온 우체국장의 딸이었다. 단정한 단발머리, 가늘고 긴 목, 햇볕에 타서 꾀죄죄한 시골소녀들 피부와는 다른 뽀얀 살결, 대부분의 시골소년소녀들처럼 맨발에 검정고무신이 아닌 하얀 양말에 검정 단화를 신은 날렵한 맵시, 소녀가 아주 큰 도시에서 왔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과, 소년이 그때까지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큰 도시에 대한 동경과 함께, 소녀에 대한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소년은 하굣길에 장터로 향하면서 빨간 벽돌 우체국 담장이 보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전에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야릇한 감정이었다. 멀리서부터 소녀의 모습이 우체국 계단에 보이면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우체국 창문 너머로 소녀의 그림자가 얼핏 비치기만 해도 가슴은 기쁨으로 환하게 피어났다.

소녀가 보이지 않으면 아쉬움에 바로 집으로 가지 못하고 우체국 앞을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갔다 오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나 우체국 안으로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은 그때까지 편지를 부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우표 값이 얼마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일부러 오가는 동안에라도 소녀가 한번이라도 나타나면 벅차오르는 기쁨으로 눈시울이 핑 돌았다. 그러나 끝내 소녀를 보지 못한 날이면, 집에 돌아와서도 괜한 심술이 나서 쫑쫑대는 병아리를 거느리고 모이를 쪼는 어미닭에게 돌팔매질을 하며 화풀이를 하곤 했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어떤 날은 학교 앞을 흐르는 강물이 붉은 은빛으로 물들 때까지 소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그동안에 장터와 우체국 앞을 열 번도 넘게 오가며 가슴을 졸였다. 그러나 결국 소녀를 보지 못하고 어깨가 축 처져 땅거미가 으슥하게 내리는 저녁 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돌아오는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소년은 가슴을 가득 채우는 허전함과 고립감에 괜스레 눈물을 글썽였다. 하지만 소년은 왜 소녀가 보이지 않으면 까닭 모르게 슬퍼지고 가슴이 벙벙해지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노을 물든 강가에 또 다른 노을이 지고, 새로운 강물이 불었다 흐르고,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두 번씩이나 강가를 다녀갈 때까지도 소년은 소녀에게 단 한마디 말조차도 건네 보지 못한 채 연연한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다.

*

다시 봄이 오고, 소년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소년은 읍내에 있는 중학교까지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소년이 사는 산골 마을에서 우체국과 초등학교가 있는 면 소재지까지 자전거로 이십분 정도가 걸렸다. 이곳에서 다시 읍내에 있는 중학교까지는 한 시간이 더 넘게 걸렸다. 비록 학교에 가기 위해 해가 뜨기도 전, 어두운 새벽에 집을 나서 힘겹게 페달을 밟아야 했지만, 소년은 학교 가는 일이 즐거웠다.

등굣길, 강변 신작로를 힘차게 페달을 밟아 빠르게 달릴 때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좋았다. 바람에는 들꽃향기와 풀냄새가 함께 스며들어 있었다. 바람에 낮은 풀들이 스러지고, 막 잠에서 깨어난 풀 속 여치가 뛰어올랐다. 수직 낙하한 제비가 여치 한 마리를 입에 물고 버드나무 가로수 가지 위를 빠르게 날아갔다.

*

다시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버드나무 잎사귀 그늘에서 한여름 땡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매미가 쉬지 않고 울었다. 그 여름도 가고, 가을, 무성한 푸른 잎을 자랑하던 버드나무 가로수는 이제 누렇게 퇴색된 잎을 바람에 흩날렸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피어 제법 서늘해진 가을바람에 하늘거렸다.

하굣길, 소년은 코스모스가 하늘거리는 신작로를 따라 자전거를 달렸다. 저만치 우체국이 보였다. 소년은 벌써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한 이후, 무엇보다도 소년을 기쁘게 하는 것은 소녀가 소년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년이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녀는 일부러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우체국 계단 앞에 나와 가지런한 이빨을 살짝 내보이며 하얗게 웃었다. 어떤 날은 소년이 우체국에 다가가기도 전에 신작로까지 나와 멀리서 손을 들어 먼저 인사를 했다.

그러나 소년은 소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소녀가 애써 아는 체를 하며 웃어 주는데도 소년은 가슴만 두근거리고 괜스레 멋쩍어 얼굴만 붉히고 말았다. 오히려 소녀의 시선이 부끄러워 엉덩이를 치켜든 채 빠르게 페달을 밟아 그대로 지나쳐 한참을 달려간 후에야 비로소 가쁜 숨을 몰아쉬며 뒤돌아보았다.

그때마다 소녀는 하얀 웃음을 머금은 채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서서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떤 날은 소년에게 작별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바보같이, 왜 말조차 붙여보지 못할까? 소녀를 향한 애타는 마음과는 달리 소년은 그해 겨울방학이 되기까지 단 한마디 말조차 건네 보지 못했다.

소년의 중학 1학년은 그렇게 속절없이 지나갔다.

*

앞산에 진달래가 붉게 물들고, 연초록 들판에서 이름 모를 풀꽃들이 다시 피어났다. 신작로를 따라 늘어선 버드나무 가지에도 새움이 돋아났다. 2학년, 학교에 가는 첫 날 아침, 강물은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조용히 흘렀다. 강물은 물오리와 정답게 속삭이며 천천히 느리게 흘렀다. 

▲ 사진제공 임재수 사진작가

소년이 학교를 향해 자전거를 달릴 때 간이우체국에서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소년의 자전거를 앞질러 갔다. 그 버스에 풀을 빳빳이 먹인 하얀 칼라 교복을 입은 소녀가 타고 있었다. 소년보다 한 학년 아래인 소녀도 중학교에 진학한 것이었다.

소녀는 소년과는 달리 우체국 옆 버스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소년이 사는 산골 마을까지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았지만, 우체국이 있는 면 소재지와 중학교가 있는 읍내, 그리고 군내 다른 마을들을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 시골버스가 있었다.

소년이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는 새벽에 집을 나서 우체국을 지나고, 우체국과 중학교의 중간 지점쯤에 이르면 읍내로 가는 버스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소년의 자전거를 앞질러갔다. 그 버스 안에 소녀가 타고 있었다.

오후 3시,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아침과는 반대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가 소년의 자전거를 지나쳤다. 그 버스 안에서 소녀가 미소를 머금고 창밖으로 손을 내밀어 흔들었다.

창밖으로 내민 소녀의 하얀 손이 눈부셨다. 소년은 버스 꽁무니에서 일어나는 먼지와 매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엉덩이를 치켜들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소녀의 그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 연재 제20회 <첫사랑 2>은 2019. 3. 4.(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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