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18회 <그해 겨울 2>
Symphony in C minor ‘Fate’

그해 겨울 2

노루사냥이 시작되었다. 징과 꽹과리를 치며 노루몰이를 할 어른들은 20원을 받았고, 지게를 지고 잡은 노루를 산에서 마을 아래로 운반할 몇몇 덩치 큰 소년들은 10원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징과 꽹과리를 울리면서 마을 앞산 동쪽 능선에서 남쪽 골짜기로 노루를 몰아가기 시작했다.

소년은 지게를 진 대장과 함께 눈이 쌓인 숲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눈에 빠져 벗겨지지 않도록 대장은 검정고무신을 신은 발에 단단하게 꼰 세줄 새끼줄을 두 번이나 동여매었다. 흑인병사가 앞서고 대장과 소년이 그 뒤를 따랐다. 건빵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 탓인지 흑인병사가 대장에게 5원을 더 주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했다.

대장이 흑인병사에게 소년도 같이 가야 한다고 몸짓손짓을 섞어 얘기했다. 흑인병사가 덩달아 소년에게도 5원을 더 주었다. 그들은 동쪽 능선 노루몰이 동네 사람들과 마주보는 남쪽 골짜기 쪽에서 노루가 지나칠 만한 길목을 찾아 숲을 헤쳐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소년은 흑인병사와 대장을 뒤따르고 있었지만 뒤꿈치가 닳아 자꾸만 벗겨지는 검정고무신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대장처럼 새끼줄로 발을 동여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아까 받은 돈 15원이면 운동화를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버지께 그 돈을 주어 다가오는 읍네 장날에 운동화를 꼭 사달라고 할 참이었다. 소년은 바지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10원짜리 지폐로 꼭꼭 감싼 5원짜리 동전의 감촉을 다시 한 번 손가락에 느껴보았다.

와, 와, 노루를 몰아가는 마을 사람들의 함성과 징과 꽹과리 소리가 산허리를 타고 올랐다. 탕, 탕, 어디선가 노루를 발견한 듯 온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총성과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 니 아까 그 껌딩이가 이마에 총 여잣설 때(겨누었을 때) 겁 안 나더나?

소년이 대막대기로 나뭇가지를 툭툭 제치며 앞서가고 있는 대장에게 물었다.

― 그기 머시 겁나노! 지가 진짜 쏠 줄 알고? 나는 마 그 껌딩이가 일부로 내게 겁 줄라고 그라는 줄 알았다 아이가.

손발은 추위에 시렸지만 골짜기 오르막을 씩씩대며 올라오는 동안에 몸에서는 땀이 났다. 대장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소매로 닦는 한편 시린 맨손을 입김으로 후, 불며 말했다.

탕, 탕, 다시 한 번 능선을 메아리치는 총성이 울려 퍼졌다. 총성의 여운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와! 잡았다”고 외치는 몰이꾼들의 함성이 들렸다. 그때 흑인병사 앞 지척거리 덤불 속에서 누런 노루 두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후다닥 도망가는 것이 보였다. 어미와 새끼인 듯 했다. 어미는 제법 큰 송아지만 했다.

흑인병사가 재빠르게 조준을 하고 덩치 큰 어미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채 몇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총소리가 굉음을 내는 순간,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멈칫, 바지에다 오줌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깜짝 놀라 멍하게 서있는 소년의 시야에 풀썩 뒷다리를 꺾으며 경사진 언덕배기 소나무 아래로 뒹굴며 떨어지는 노루 한 마리가 보였다. 노루가 굴러 떨어지면서 소나무 둥치에 부딪쳤는지 높다란 솔잎가지 위에 쌓여 있던 얼음 눈이 미세한 조각으로 부서져 눈보라처럼 바람에 흩날렸다.

나뭇가지 사이로 스러지는 겨울햇살이 숨 가쁘게 달려와 미세한 눈의 입자에 부딪쳐 엷은 무지개를 만들었다. 무지개 끝에 매달린 가녀린 겨울햇살이 미세한 진동으로 떨렸다. 소년은 그 무지개에 눈이 부셨다.

흑인병사가 노루가 쓰러진 곳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노루는 흑인병사가 다가가기 전에 다시 눈을 털고 일어나 새끼가 먼저 달아난 숲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 갓 뎀!

흑인병사가 단 한방에 노루를 쏘아 잡지 못한 것이 못내 분한 듯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큰소리로 외쳤다. 도망치는 노루는 뒷다리 허벅지에 총알을 맞은 듯 심하게 절룩거리고 있었다. 흑인병사가 빠르게 조준을 하고 다시 한발을 쏘았다.

탕, 그러나 그 총알은 빗나간 것 같았다. 놀란 노루가 필사적인 힘으로 절뚝대며 더 빨리 달아나기 시작했다. 흑인병사가 총을 막대기삼아 앞을 가로막는 나뭇가지를 제치며 뛰다시피 노루를 뒤쫓았다. 소년과 대장도 흑인병사를 따라 빠르게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숲에는 노루가 흘린 빨간 핏방울이 하얀 눈 위에 선명한 꽃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노루를 뒤쫓는 흑인병사의 걸음이 빨라질수록 소년은 힘에 겨워 점점 더 걸음이 뒤처졌다. 자꾸 벗겨지는 고무신 때문에 걸음이 더욱 더뎠다. 그러나 대장은 용케도 뒤쳐지지 않고 흑인병사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따라갔다.

소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흑인병사와 대장을 뒤쫓아 한참을 나아갔을 때 갑자기 나무가 없는 밋밋한 바위능선이 나타났다. 바위능선과 그 아래에는 아직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 하얀 눈밭 위로 노루는 너무도 선명한 빨간 채색화를 그리며 절룩거리며 나아가고 있었다.

▲ 사진제공 김청수 시인

눈밭에서 반사되는 은빛 광선에 눈이 부신 소년은 가늘게 실눈을 뜨고 노루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총상이 꽤 깊었는지, 노루는 맨 처음 도망칠 때 보다 훨씬 힘겨운 걸음을 떼어놓고 있었다. 노루가 눈밭 위 편편한 바위능선 위에 멈춰 서서 잠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시야를 가로막는 나무나 바위와 같은 아무런 장애물이 없는 바위능선 위 노루는 아주 좋은 표적이 되었다. 흑인병사가 한쪽 무릎을 꿇고 노루를 똑바르게 겨냥했다. 노루는 오히려 고개를 돌려 자기를 겨냥하고 있는 흑인병사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탕, 능선을 메아리치는 총소리의 여음 속에서 노루가 순간적으로 풀쩍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바위능선 아래로 떨어져 새하얀 눈밭 위에 털썩 꼬꾸라졌다. 비명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에게는 노루가 허공으로 치솟아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그 짧은 체공시간이 아주 길게 느껴졌다.

노루의 몸이 허공에 떠있는 그 순간만큼은 산에 있는 모든 물상이 영원한 침묵 속에 빠져버린 듯 했다. 노루는 총을 맞아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공중으로 치솟아 춤을 추고 있었다. 네 다리와 목을 너울거리며 우아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산허리를 감싸고돌던 바람도, 새도, 나무도, 돌도, 산에 있는 모든 물상들이 숨을 숙이고 노루의 춤을 지켜보고 있었다. 노루는 총에 맞아 추락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리는 꽃잎처럼 나부끼며 낙하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경이롭고 눈부셨다.

― 굿! 굿! 오, 예스!

흑인병사가 짧은 환성을 연달아 올려 빛나는 하얀 눈밭 위의 침묵을 깨뜨렸다.

― 브라보!

노루가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자 흑인병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껑충 뛰어올라 땅을 굴리며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소년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 소년은 여전히 하얀 눈밭 바위능선에서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춤추는 동작으로 떨어지는 노루의 잔영을 착시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흑인병사가 쓰러진 노루 쪽으로 뛰어갔다. 소년과 대장도 발목이 빠지는 눈 위를 걸어 노루가 쓰러진 곳으로 다가갔다. 목에 총알을 관통 당한 노루는 그때까지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목과 입에서 흘러내리는 검붉은 선혈이 하얀 눈 위에 울긋불긋한 탱화 같은 기묘한 붉은 채색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노루 앞에 선 흑인병사가 허리에서 날카로운 대금을 빼어들더니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노루의 목 깊숙이 칼끝을 쑤셔 박았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낮은 신음으로 잦아들고 찔린 목에서 붉은 피가 뭉클뭉클 흘러내렸다. 그 신음소리는 점점 더 느리게 오르내리는 가슴 속 깊은 숨결을 타고 슬프고 외롭고 적막하게 울렸다.

흑인병사가 허리벨트에 차고 있던 양철 수통을 끌러 목에서 흘러내리는 핏물을 받았다. 흘러내리는 피의 양이 점차 줄어들고 마지막 기력을 쏟아내는 노루의 사지가 가늘게 떨리다가 서서히 멈추었다. 노루가 반쯤 눈을 뜨고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꿈을 꾸고 있는 듯 맑고 여렸다. 그 눈에 눈물이 어려 있었다.

소년은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사지를 떨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노루를 차마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다. 갑자기 소년의 눈에도 눈물이 어렸다. 감긴 눈시울을 뚫고 눈물이 삐져나왔다. 소년은 자기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면서 또다시 바지에다 오줌을 찔끔대고 말았다.

잠시 후 소년이 눈을 떴을 때, 흑인병사는 양철 수통에 받은 노루피를 마시고 있었다. 울퉁불퉁 정맥이 불거진 흑인병사의 목에서 꿀떡꿀떡 소리가 들렸다. 흑인병사가 수통에서 입을 떼고 소년을 돌아보았다. 입술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시뻘건 피가 묻은 이빨이 하얀 눈빛에 반사되어 차가운 금속 빛으로 번쩍거렸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와들와들 떨었다.

흑인병사가 눈을 번뜩이며 붉은 잇몸을 드러내고 만족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은 금속 빛 하얀 이빨에 붉은 핏자국이 얼룩져 마치 생고기를 뜯어먹으며 으르렁거리는 야수의 주둥이처럼 잔인하게 보였다.

순간 소년은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며 다시금 바지에다 오줌을 찔끔대고 말았다. 대장은 그런 흑인병사를 어쩌면 분노 같기도 하고, 어쩌면 슬픔 같기도 한 일그러진 표정으로 매섭게 쏘아보고 있었다.

탕, 그때 또 한방의 총성이 능선을 울렸다. 총소리가 울려 퍼진 후 잠시 동안의 정적이 산을 휘감는 순간 능선 남쪽에서 비명 같은 절박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 사람이야! 사람이 맞았다.

순간 대장이 갑자기 무언가를 감지한 듯 급하게 지게를 벗어 던지며 소리가 난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소년도 엉겁결에 대장을 뒤따라 뛰었다.

― 헤이?

흑인병사가 등 뒤에서 불렀지만, 대장은 물론이고 소년도 돌아보지 않았다. 눈 속에 파묻히는 발에서 고무신이 벗겨졌다. 소년은 고무신을 손에 들고 대장을 뒤쫓았다.

대장은 마치 한 마리 토끼처럼 빠르게 숲을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소년은 대장을 따라잡기 위해 돌과 가시도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헐떡이며 뛰었다. 그러나 대장은 이내 숲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대장이 사라진 숲을 헤치며 계속 나아갔다. 멀지 않는 숲 속에서 빙 둘러선 동네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막 도착한 대장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비명처럼 울부짖는 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아부지이……!

절박하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소년의 귀에 천둥처럼 울렸다. 소년도 도착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사람들 사이를 뚫고 고개를 내밀었다.

대장은 꿇어앉은 자세로 그의 아버지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울부짖고 있었다. 대장의 볼을 타고 홍수 같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황갈색의 승복 비슷한 한복을 입은 대장 아버지의 가슴이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소년도 대장을 따라 다시 눈물이 흘렀다. 가슴이 쿵쿵 소리를 내며 심하게 고동쳤다. 소년은 오른 손바닥을 왼쪽 가슴에 대고 숨을 한 번 길게 몰아쉬고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눈꽃을 피운 나뭇가지 사이로 얄밉도록 하얀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시린 겨울 하늘에 둥둥 떠가고 있었다.
 

*

평소 마을에서 가끔 마주치는 대장 아버지는 항상 승복처럼 보이는 회색이나 황갈색 한복을 입고 있었다. 대장 아버지는 평소 마을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항상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표정이었지만, 소년과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자상하게 대했다.

대장 아버지는 소년의 마을에 살았지만 그 마을 토박이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은 대장 아버지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런 대장 아버지를 마을 사람들은 어려워하면서도 공손하게 대했다.

그것은 평소 대장 아버지에게서 풍기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기품 때문이기도 했다. 소년은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그런 대장 아버지의 모습과 기품에서 어떤 경외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노루사냥이 있었던 그날 아침, 대장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처럼 품삯을 받고 노루몰이꾼으로 산에 올라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대장 아버지가 총에 맞은 것일까? 소년은 나름대로 짐작해 보았다.

소년이 가끔 새벽에 일어났을 때, 대장 아버지가 혼자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곤 했다. 어떤 때는 어린 대장과 함께 산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대장 말로는 아버지와 함께 새벽 산에 올라 수행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대장이 말하는 그 수행이 무엇인지 소년은 알 수 없었다.

아마 그날도, 미군지프가 도착하기도 전 이른 새벽에 수행을 위해 대장 아버지는 혼자 산에 올랐을 것이었다. 산속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대장 아버지를 미군병사들이 노루로 착각하고 총을 쏘고 말았던 모양이었다.

그때 대장 아버지가 입고 있던 황갈색 한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날 밤, 고열에 들떠 앓고 있는 소년의 이마에 물수건을 갈아주는 어머니의 혼잣말로 알 수 있었다.

― 아이고, 우째 해필이면 노리맨쿠로(노루처럼) 그런 누린(누런) 옷을 입고 있었담. 그런 옷을 입고 노리가 다니는 길목에 있응께 영락없이 노리로 보였겠제.

노루사냥이 있었던 그날 저녁, 어둠이 밀려들자 마을 앞 뒤 산은 온통 노루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어미를, 새끼를, 아내를, 어쩌면 지아비를 잃었을지도 모를 애달픈 울음소리는 다음날 새벽 여명이 밝아올 때까지도 계속되었다. 그 소리는 창자를 끊어낼 듯이 길고 깊고 어두웠다.

우우~우! 우우~우!

애끊는 울음소리가 고열에 들떠 누워있는 소년의 귓가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온몸을 짓누르는 압통에 의식조차 희미해진 소년의 뇌리에 총에 맞아 허공으로 치솟던 노루의 모습이 환영처럼 보였다. 이빨에 시뻘건 노루피를 묻힌 흑인병사의 흉측한 얼굴이 절 문턱에 세워진 사천왕의 모습처럼 귀기鬼氣를 품고 나타나기도 했다.

그때마다 가위에 눌려 깨어났다가 다시 눈을 감는 순간 가슴을 피로 물들인 아버지의 얼굴을 부여안고 울부짖던 대장의 모습이 나타나 소년을 더욱 괴롭혔다. 대장이라는 별명처럼, 마을에서 함께 자라는 동안에 한 번도 눈물을 보인 적이 없는 대장이었다. 그런 대장의 볼에 흐르는 홍수 같은 눈물에 소년도 함께 휩쓸려갔다. 그때마다 소년은 어둡고 깊은 소용돌이 강물 속으로 빨려 들어가 허우적거렸다.

그날 이후, 평소 잔병치레를 자주 하던 소년은 더욱 심하게 아팠다. 줄곧 악몽과 고열에 시달리며 한 달여 동안을 지독하게 앓았다. 소년이 그나마 기운을 차려 해쓱하게 야윈 얼굴로 마을 동구 밖으로 나갔을 때, 어느 듯 따스한 봄기운이 양지 바른 마을 돌담 아래까지 다가와 있었다.

소년이 동구 밖 공터마당에서 전쟁놀이를 하고 있던 아이들에게 대장의 소식을 물었을 때, 아이들이 뒷산 고갯마루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얼마 후, 대장은 머리에 보퉁이 하나만을 달랑 인 어머니와 함께 찬바람이 몰아치는 마을 북쪽 뒷산 고갯마루를 넘어간 이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년이 어지러운 머리를 들어 대장이 넘어 갔다는 고갯마루를 올려다보았을 때, 완연한 봄이 되기엔 아직도 이른 잔설이 남아있는 고갯마루에는 황량한 바람만이 우두커니 앉아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 연재 제19회 <첫사랑 1>은 2019. 2. 25.(월) 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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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이 단락에서의 노루사냥은 작가가 유년시절 직접 겪은 경험이 바탕이 되었다. 유년시절 시골고향에서 노루사냥꾼의 총에 목을 관통당해 죽은 노루를 동네 형이 지게에 지고 마을로 내려왔었다. 그 노루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다. 그 노루는 반쯤 눈을 뜨고 있었다. 그 눈은 맑고 여렸다. 그때까지 노루의 눈에는 눈물이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