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 연재 제6회 <음모의 표적>
Symphony in C minor ‘Fate’

음모의 표적

아무래도 그 해골 새끼가 정량보다 더 많은 필로폰을 주입했을 것이다. 여자가 테이블 위에서 옷을 벗을 때까지는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가위로 시간의 이음줄을 싹둑 잘라버린 것처럼 필름이 완전히 끊겨버리고 말았다. 평소 주량에 비추어 정량 필로폰을 주입했다면 이렇게 송두리째 기억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최경호는 어떻게 집에 왔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눈을 뜨니 이번 선거를 치르면서 새로 사귄 여자의 집이었다. 정해현 의원의 열혈지지자라고 했다.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기도 전에 미리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여자였다. 요가학원을 한다고 했다. 30대 중반 나이에 성적으로 무르익을 대로 익은 원숙한 여자였다. 요가로 단련된 빼어난 몸매에다 미모도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다.

이혼녀였지만, 딸린 자식은 없었다. 학원 수입이 괜찮은지 제 명의의 아파트도 한 채 갖고 있었다. 학원수강생 여섯 명을 데리고 와 함께 자원봉사자로 등록했다. 지나가는 개라도 붙들고 싶은 판에 그야말로 덩굴째 굴러온 복덩이였다. 이런 여자들일수록 감투에 약한 법, 선거운동본부 여성홍보실장으로 임명했다.

정해현이 예비후보로 등록한 날, 선거사무실에서 여성자원봉사자들에 대한 사전선거교육이 있었다. 말이 교육이지 은밀한 불법선거운동 방법을 전수하는 것이었다. 교육을 마치고 인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뒤풀이로 노래방에 갔다. 함께 간 스무 명이 넘는 자원봉사자 중에서 유독 이 여자가 찰싹 들러붙어 갖은 교태와 아양을 떨었다. 뒤풀이가 끝나고 둘은 모텔로 갔다. 그런데 이제까지 숱한 여자와 섹스를 해왔지만, 이 여자는 특별했다. 여자의 섹스테크닉은 상상을 초월했다.

요가로 단련된 유연한 팔다리와 허리는 마치 한 마리 뱀 같았다. 그 뱀이 몸을 친친 감았다가 풀었다가 당겼다가 조였다가를 반복할 때마다 최경호는 아득한 천 길 낭떠러지 환락 속으로 빠져들었다. 무성한 숲에서 솟아나는 여자의 샘은 깊고 깊은 열락의 늪이었다. 그날 밤, 최경호는 여섯 번이나 사정하며 새벽녘까지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여자의 늪에 빠져 있었다.

선거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여자는 마치 섹스머신 같았다. 한낮 대중왕래가 빈번한 교차로에서 율동을 하며 선거캠페인을 벌이다가 혼자 몰래 모텔에 들어 사무실에 있는 최경호를 불러냈다. 낮에 벼락섹스를 하고 밤에 다시 여자의 아파트에서 환락섹스를 반복했다. 이제 이 여자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여자와 하는 섹스 없는 세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여자만 곁에 둘 수 있다면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정해현의 낙선으로 여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정해현이 당선되었다면 관내에 난립한 별 실속 없는 유관단체장 같은 감투하나 주선해주고 섹스파트너로 붙들어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낙선으로 인해 그것은 장담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돈으로라도 계속 붙들어두어야 했다. 송철준에게 여자 명의의 계좌번호를 준 이유였다. 박영애, 그녀의 이름이었다. 

*

오후 늦게 선거사무실에 출근했지만 최경호는 여전히 머릿속이 빙빙 돌며 어지러웠다. 어제 저녁 서울 중앙당사로 간 정해현은 아직 아무 연락도 없었다. 패배한 사무실에는 여직원 한 사람과 남자 비서관 하나만 나와 있었다. 다른 일은 없었다. 어디 근처 사우나에라도 가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최경호는 사무실을 나와 사우나로 걸어가면서 피식 웃었다. 기자회견을 하는 정해현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유리컵을 던지면서 죽여 버리라고 악다구니를 퍼붓던 정해현이 기자회견에서 마치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근엄하고 비통에 잠긴 목소리로 ‘깊은 애도’ 운운하는 모양이라니.

그러나 최경호는 정해현의 표리부동한 이중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정치가는 원래 그래야 했다. 본색을 숨기고 항상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애국자인 것처럼, 도덕으로 무장된 정신지도자인 것처럼, 불우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자선사업가인 것처럼 치장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정해현도 탁월한 연기자였다. 정해현의 그런 연기는 배워둘만 했다. 그 또한 언젠가는 정해현의 그늘에서 벗어나 국회의원을 꿈꾸고 있지 않은가.

사무실 인근 사우나에 들어선 최경호는 가볍게 샤워를 한 후 수면실에 들어가 누워 눈을 감았다. 선거 날 저녁 개표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보낸 시간이 꿈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문득 개표가 한창일 때 청와대를 사칭하는 전화를 받은 일이 생각났다. 그 전화는 단순한 장난전화였을까? 어제 오후에 받은 마린시티호텔 직원이라는 자의 전화도 생각났다. 그 전화도 장난전화였을까? 그런데 곰곰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 사고를 낸 장소가 마린시티호텔이라니?

청와대 사칭전화를 받고 호텔에 갔을 때 차 사고를 낸 기억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호텔 직원은 그의 차번호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사고를 내고 변상하겠다며 명함까지 주었다고 하지 않은가. 명함까지 받았다는 그 말이 지어낸 말 같지는 않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꼭 무언가에 홀린 것 같았다.

최경호는 바로 사우나를 나와 사무실로 돌아와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호텔 직원의 전화처럼 정말 사고가 났다면 차에 어떤 사고흔적이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그젯밤 호텔에 다녀와서 주차해 둔 장소에 그대로 있었다.

차체를 자세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야? 최경호는 움찔 놀랐다. 뒷범퍼 오른쪽이 부서져 금이 가 있었다. 부서진 부분이 그리 크지 않아 유심히 살펴보지 않으면 쉽게 식별하지 못할 정도였으나 분명 뒷범퍼는 외부 충격에 의해 부서진 것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최경호는 갑자기 머릿속이 빙그르르 돌며 심한 혼란에 빠졌다. 호텔 지하주차장에 차를 잠시 주차해 두었을 때, 누군가가 차를 들이받고 가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호텔 직원이 알고 있는 차번호와 사고 후 그가 직접 명함까지 주었다는 것은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최경호는 다시 한 번 지난 일을 곰곰 되새겨 보았다. 호텔에서 돌아와 개표방송을 보고 있는 동안에 사무실 직원 누구에게도 차키를 맡긴 적도 없었다. 당시에는 개표 상황이 접전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선거종사자 누구도 자리를 비울 상황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 동안에 외부의 다른 누군가가 그의 차를 훔쳐 타고 호텔에 가서 사고를 냈다는 것이다. 그 자가 사고를 수습하기 위하여 그의 명함을 주었을 것이다. 명함은 그의 차 조수석 사물함에 항상 비치되어 있다. 결국 그의 차를 몰래 가져가 사고를 낸 자가 그를 가장한 것이다. 그자는 누구인가?

순간 최경호는 머리끝이 쭈뼛했다. 김인환이 살해된 장소는 마린시티호텔 804호이다. 그리고 살해된 시간은 누군가가 그의 차로 호텔에서 사고를 낸 시점과 근접한 시점이다. 만약 그의 차로 사고를 낸 자가 김인환을 살해한 자라면?

사고차량이 그의 차이기 때문에 당연히 수사손길은 그에게로 향할 것이다. 더구나 그는 김인환과 정치적 대립 관계에 있는 정해현의 보좌관이 아닌가. 이미 언론은 김인환의 피살을 그와 정적 관계에 있는 자의 소행일수도 있다는 추측성 기사를 여러 갈래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김인환이 살해된 시점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차가 그 현장에 있었던 셈이었다.

피살자의 정적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수사망이 뻗칠 만도 한데, 그 정적의 보좌관이 바로 그 피살 현장에 있었다면? 그것도 피살 시점과 아주 근접한 시점이라면? 제일 먼저 그가 수사선상에 오를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이것은 그 사실의 실제여부를 떠나 외부에 알려져서 전혀 이로울 것이 없다. 이것은 곧 있을 재선거에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이다.

최경호는 호텔에서 걸려온 전화를 단순한 장난전화쯤으로 치부해 버린 것을 후회했다. 갑자기 조바심이 나며 입술이 타기 시작했다. 우선 전화를 한 호텔 직원에게 호텔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었다. 부서진 범퍼를 교체하는 일이었다. 사무실 근처에서 교체한다면 누군가가 그를 알아볼 수도 있었다. 사무실에서 먼 외곽지 차량정비센터로 차를 몰아가는 최경호의 머릿속으로 불길한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뭔가 이상하고 불안했다. 김인환을 살해한 자는 누구일까? 재선거에서 정해현이 당선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렇다면 살인자는 정해현을 도우려고 한 것일까? 그러나 그 반대일 가능성이 훨씬 더 크다. 사고를 낸 자가 김인환을 살해한 범인이고, 그 범인이 의도적으로 그를 가장했다면?

이 모든 일은 그를 살인 사건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치밀한 함정이다. 갑자기 등허리에서 찬 기운이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분명 알 수 없는 곳에서 어떤 불길한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그 음모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그리고 그 표적은?

*

살인 사건으로 호텔이 발칵 뒤집혀있는 와중에서도 신경민은 냉정했다. 최경호 보좌관에게 전화를 하고, 경찰에 제보까지 했으니까, 이제 기다리면 반응이 올 것이다. 야간 교대근무 시간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남아있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호텔 숙소에 가서 잠시나마 눈을 붙여야 할 것 같았다. 호텔 프런트에서 막 자리를 뜨려 할 때 전화벨이 울렸다.

― 감사합니다. 마린시티호텔입니다.
― 혹시 호텔 직원 중에 그저께 최경호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 사람이 누군지 알아봐 줄 수 있겠나?
최경호였다. 제 소개도 없이 대뜸 반말 투로 질문부터 했다.
― 최 보좌관님이세요? 제가 전화를 했습니다. 저는 호텔 영업부에 근무하는 신경민이라고 합니다.
― 그래? 그 차사고 말인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만나서 얘기 좀 할 수 있겠나?

후후, 드디어 미끼를 물었군. 이제 슬슬 낚싯줄을 당겨볼까. 신경민은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 아니, 정말 기억나지 않으세요? 사고를 냈을 때 많이 취하신 것 같지도 않았는데.
― 그러게 말이야. 그냥 가물가물해.
― 하 참, 제게 명함까지 주셨잖아요?
― 그래서 내가 좀 만나고 싶다고 하지 않나?
― 그럼 호텔로 오세요.
― 그러지 말고, 호텔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나지.

*

최경호는 평소 운전할 때 착용하는 검은 안경을 꼈다. 안경을 쓴 채로 언젠가 단 한 번 와 본 적이 있는 카페 출입문을 들어섰다. 안에는 중년여자 손님 둘 외에 아무도 없었다. 남의 이목을 피할 수 있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신경민을 기다렸다.

*

최경호가 정한 장소는 호텔에서 이십분 정도 걸리는 ‘까뮈’라는 카페였다. 카페로 들어선 신경민은 붉은색 조명이 드리워진 어두침침한 실내를 둘러보았다. 구석진 자리에 검은 안경을 낀 한 남자가 보였다.
― 최 보좌관님, 또 뵙게 되네요.
신경민이 다가가 공손하게 제 명함을 내밀면서 말했다.

*

또 뵙게 되다니? 생판 처음 보는 자식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최경호는 보좌관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워 두 중년여자를 힐긋 바라보았다. 카페 여종업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두 사람 모두 커피를 시켰다.
― 내가 사고를 냈다고 했는데, 그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 아니, 정말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으세요?
― 그때가 선거 날 몇 시쯤이었나?
― 아마, 새벽 한시쯤 되었을걸요.

새벽 한시쯤이라면? 그때 그는 분명 포장마차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이 자식의 태도로 봐 사고가 난 것은 분명하고, 또 그가 사고를 낸 사람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 그때 내 차는 어디 부서지지 않았어?
― 보좌관님 차도 뒷범퍼 오른쪽이 부서졌잖아요. 주차장에서 제가 그곳이 부서졌다고 하자 괜찮다고 해놓으시고는……. 확인해보시지 않았어요?

뒷범퍼 오른쪽이라니! 이런 환장할 노릇이 있나. 사고가 난 것은 정말이다.
― 사고를 내고 내가 어떻게 하던가?
― 참 내, 아무리 술을 드셨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 전혀 기억을 못하세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혹시 알코올성 치매 아니세요. 사고 후 제가 경찰을 부르려고 하자, 제게 명함을 주며 사무실로 연락하면 변상하겠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하면서요. 경비원 박 씨에게 발설하지 말라고 돈까지 주셨잖아요.

알코올성 치매? 이 자식이 정말! 속에서 허파가 확 뒤집혔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
― 그랬어? 그 명함 지금 가지고 있어?
― 아까 통화할 때 보좌관님께서 오리발을 내밀어 홧김에 확 찢어 버렸습니다.
― 그렇다면 내가 사고를 냈다는 증거도 없군. 안 그래?

*

이것 봐라. 증거도 없다고? 제법 세게 나오시는데. 그렇다고 내가 호락호락 넘어갈 것 같으면 큰 오산이지. 여기에서 밀리면 안 되지. 신경민은 일부러 얼굴을 붉히고 큰소리로 되받아쳤다.

― 뭐라고요? 그렇다면 할 수 없습니다. 보좌관님께서 사고를 낸 것은 경비실 박 씨도 분명히 목격한 사실입니다. 내 참! 기껏 생각해서 경찰이 조사할 때 일부러 숨기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오신다면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요. 아니, 곧바로 방송국에 알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음주운전도 각오하셔야 할걸요. 안녕히 계십시오.

신경민은 더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최경호의 얼굴에 당황한 빛이 스치며 단박에 수그러들었다. 최경호가 검은 안경을 벗으면서 말했다.
― 잠깐 좀 앉아 봐. 사고를 낸 사람이 정말 내가 맞아? 사람을 잘못 본 게 아냐? 똑똑히 다시 봐.
― 정말 끝까지 이러실 거예요? 지금 손에 들고 있는 그 안경, 사고 때 끼고 있던 그 안경이잖아요. 그리고 보좌관님의 장발머리, 볼에 난 큰 점, 그리 흔한 줄 아세요.

신경민은 자리에서 일어선 채로 신경질적으로 쏘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이내 나갈 듯이 등을 돌렸다.
― 그러지 말고 좀 앉아봐. 그래 차 수리비가 얼마나 나왔어?
신경민은 못 이기는 척 다시 자리에 앉았다.
― 앞범퍼가 부서지고, 보닛이 찌그러졌으니까. 꽤 나올 것 같던데요. 그리고 참 …….
신경민은 일부러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목소리를 낮추며 은근하게 말했다.

― 보좌관님도 그때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난 것은 아시죠? 그때 저는 제일 먼저 보좌관님을 떠올렸습니다. 뭐, 보좌관님께서 설마 살인이야 했겠습니까. 그러나 보좌관님 같은 자리에 계신 분이 살인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얼마나 난처하겠습니까? 그래서 경찰이 조사할 때, 저는 말씀하신대로 일체 발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보좌관님께서는…….

*

이 자식 봐라. 갈수록 태산이네. 도대체 이 자식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이 자식은 호텔 살인 사건을 빌미로 처음부터 돈을 뜯어내려고 작정하고 나왔어. 차 수리비와 푼돈 얼마를 주어 입을 막아버리려고 했는데, 이 자식은 마치 내가 살인에 연루된 것처럼 단정하고 있다. 이런 영악한 새끼가 있나! 말하는 투로 보아 아직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 그러니까, 입을 다물어주는 대가로 돈을 달라 그 얘긴가? 너, 지금 누굴 협박하는 거야?
그러나 신경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능글스러운 미소까지 띠며 노골적으로 액수까지 제시했다.
― 협박을 하다니요. 그저 서로 좋은 것이 좋다는 말이지요. 박 씨의 입도 막아야 하니까, 최소한 큰 것 한 장은 주셔야지요.

*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새끼가 사람을 갖고 놀아! 사무실로 돌아온 최경호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그 자식의 말처럼 그런 사고 사실이 경찰과 언론에 알려진다면? 나중에야 그와 무관하다고 밝혀지더라도 우선 당장 눈앞에 닥친 재선거가 문제였다. 후보자의 보좌관이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받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악재가 될 것이다. 상대후보는 이를 빌미로 어떠한 흑색선전이라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 자식은 또 그렇다 치더라도, 만약 차 사고를 내고 그 자식에게 명함을 준 자가 진짜 살인자라면? 선거사무실과 마린시티호텔까지는 빠르게 가면 차로 삼십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호텔에서 돌아와 개표방송을 보고 있을 때, 범인이 그의 차를 몰래 갖고 가서 살인을 한 후 다시 주차장에 갖다놓을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또한 범인은 그처럼 장발에다 볼에 큰 점이 나 있었다고 한다. 범인이 그의 모습으로 변장을 하고 그의 행세를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청와대 사칭전화도 애초부터 그를 끌어내기 위해 계획된 것이다. 호텔 주차장 사고와 사고 후 그 자식에게 명함을 준 것도 혐의를 그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계산된 행동이다. 이것은 함정이다. 살인자는 그를 가장했고,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함정을 판 것이다. 범인은 경찰수사망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뻗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단은 이 함정에서 벗어나고 볼 일이다.  

어쩔 수 없다. 범인의 의도를 빗겨가기 위해서는 그 자식의 요구를 일단은 들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새끼를 마냥 그대로 둘 수야 없지. 이런 젖비린내 나는 애새끼에게 공갈을 당해 돈을 뺏긴다는 것이 말이나 되냐고. 최경호는 휴대전화를 꺼내어 번호를 눌렀다.

― 송 회장님, 최 보좌관입니다.
― 돈은 보내놨어. 박영애라고 그랬지?
― 예, 고맙습니다. 그보다 애들 둘만 좀 차출해 주십시오.
― 왜? 무슨 일이 있어?
― 좀 담가줘야 할 놈이 생겼습니다.
― 그래? 요즘은 옛날 같지 않아. 조심해야 돼.
― 예, 피라미새끼입니다. 완전히 담그지는 않고 밑간만 살짝 치면 됩니다. 염려 마십시오.

― 2018. 11. 26.(월) 연재 제7회 <미행>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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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이 둥치길이 열리기까지 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요.
바람소리, 새소리, 풀꽃 향기도 이 길로 드나들었겠지요.
어쩜 달팽이, 다람쥐도 이 길로 지나갔을 겁니다.
우리 가슴에도 이런 길 하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