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연재 제10회 <전격 소환>
Symphony in C minor ‘Fate’ 

전격 소환

김인환의 변호업무와 관련한 조사에서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미로 속에 갇혀버린 수사의 단서는 오직 최경호만이 남아 있었다. 신경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은 이후, 최경호의 동태를 관찰했으나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다. 특히 피살자의 목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는 기자회견이 있은 이후부터는 철저하게 밀착 감시했으나 최경호의 일상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그러나 최경호가 어떤 방식으로든 범인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라는 심증은 여전히 남아 있었고, 그것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단서였다. 수사는 답보된 상태였다. 언론은 연일 수사기관의 무능력을 질타하고 있었다. 이때 최수환이 최경호를 감시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부딪혀 보자고 강하게 주장했다.

김용훈 검사의 지시를 받은 박경일은 곧바로 국회의원 정해현 사무실로 전화를 걸어 최경호를 찾았다.
― 해운대경찰서 강력계 박경일 경윕니다. 오늘 오후 두시에 사무실로 찾아가겠습니다.

*

해운대경찰서는 김인환 피살 사건의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된 곳이다. 선거를 치르면서 몇 건의 사소한 선거법 위반 사례가 있었지만, 그것은 특별수사본부의 업무와는 무관한 것이다. 결국 올 것이 왔구나. 분명 김인환 피살 사건 때문일 것이다.

오후 두시에 형사가 직접 사무실로 찾아오겠다고 했을 때, 최경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경찰서에서 풀려나온 피라미새끼에게서 확인을 했던 일이지만, 다시 한 번 단단히 다짐을 받아 둘 필요가 있었다. 최경호는 신경민에게 전화를 했다.

― 너 정말 불지 않은 거지?
― 그럼요. 제가 그랬다면 어떻게 그날 바로 풀려날 수 있었겠어요? 돈의 출처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 안했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 정말? 믿어도 되지?
― 그럼요. 최 보좌관님과 저는 아무 관계도 없다니까요. 제가 왜 제 무덤을 파겠어요. 제가 어디 바본 줄 아세요.
― 만약에 거짓말이면 넌 뼈도 못 추리게 될 거야. 반드시 명심해.

*

박경일은 국회의원 정해현 선거사무실로 들어섰다. 재선거가 임박해서인지 사무실은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사무실 전화기가 연속 성화를 부리고 있는 가운데 최경호도 사무실 오른쪽 한 책상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박경일은 출입구 앞 안내여직원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여직원이 최경호에게 걸어가 박경일이 서있는 출입구로 손짓을 하며 알렸다. 그러나 최경호는 잠시 고개를 돌리는 시늉을 하였을 뿐 여전히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

저 짭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최경호는 이미 통화가 끝난 전화를 계속 받는 척하며 옆 눈으로 출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날 은행에서 돈을 찾을 때, 은행 소파에 앉자 벌거벗은 여성잡지 화보를 보며 씩 웃던 그 자식이야. 그 자식이 짭새였다니? 그럼, 저 자식이 내가 돈을 찾고 있던 것도 모두 봤다는 얘기 아냐? 하, 참! 이럴 수가!

*

박경일은 입구 쪽 응접소파에 앉아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최경호는 일부러 통화를 길게 하고 있는 것처럼 한참 동안이나 전화기에 매달려 있었다.
― 최경호 보좌관입니다. 이곳은 번잡하니 안으로 들어가시죠.
드디어 전화를 끝낸 최경호가 다가와 임시칸막이로 막아 만든 작은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원형탁자 하나와 의자 네 개가 놓여 있고, 탁자 위에 전화기 한 대가 놓여 있을 뿐이었다. 선거운동을 위해 임시로 마련한 방인 것 같았다. 그런 작은 방이 무려 여덟 개나 나란히 있어 사무실의 한 면은 마치 공중전화 부스를 진열해 놓은 것 같았다.

― 해운대경찰서 강력계 박경일 경윕니다.
― 예, 무슨 일인데요?
― 혹시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최경호의 눈썹이 꿈틀했다. 일순 당황한 기색이 스쳐갔지만, 이내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평정을 되찾았다.

― 신경민? 글쎄요. 처음 듣는 이름인데요.
― 예. 그 사람은 사기죄로 고소당한 사람인데, 얼마 전 불심검문한 차 안에서 돈 천만 원과 최 보좌관님의 명함이 나왔습니다.
― 그래서요? 그 사람이 그 돈을 내가 주었다고 하던가요?
최경호가 도둑놈 제 발 저린 듯 오히려 반문하고 나왔다.

― 아닙니다. 차안에서 수상한 뭉칫돈과 함께 최 보좌관님의 명함이 나왔기에 최근에 그를 만났거나 피해를 당한 일은 없는지 해서요.
박경일은 미리 생각하고 있던 말을 둘러대며 최경호의 태도를 살폈다.
― (내 명함이 나왔다고? 그 피라미새끼는 분명 명함을 찢어버렸다고 했는데, 그 자식이 날 속였나?)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내가 왜 모르는 사람에게 피해를 당하겠습니까?

―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가 최 보좌관님의 명함을 가지고 있었다면 보좌관님도 그를 알고 있을 것 아닙니까?
― 내가 명함을 준 사람을 일일이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특히 이번 선거기간 동안 내가 명함을 준 사람은 하루에도 수십 명이 넘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일일이 어떻게 다 기억합니까.

― 정말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모르십니까?
― 그렇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외에 다른 용건이 없다면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보시다시피 여간 바쁘지가 않습니다.
― 한 가지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혹시 지난 번 선거날 밤 마린시티호텔에 다녀오신 적은 없나요? 김인환 당선자가 피살된 곳입니다.
― 마린시티호텔? 김인환 당선자가 피살된 곳이라고? 아니, 지금 나를 의심하고 있는 거요?

최경호가 얼굴을 붉히며 대들 듯이 따지고 나왔다. 역시 뭔가 구리는 데가 있어. 태도가 다분히 과장되고 허세가 깃들어 있었다. 이런 태도는 십중팔구 피의자가 자신의 범행이 노출되기 직전 취하는 방어본능이다. 수사를 하면서 피의자들의 이런 태도는 익히 보아왔다. 박경일은 최경호를 달래며 말했다.

― 아닙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 신경민이라는 사람은 마린시티호텔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명함을 준 장소가 혹시 마린시티호텔이 아닌지 해서요.
― 그 신 누구라는 사람이 어떻게 내 명함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 선거 날 그 호텔에 간 적도 없고요.
― 잘 알겠습니다. 이거 참 난감하네. 돈을 받은 사람은 있는데 주었다는 사람이 없으니.

박경일이 혼자 소리처럼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최경호가 일부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최경호의 눈썹이 다시 한 번 꿈틀거리며 눈에서 불똥이 튀어나올 듯 박경일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박경일은 그 눈길을 못 본 척 무시하고 출입구로 나가며 다시 말했다.

― 마린시티호텔에 간 적이 없다고 하니까, 그날 밤 호텔 주차장에서 발생한 차 사고에 대해서도 모르겠군요?
박경일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곧바로 사무실을 나왔다. 뒤통수를 노려보고 있을 최경호의 시선이 따갑게 느껴졌다.

최경호가 범인이거나 적어도 김인환 피살 사건과 관계가 있다는 것은 이제 단순한 심증을 떠나 확신으로 굳어져 갔다. 그렇지 않다면 최경호가 처음부터 범인의 태도와 유사한 방어본능을 내보이며 부인할 이유가 없다. 최경호가 범인이라면?

그만의 단독범행은 아닐 것이다. 김인환의 피살로 인한 이익의 최대수혜자는 국회의원 정해현이다. 최경호의 범행은 정해현과 따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정해현이 지시하고 최경호가 실행한 경우로 본다면, 그 동기는 단순히 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김인환과 정해현 사이에 외형적으로 드러난 정치적 대립관계 이면에 감추어진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해현과 김인환 사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관계가 있는지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 박경일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생각했다.

*

형사가 돌아간 후 최경호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형사가 불쑥 던지듯 하는 말마다 모두 가시가 숨어 있었다. 경찰에서는 마린시티호텔에서 그의 차가 사고를 냈다는 것, 그가 신경민을 만났다는 것, 더 나아가 신경민에게 돈을 주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수사본부에서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그 피라미새끼가 거짓말을 했구나. 그 자식이 날 갖고 놀았어. 최경호는 곧바로 신경민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부터 내질렀다.
― 너, 경찰에 모두 불었지? 그러고도 네가 무사할 줄 알아?
―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 자식아. 네가 불지 않았다면, 경찰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너 그러고도 무사할 줄 알았어.

― 제가 뭘요? 보좌관님께서 뭘 오해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저는 정말 모르는 일이예요.
― 그럼 네가 찢어버렸다고 한 명함을 경찰이 어떻게 갖고 있어? 너 이제까지 날 갖고 놀았어. 이 새끼, 당장 애들을 풀어 네 뼈를 발라주겠어. 넌 이제 죽은 줄 알아.

― 아, 참, 보좌관님, 정말 치매아니세요? 돈을 주던 날, 급히 연락할 일이 있으면 바로 전화하라고 명함을 다시 한 장 주셨잖아요? 그 명함 지갑에 갖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될 때 함께 압수당한 것이라고요. 그러나 걱정 마세요. 그 돈 최 보좌관님의 돈이라고 절대 발설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불면 제가 먼저 죽게 되는데, 제가 바보예요. 그런 걸 불게.

― 내가 명함을 다시 주었다고? 이 자식,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 아, 정말, 치매 맞네요. 사고 낸 것도 기억 못하고, 돈 줄때 명함 준 것도 기억 못하고, 빨리 정신병원에나 가보세요.
― 뭐? 정신병원? 이 새끼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그럼 누구야? 너 말고 아는 사람이 없잖아.
― 저는 정말 모르는 일예요. 혹시 박 씨 아저씨가 했다면 몰라도.
― 그 박 씨 입도 네가 막겠다고 했잖아?

― 그래요. 박 씨 아저씨가 그랬을 리도 없어요. 그것은 제가 보장해요.
― 좋아, 두고 보겠어. 만일 거짓말이면 절대로 가만 두지 않겠어. 너희 둘 다 뼈를 발라 줄 거야.
― 몇 번이나 말해야 되겠어요. 전 아니에요. 제가 돈을 받았다고 하면 저는 당장 공갈범으로 쇠고랑을 차게 되는데, 제가 왜 스스로 무덤을 파겠어요?

이 자식의 말이 틀리지는 않는다. 이 자식이나 박 씨라는 경비원이 제보를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주면서 명함을 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선거기간 동안의 피로누적에다 술과 필로폰, 그리고 거의 매일 계속되는 섹스머신 여자와의 과도한 섹스로 머리가 어떻게 돼버린 것인가? 갑자기 현기증이 난다.

이 자식도, 박 씨도 아니면, 그럼 누굴까? 경찰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혹시 범인이 제보를 한 것은 아닐까? 범인의 의도를 비켜나기 위하여 이 자식에게 돈까지 주었는데 상황은 더 꼬여만 가고 있다. 오히려 점점 더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있다. 최경호는 조바심으로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러나 최경호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목에서 발견되었다고 한 검사의 기자회견을 떠올리고는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범인의 의도는 다른 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범인은 자신의 머리카락이 범행 현장에서 발견될 줄은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가 용의자로 조사를 받더라도 그 머리카락이 범인의 것으로 밝혀지면 혐의는 저절로 벗겨질 것이다. 그의 머리카락이 피살자의 몸에서 나올 수는 절대로 없었다.

*

사무실로 돌아온 박경일의 책상에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보낸 감정결과 회보서가 놓여 있었다. 부검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피살자 본인의 것은 아닐 것이라는 박경일의 예상은 적중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범인의 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최경호이다. 이제까지 드러난 최경호의 행동과 선거사무실에서 본 태도에 비추어 이미 정황증거는 충분하다. 이제 부검에서 발견된 머리카락이 최경호의 머리카락과 동일하다는 객관적 사실만 판명되면 그가 범인이라는 물증은 확보된다. 최경호의 머리카락을 입수하여 그 동일성에 대한 감정만 의뢰하면 밝혀질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우회할 필요가 없다. 최경호를 직접 소환해야 한다. 김용훈 검사에게 전화보고를 마친 박경일은 곧바로 최경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 조금 전에 찾아갔던 박경일 경윕니다. 수사과로 좀 나와 주십시오.
― 아까 모두 말하지 않았는가요? 또 무슨 일로 그럽니까?
― 간단하게 몇 가지만 확인해 주시면 됩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절차상의 문제일 뿐입니다.

 *

경찰은 사건을 종결하기 위한 절차상의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아닌 것 같다. 경찰이 무슨 단서를 확보한 것일까? 경찰이 알아낸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두려울 것이 없었다. 부검에서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고 했다. 그 머리카락이 최경호 자신의 것일 수가 없었다. 다만 그가 경찰에 소환된다는 사실이 재선거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 우려되었다.

그렇다면 재선거가 시작되기 전에 하루 빨리 그 혐의를 벗어버려야 한다. 그것도 언론에서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최경호는 곧바로 소환에 응하겠다고 했다.
― 그렇게 하지요. 언제 갈까요?
― 내일 오전 열시로 시간을 잡겠습니다.
― 좋습니다. 내일 열시에 나가겠습니다.

*

박경일은 최경호와 조사실에서 마주 앉았다. 박경일이 묻고 최경호가 대답했다.

문 : 진술인은 2000. 4. ××. 오전 0시에서 2시경 사이에 부산 해운대 소재 마린시티호텔에 간 적이 있지요?
답 : 없습니다.
문 : 그렇다면 위 호텔 주차장에서 서울00나0000호 차량과 접촉사고를 낸 일도 없습니까?
답 : 호텔에 간 적이 없으니, 사고를 낸 일도 없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문 : 진술인은 위 호텔에 근무하는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지요?
답 : (그 피라미새끼는 불지 않았다고 했다. 일단 그 자식 말을 믿고 그냥 밀어붙이자. 무조건 부인해야 한다.) 모릅니다.
문 : 진술인은 <까뮈>라는 카페에서 위 신경민을 만난 사실이 있지요?
답 : 신경민이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없습니다.

문 : 진술인은 박영애란 사람을 알고 있지요?
답 : (박영애? 이런 환장할 일이 있나. 이 여자는 피라미새끼도 모르는데……, 이 점에서 피라미새끼가 경찰에 불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그런데 경찰이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모릅니다.

문 : 진술인은 2000. 4. ××. 10:45경 부산은행 00지점에 개설된 박영애 명의의 통장에서 돈 천만 원을 인출한 사실이 있지요?
답 : (이 짭새가 은행에 왔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구나. 그런데 어떻게 알고 왔던 것일까? 경찰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그러나 무조건 부인해야 한다.) 박영애를 모른다고 하지 않습니까.

문 : (은행까지 직접 미행한 사실을 밝히고 바로 추궁할까? 아니다. 오늘은 그냥 태도만 떠보자. 정식 피의자신문에서 신경민과 대질시키고 부인하지 못할 증거로 자백을 받아내야 한다. 미리 언질을 주어 대비할 여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진술인은 위 돈 천만 원을 같은 날 11:20경 <까뮈>라는 카페에서 신경민에게 주었지요?
답 : 그런 사람은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없습니다.

(이때 카페 <까뮈> 앞에 주차된 진술인 최경호의 차 사진을 제시하면서)
문 : 이 사진 속의 차는 진술인의 차가 맞나요?
답 : (짭새가 나타나 사진을 찍고 있더라는 주걱턱의 말이 사실이구나. 차까지 부인할 수야 없지.) 예, 맞습니다.

문 : 이 사진 속의 차를 보면 뒷범퍼가 새것으로 교체되어 있는데, 범퍼를 교체한 이유는 마린시티호텔에서 진술인이 차 사고를 내고 새것으로 교체하였기 때문이 아닌가요?
답 : 그곳에 간 적도 없고, 사고를 내지도 않았다고 하는데, 왜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합니까.
문 : 진술인의 차는 2000. 4. ××. 11:20경 카페 <까뮈> 앞에 주차되어 있었습니다. 위 같은 시간에 진술인은 <까뮈>에서 신경민을 만난 사실이 정말 없습니까?
답 :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문 : 그러면 왜 이곳에 진술인의 차가 주차되어 있습니까?
답 : 그곳에 내 차가 있는 것이 이 사람을 만났다는 증거가 되나요? 나는 다른 일로 그 근처에 갔을 뿐입니다.
문 : 그 다른 일이 어떤 일이었나요?
답 : 이 사건과 관계없는 일입니다.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문 : 당시 진술인은 신경민에게 돈 천만 원을 준 사실이 정말 없습니까?
답 : 몇 번 말해야 합니까? 없습니다.
문 : 정말 없습니까? 신경민과 대질을 하면 금방 밝혀질 사실입니다.
답 : (그 피라미새끼를 입도 벙긋 못하게 다시 한 번 족쳐놔야 하겠군.)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질을 시키든 박치기를 시키든 맘대로 하십시오. 아니, 내가 왜 이런 얼토당토 않는 조사를 받아야합니까?

문 : 정말 없습니까?
답 : 내 대답은 한 가지 뿐입니다. 없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그때 그 호텔에 간 적도 없습니다. 경찰은 그 호텔에서 일어난 김인환 씨 살인 사건에 내가 연루된 것으로 의심하는 것 같은데, 잘못 짚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아닙니다. 범인이 누군지는 현장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주인을 찾아보면 금방 나타날 것 아닙니까? 더 이상 허튼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겠습니다.

문 : 현장에서 머리카락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압니까?
답 : 신문과 방송에 온통 도배되지 않았습니까?
문 : 그러면 진술인은 유전자감식을 위한 모발채취에 동의하겠습니까? 진술인의 말대로 머리카락의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답 : 예, 물론입니다.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최경호는 완강했다. 제 차 사진 등 직접 수집한 증거를 들이대어도 무조건 부인했다. 요지부동이었다. 그런 점이 더욱더 최경호가 범인일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했다.

*

최경호와 실랑이를 마친 박경일이 막 퇴근 준비를 하고 있는데, 최수환이 돌아왔다. 최수환은 박경일이 조사를 하고 있는 동안에 선거사무실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만나 사건 당일 최경호의 행적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 아무래도 최경호가 수상해. 최경호는 사건 당일 밤 아홉시쯤 누군가의 전화를 받고 나가 약 한 시간 정도 있다가 사무실로 돌아왔어. 그런데 보좌관이라는 자가 한창 개표가 진행 중인 중요한 시간에 선거사무실을 비웠다는 게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리고 최경호는 자정 무렵에 다시 사무실을 나가 약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돌아왔어. 최경호는 김인환이 피살된 시점에 사무실에 없었던 것이 분명해. 바로 최경호를 족치는 것이 어때?

최수환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 야, 국회의원 보좌관을 확실한 증거도 없이 닦달 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그 문제는 내일 보고부터 하고 의논하자.

박경일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밤 아홉시가 넘어 있었다. TV에서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정시영의 모습이 화면에 나타났다.
― 김인환 씨 피살 사건 관련 특보입니다. 특별수사본부는 김인환 씨 피살 사건과 관련하여, 오늘 정해현 의원의 보좌관 최경호 씨를 소환하여 조사했습니다.

박경일은 깜짝 놀랐다. 최경호의 소환은 재선거를 앞 둔 민감한 시점에서 비밀리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언론에 노출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정시영이 소환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경찰 내부에 정시영의 끄나풀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설마? 경찰 쪽보다는 최수환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정해현의 선거사무실에서 흘러나왔을 것이다.

박경일은 이런 사실이 언론에 노출됨으로서 수사에 대한 정치권의 외압이 시작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쉽게 잠들 수 없었다.

― 2018. 12. 24.(월) 연재 제11회 <긴급체포>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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