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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4회 <용의자>
김영미안  |  anteaj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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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11.05  06:2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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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교향곡, 연재 제4회 <용의자>
Symphony in C minor ‘Fate’


용의자

피살자가 국회의원 당선자라는 여론에 민감한 사안에 맞추어 곧바로 특별수사본부가 구성되었다. 이 수사는 일반사건과는 달리 부산지방검찰청 특수부 김용훈 부장검사가 전담지휘하기로 하였다. 김용훈 검사가 주재한 수사회의에서 사건은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되었다.

먼저 피살 현장이 호텔 8층으로 출입문을 통하지 않고는 침입이 용이하지 않았다. 또한 피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직접 사인은 목의 자상과 후두부 함몰로 추정할 수 있었고, 이 상흔을 제외한 다른 신체 부위는 비교적 깨끗했다.

이것은 곧 피살자가 범인의 공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후두부를 공격당해 곧바로 제압당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범인은 피살자로부터 허락을 받아 범행 장소에 들어간 사람이거나 평소 피살자와 서로 교제가 있었던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와 관련한 당선자의 주변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최수환이 전담하기로 하였다.

다음으로 피살자의 직업이 검사 출신 변호사라는 점에 비추어, 직업상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원한이나 앙심을 품은 자의 소행일 가능성이 검토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특히 피살자가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안에 수임한 형사 사건 중 결과가 좋지 못했던 사건당사자에 대하여 수사력을 모으기로 하였다. 이에 대한 수사는 박경일이 맡기로 하였다.

마지막으로 피살자의 우측 귀 아래 부분에서 좌측 쇄골 부위까지 기도를 비스듬하게 절단하면서 나 있는 상처는 일견하여 칼에 의해 생성된 자상이 분명했다. 이외에 피살 현장에는 샴페인병 조각이 산재해 있는 것 외에 다른 범행 도구는 발견되지 않았다. 단번에 기도를 완전히 절단해버린 자상으로 미루어 이 살인은 누군가의 청부에 의한 전문가의 살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게 했다.

특히 이 부분과 관련하여 피살자가 국회의원 당선자라는 신분에 비추어 피살자와 정치적 대립관계에 있는 정적의 소행일수도 있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이 부분에 대한 수사도 박경일이 맡기로 하였다.

이외에도 단순절도범 등의 우발적인 범행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피살 현장의 위와 같은 정황에 비추어 이 점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하여는 따로 전담반을 배치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수사팀은 이 모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에 임할 것을 지시받았다.

*

수사본부 회의를 마치고 나온 박경일은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1차 예비감식에 나타난 현장상태로 미루어 2차 정밀감식을 통하여 피살 현장에서 살인자의 것으로 볼만한 지문이나 다른 단서가 발견된다는 것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지난밤부터 지금까지 잠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겨를도 없이 뛰어다니느라 몸은 파김치가 된 것 같았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도 너무 긴장한 탓인지 식욕조차 나지 않았다. 피곤에 지쳐 사무실에 돌아와 자리에 앉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전화벨이 울렸다.
― 뭐 새롭게 밝혀진 건 없어?

정시영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사건을 취재하면서 다른 방송사나 언론사를 배제하고 단독으로 피살 현장에서 생방송까지 한 정시영이 기자라는 직업세계에서 특종 중의 특종을 잡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사전보고도 않고 현장에 임했던 경위에 대해 서면보고서를 작성해야 할 박경일에게는 그의 목소리가 달갑지만은 않았다.
― 없어! 참, 그런데 넌 어떻게 알고 내게 전화를 했던 거야?

*

호텔 프런트에 있던 신경민은 서둘러 후문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신경민은 어젯밤 사고를 목격한 주차장경비원 박 씨에게 무슨 은밀한 지령이라도 전달하는 것처럼 단단히 다짐을 주고 있었다.

― 아저씨, 약속 잊지 마세요. 제 말대로만 하면 아저씨도 한 몫 잡게 해드릴지도 몰라요.
― 글씨 마, 알았다카이, 내가 마 입이 그렇게 헤푼 사람이 아인기라. 니 지금 그 말이나 잊어뿌지 말그라.
― 아저씨가 함부로 발설하면 저나 아저씨나 모두 몸이 성치 못하게 되요. 정말 명심하세요.

신경민은 마치 자신의 배후에 국회의원이 있는 것처럼 박 씨에게 은근히 겁까지 주고는 호텔 프런트로 돌아왔다. 이제 그가 할 일은 명함 속의 그 보좌관에게 전화를 하는 일이었다.
 

   
 

*

피살자가 발견된 시간이 새벽 두시 경이었고, 그때까지도 피살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완전히 응고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피살자가 살해된 시간은 대략 자정 무렵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박경일은 사건을 인지한 직후 곧바로 호텔 투숙객을 통제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어쩌면 범인은 그때까지도 호텔 어딘가에 머무르며 밤바다의 야경을 즐기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살해 현장 외부에서 어떤 단서라도 포착할 수 있지 않을까? 마린시티호텔은 시내를 벗어난 비교적 한적한 해변에 있어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왕래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범인은 틀림없이 차를 이용하여 호텔을 오갔을 것이고, 범인은 주차장이나 다른 외부에서 어떤 흔적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호텔 주차장과 그 주변을 놓치지 않고 탐문해 보아야 할 것 같았다. 가능하면 현장이 변경되기 전에 빨리 가볼 필요가 있었다.

박경일은 사무실에서 냉수 한 컵만을 마시고 다시 호텔로 갔다. 피살자가 살해된 실내 현장은 아직도 감식반에서 정밀조사를 하고 있었다. 주차장은 호텔 건물 지하주차장과 호텔 후문 앞 지상주차장 두 곳에 있었다.

박경일은 먼저 호텔 후문 앞 주차장으로 가서 주차된 차량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주차장 한 곳에 앞범퍼가 부서져 있는 승용차 한 대가 눈에 띄었다. 그는 주차장 입구 관리실 경비원을 불렀다. 경비원은 60대쯤 나이에 적당하게 살이 오른 온화한 인상이었다. 어리숙하게 보이는 얼굴 표정이 순하고 착해 보였다.

― 이 차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어요?
― 글쎄요. 나는 오늘 열시에 교대하였기 때문에 잘 모르겠는데요.
박경일이 신분증을 내보이자 경비원이 지레 겁먹은 얼굴로 말했다.
― 그럼 어젯밤에는 누가 경비를 섰어요?
― 경비는 박 씨와 내가 주야 교대를 하니까, 박 씨가 주차장에 있었겠지요.
― 그 박 씨란 사람, 지금 연락이 되나요? 지금 바로 이리로 나와 달라고 하세요.

박경일은 범퍼가 부서진 차량의 차적 조회를 하여 소유자가 누구인지, 또 그가 아직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객실로 찾아가니 그는 마침 일어나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울에 주소를 둔 40대 회사원이었다. 부산에 출장을 왔고, 3일 동안 마린시티호텔에 숙박할 예정이라고 했다. 어젯밤 10시경 호텔에 체크인하여 호텔 주차장에 차를 두고 해운대 시내로 나가 밤늦도록 거래처 손님과 술을 마셔 늦게 일어났다고 했다. 술에 골아 떨어져 잠들었던 관계로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난 것도 모르고 있었다.

박경일은 투숙객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와 차 범퍼가 원래 부서져 있었는지 물었다. 어젯밤 호텔에 주차할 때까지도 정상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범퍼는 호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킨 밤 10시 이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부서진 셈이었다.

박경일이 투숙객을 만나고 있는 사이에 경비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박 씨라는 경비원이 나타났다. 50대 중반쯤 나이에 땅딸막하고 가는 실눈에 눈빛이 영악하게 보였다. 야간근무를 한 뒤 쉬고 있는 사람을 왜 불러내느냐고 씩씩대고 있었다.

― 무신 일로 자는 사람을 불러내고 그라는 기요?
― 몇 가지 좀 물어보겠습니다. 어젯밤, 아저씨가 근무할 때 무슨 일이 없었던가요?
― 무신 일이라니? 뭔 도둑이라도 든 일이 있느냐 그런 말인교?
―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어젯밤 주차장에서 접촉사고 같은 것이 없었던가요?

박경일은 박 씨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했다. 박 씨의 표정에 잠시나마 주저하는 빛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내 표정을 감추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능청스럽게 말했다.

― 아니. 무신 차사고 같은 것이 있었냐는 그런 말인기요? 그란데 와 그런 것을 내 한테 물어보능교?
― 저 차를 보세요. 앞범퍼가 부서져 있지요. 어젯밤 이곳에서 누군가가 저 차를 들이받았던 것이 분명해요. 어젯밤에는 아저씨가 경비를 서고 있었으니까, 사고를 낸 사람을 보았을 것이 아녜요?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거예요?
―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짬에 사고가 났는지는 몰라도 내사 마 참말로 모르는 일이라!
박 씨는 의외로 과장된 어투와 몸짓을 섞어 부인했다.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했다. 박경일이 놓치지 않고 큰소리로 윽박질렀다.

― 이것 보세요, 아저씨. 어젯밤 이 호텔에서 살인 사건이 난 걸 아시죠? 지금 저 차를 박고 도망간 사람이 살인을 했을 수도 있어요. 아저씨가 그걸 감춘다면 아저씨는 살인범을 은닉하는 거예요. 범인은닉죄가 얼마나 큰 죈지 알아요?
― 내사 마 참말로 모르는 일이라. 무신 일이 있었다면 내가 말을 하지, 뭐 할라고 숨기겠노?

박경일이 엄포를 놓았으나 박 씨도 완강했다. 박경일은 박 씨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잇속에 밝은 영악한 두 눈이 조롱하듯 깜빡거리고 있었다. 박 씨가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냥 윽박질러 될 일이 아니었다.

박경일은 투숙객의 차량과 부서진 범퍼를 촬영한 후 그 투숙객과 함께 가까운 자동차정비센터로 가서 범퍼를 교체하고 떼어낸 범퍼는 따로 보관조치를 했다. 수사 진행여하에 따라서는 향후 부서진 범퍼가 유력한 증거가 될 수도 있었다.

*

신경민은 어젯밤 사내로부터 받은 명함에 새겨진 전화번호를 눌렀다. 명함에는 ‘보좌관 최경호’라는 이름 아래 국회의원 정해현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잠시 기다리라고 하더니 최경호에게 전화를 돌리는 모양이었다. 전화기 속에서 회선이 바뀌는 신호음이 들리는 동안 신경민은 가벼운 긴장과 흥분을 느꼈다.

― 예, 최경호 보좌관입니다.
― 여기는 마린시티호텔인데요. 어젯밤, 차사고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차사고? 무슨 사고 말이요?
― 아니, 왜 이러십니까? 어젯밤, 저희 호텔에 오셨다가 가는 길에 주차장에서 사고를 내셨잖습니까?
―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요? 어젯밤 거기 간 적은 있지만, 무슨 사고를 내었다는 거요? 혹시 뭘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니요?
― 아니, 사고를 내고 전화하면 변상하겠다고 명함까지 주셨잖습니까? 보좌관님 차번호가 4897 아닙니까? 제가 명함 뒤에 차번호까지 적어 놨는데 이제 와서 모른다고 하시는 거예요?
― 4897? 그래, 내 차번호가 맞아. 그런데 내가 무슨 사고를 냈다는 거야?
― 정말 왜 이러시는 거예요? 모른다고 잡아뗄 일이 따로 있지.
― 뭘 잡아뗀다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 정말 이러실 거예요?
― 당신 누구야? 어떤 양아치 새끼가 장난을 치는 거야?
― 뭐라고요? 양아치 새끼! 씨팔, 국회의원 보좌관이면 무조건 오리발 내밀면 다 되는 줄 아나보지.

신경민이 팽개치듯 송수화기를 꽝 내려놓았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최경호가 사고를 낸 것을 경찰에 제보하는 일이었다.

*

― 그러니까, 이 명함이라는 말이지?
― 예, 4897, 이것이 차번호고요. 그 사람으로부터 받은 명함에 차번호를 확인하고 제가 적어둔 것입니다.
― 그 차 차종과 색깔은?
― 그랜저였어요. 검정색이었고요.
― 이 명함에 적인 최경호라는 사람을 보면 알 수 있겠어? 그 사람의 인상착의라던가 특징 같은 것 말이야.
― 그럼요. 장발에다 왼쪽 볼에 큰 점 하나가 있었어요. 경비실의 박 씨 아저씨도 보았으니까, 보면 금방 알 수 있을 거예요.
― 박 씨는 못 봤다고 하던데?
― 아저씨가 겁을 먹고 말하지 않았을 거예요.
― 왜, 겁먹을 이유가 어디 있어?
― 그 사람이 국회의원 보좌관임을 내세워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을 했으니까요. 아저씨 입을 막으려고 돈까지 주었는걸요.
― 그래? 그 사람이 사고를 낸 시간이 정확하게 언제였어?
―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아마 열두시가 조금 넘었을 거예요.
― 사고를 냈다면, 사고차량도 부서졌을 것 같은데, 그 사람 차는 괜찮았어?
― 그 차도 뒷범퍼가 부서져 있었어요. 제가 그걸 보고 말하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경찰을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 그래? 수고했어. 다음에 또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내게 전화해.
 

   
 

국회의원 정해현은 피살자와 가장 직접적인 정적관계에 있다. 그런데 정해현의 보좌관이 피살 시점으로 추정되는 시간에 그 살인 현장에 있었다. 특히 이날 자정 무렵까지 막바지 개표가 진행 중에 있었고, 정해현과 피살자는 이때까지도 누구의 당선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이런 접전 상황에서 보좌관이라는 사람이 한가롭게 선거사무실에서 멀리 떨어진 호텔에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보좌관에게는 개표 상황보다도 더 중요한 다른 일이 호텔에 있었고, 그는 이 일 때문에 호텔에 왔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현장을 빠져나가다가 접촉사고를 냈다. 더구나 그는 이런 사실을 은폐하고자 목격자를 협박하고 돈까지 주어 입을 막으려고 했다. 이것은 예사롭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박경일은 신경민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메모지에 적어주고 마린시티호텔 커피숍을 나왔다. 그때까지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던 중에 얻은 예측하지 못한 큰 수확이었다.

*

이날 밤, 최경호는 남포동 소재 M룸살롱 VVIP실에서 이 업소 사장 송철준과 단둘이 마주앉아 있었다. VVIP실은 일반손님에게는 제공되지 않는 은밀한 최고급 룸이었다. 이태리제 대리석 원목 테이블에 천연가죽 소파, 휘황찬란한 수제 샹들리에, 20명이 한꺼번에 앉아도 내부공간은 넉넉했다. 테이블에는 술과 안주접시가 차려져 있었다.

정해현의 실질적 후원회장이기도 한 송철준은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왼쪽 뺨에 기다란 자상 흉터가 있었다. 얼핏 보아도 폭력배 인상이 풍겼다. 운동으로 단련된 깡마른 체격에다 툭 튀어나온 광대뼈 때문에 눈이 움푹 꺼져 보여 마치 해골을 연상시켰다.

― 정 의원과 함께 올 줄 알았는데. 할 수 없지. 자, 먼저 한 잔 들어.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지. 그 인간이 그렇게 뒈질 줄이야. 덕분에 정 의원이 기사회생했어.
송철준이 맥주잔에 양주를 반 넘게 따르고 그 위에 맥주를 섞어 최경호에게 건네며 말했다.
― 그렇습니다. 그 인간을 죽인 놈이 누군지는 몰라도 옆에 있다면 정말 뽀뽀라도 해주고 싶습니다.
최경호가 웃으면서 말하고는 잔을 받아 단숨에 비웠다.

― 의원님께서 내일 당장 현금으로 세탁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최경호가 양복안주머니에서 하얀 편지봉투 하나를 꺼내어 송철준에게 건네며 말했다.
― 내일 당장?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모양이군.
― 그 일 때문에 오늘 급히 서울 중앙당사에 간 것 같습니다.
송철준이 봉투 안에 든 물건을 꺼냈다. 약속어음 용지였다.
― 50억, 6개월짜리군. 물론 재선거를 위한 비자금이겠지?
― ……….
― 6개월짜리면 10프로 선이자 공제, 정 의원도 알고 있겠지?
― 그럼요. 대신 제 몫은 좀 챙겨주셔야 합니다.
― 하하, 박봉에 시달리는 최 보좌관님, 10프로의 10프로, 오천?
― 고맙습니다. 이 계좌로 좀 넣어 주십시오. 요즘 저도 매우 궁합니다.
최경호가 메모 쪽지 하나를 건네며 말했다.

― 엉! 박영애? 새로 생긴 애인인가? 알았어. 그동안 선거운동 하느라 고생했는데, 오늘 여기 온 김에 몸 좀 풀고 가라고. 며칠 전 선금 이천 주고 비싸게 데려온 애가 있는데, 최 보좌관 입맛에 딱 맞을 거야?
― 물론 회장님께서 먼저 간을 보셨겠지요?
최경호가 비굴하게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 뭐라고? 내 아무리 계집장사를 하지만 상납음식에 먼저 숟가락 얹지는 않아. 오늘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고 몸도 풀고 가라고. 아, 그냥 맨 정신에 제대로 되겠나. 내 봉침 한 대 놔주지.

최경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송철준이 일어나 룸 오른쪽 구석으로 걸어가 호주머니에서 리모컨을 꺼내어 버턴을 눌렀다. 모퉁이 아래 벽이 천천히 왼쪽으로 움직이더니 허리를 굽혀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하나가 열렸다. 닫혀있는 상태에서는 자세히 보아도 벽과 문을 구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송철준이 허리를 굽히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문이 안에서 다시 열리고 송철준이 오른손에 주사기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것을 본 최경호가 미리 왼팔 와이셔츠 단추를 풀고 팔뚝을 걷었다. 송철준이 왼손에 든 탈지면 거즈를 최경호의 팔뚝에 문지른 후 주사바늘을 찔렀다. 투명한 액체가 최경호의 팔뚝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 자, 한 잔 들고 있어. 내 나가서 애를 들여보내 주겠어. 몸 사리지 않고 잘 노는 애니까 마음껏 즐기라고. 20층에 전망 좋은 방도 하나 잡아 놓겠어.

송철준이 일어나 방을 나갔다. 최경호는 제 스스로 맥주잔에 다시 양주를 가득 따라 마셨다. 술과 마약기운이 전신에 퍼지면서 먼저 눈동자가 풀어지고 전신이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는 것 같았다. 천장의 샹들리에가 풍력발전 프로펠러처럼 빙빙 돌았다. 노크도 없이 출입문이 열리고 여자가 들어왔다.

동그란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하얀 티셔츠 위로 팽팽하게 솟은 유방, 빨간 미니스커트 아래 드러난 미끈한 각선미, 전체적으로 크지도 작지도 않는 볼륨 있는 몸매사이즈가 최경호가 좋아하는 타입이었다. 특히 어깨를 지나 등허리까지 닿는 잘 손질된 길고 부드러운 머릿결이 인상적이었다.

― 안녕하세요. 애리입니다.
살짝 드러나는 덧니 하나와 목소리도 예뻤다.
― 자, 이리와 너도 한 잔 마셔.
최경호가 풀린 눈으로 여자를 바라보며 맥주잔에 양주를 가득 따랐다. 여자가 주저 없이 최경호 옆에 앉아 잔을 받아 마셨다. 여자가 최경호에게 같은 술을 따랐다. 최경호가 또 마셨다.

여자의 허벅지를 더듬고 있던 최경호의 손이 팬티 속으로 들어갔다. 여자의 은밀한 그곳, 풍성하게 자란 음모가 융단처럼 손바닥에 느껴졌다. 최경호가 테이블 위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여자에게 말했다.
― 야, 여기 위로 올라가.
― 예?
― 테이블 위로 올라가란 말이야.
여자가 허리를 숙여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었다. 최경호가 다시 말했다.
― 아니, 구두를 신은 채로 올라가.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채로 테이블 위 넓은 빈 공간에 올라섰다. 최경호가 명령했다.
― 껍질 벗어.
― 아잉, 오빠는……! 공짜로?
여자가 테이블 위에 선 채로 엉덩이와 허리를 비틀며 손바닥을 펴고 내밀었다. 최경호가 지갑을 꺼내 손에 잡히는 대로 만 원 짜리 지폐를 넓은 탁자 위에 흩뿌렸다.
― 우리 오빠 정말 멋쟁이!
여자가 콧소리를 섞어 말하고는 팔을 X자로 겹쳐 티셔츠 아랫단을 잡고 뒤집어 올리며 상의를 벗었다.

현란한 샹들리에 조명아래 붉은 브래지어에 감싸인 유방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여자가 허리지퍼를 내리고 스커트를 내렸다. 탄력 있는 엉덩이가 붉은색 팬티라인을 팽팽하게 긴장시키고 있었다. 여자가 브래지어의 어깨끈을 내리고 방긋 웃으며 벗은 브래지어를 최경호를 향해 던졌다.

여자가 허리를 숙여 팬티를 벗어 다시 최경호를 향해 던졌다. 최경호가 팬티를 받아 코끝에 대고 강아지처럼 킁킁 실룩거렸다. 팽팽하게 솟아오른 유방과 갈색 유두, 허벅지 사이 풍성한 음모를 보자 최경호의 호흡이 가빠졌다.
― 나 어때요?
여자가 무대 위 모델처럼 각진 걸음으로 테이블 위에서 한 바퀴 빙 돌고 손바닥 윙크를 날리며 말했다.

여자가 팔을 위로 뻗어 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자르르 늘어뜨리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휘날렸다. 아! 저 긴 머리카락! 그사이 완전히 마약에 의식을 지배당한 최경호의 잠재된 기억 숲을 헤치고 불현듯 한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그때 그 여자! 지금 이 장소!
바로 여기다. 바로 이 방이었다. 

 

   
 

송곳 같이 날카로운 기억의 편린 하나가 뇌의 가장 깊은 중심자리 뇌간을 강하게 찌르며 파고들었다. 척추를 타고 강한 전류가 흐르며 직관적 불안감이 엄습했다. 아니야, 고개를 흔들었다. 하필, 이런 때에 왜 그 계집 모습이……? 갑자기 주체 못할 분노가 치솟으며 페니스가 불끈 치솟아 올랐다.
― 이리 와.
최경호가 벌떡 일어나 여자의 발목을 잡고 끌었다.

여자가 엉덩방아를 찧듯이 테이블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두 발목을 잡아끌자 여자는 테이블 위에 세로로 반듯하게 누운 자세가 되었다. 최경호가 여자의 두 다리를 치켜 올리고 벌려 여자의 음부에 얼굴을 묻었다. 여자의 깊은 샘에서 여왕벌의 페로몬 향기가 퍼졌다. 최경호의 귀에 윙윙 벌떼소리가 들렸다.

최경호는 벌떡 일어나 서둘러 옷을 벗기 시작했다. 넥타이를 풀고 거칠게 와이셔츠를 벗어 제키고는 바지벨트를 풀고 팬티까지 벗어 완전 나신이 되었다.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선 자세로 다시 여자의 다리를 들어 올려 벌려 단단하게 팽창된 페니스를 여자의 질 속으로 거칠게 삽입했다.
― 아! 아파요.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순간 최경호의 잠재의식에 또다시 날카로운 송곳날 하나가 파고들었다. 그 송곳날이 심장을 관통하여 잠들어 있는 영혼의 심연에 격렬한 파문을 일으켰다.

김인환의 피살! 그 영감과 관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영감! 바로 이 장소, 바로 이 테이블 위에서였다.

환각 속에서도 본능적 두려움이 척추를 타고 내렸다. 최경호는 그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허리를 앞뒤로 빠르고 격렬하게 움직여 페니스로 여자의 질 속을 헤집었다. 여자의 무릎관절이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최경호의 어깨 위로 들려진 여자의 두발에서 하이힐이 벗겨져 뒤로 날아가 떨어졌다. 엉덩이가 앞뒤로 강하게 흔들리자 유방도 물결처럼 요동치며 출렁거렸다.

갑자기 최경호의 눈앞에 유령처럼 한복 앞섶을 풀어헤친 은발노인이 나타났다.
― 나가, 썩 꺼져버려! 죽은 당신이 여기에 왜 나타났어.
최경호는 여자의 골반 허벅지를 세워 양팔로 바짝 당겨 안고 질 속에 삽입된 페니스를 거칠게 앞으로 내지르며 외쳤다.
― 아아! 왜 그래요? 누가 있다고 그래요?
여자가 다시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그러나 최경호의 귀에 여자의 외침은 들리지 않았다. 오직 빠르고 거칠게 왕복운동으로 내달으며 은발노인을 향해 외쳤다.
― 가라잖아! 야! 이 썩은 영감탱이! 썩 없어져. 내 말 안 들려?
최경호가 오른손을 뻗어 테이블 위 맥주병 하나를 집어 들고 은발노인을 향해 던졌다. 날아가 벽에 부딪친 맥주병이 와장창 깨어져 떨어졌다.

― 왜 그래요? 아아, 하지 마. 아파. 무서워!
여자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여자가 빠져나오려고 팔을 휘둘렀다.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유리잔이 여자의 팔에 부딪쳐 굴러 바닥에 떨어져 깨어졌다. 빈 맥주병 하나도 떨어져 깨어졌다.

그러나 최경호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지 않았다. 바짝 밀착시킨 여자의 질 속을 휘젓듯 페니스를 거칠게 왕복운동으로 내달리며 다시 외쳤다.
― 야! 영감탱이, 내 말 안 들려. 가라잖아. 썩 꺼지란 말이야.
― 아아, 아파, 그만 해. 그만하라잖아. 누가 있다 그래?
여자가 고통을 못 이겨 테이블 바닥을 두드리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여자가 빠져나오려고 상체를 일으켰다. 최경호가 오른손을 뻗어 여자의 오른쪽 유방을 꽉 거머쥐고 가슴팍을 거칠게 짓눌렀다.

― 아아, 아파! 아프단 말이야. 이 개새끼가 진짜 미쳤구나. 야, 이 미친 새끼야. 누가 있다 그래! 그래, 어디 해볼 테면 한번 해 봐!
여자가 눈에 불을 켜고 두 팔을 등 뒤 바닥 지렛대로 삼아 오히려 엉덩이를 앞으로 바짝 밀착시키며 악에 받친 욕설을 내뱉었다.

최경호도 멈추지 않았다. 치켜 올린 여자의 허벅지를 으스러지게 껴안고 오직 빠르고, 거칠고, 또 격렬하게, 왕복운동으로 내달았다.
― 아아아!
― 아아아!
최경호와 여자의 비명이 한데 어우러져 방안을 메아리처럼 울렸다. 최경호는 억제하고 또 억제하고 있던 분노의 댐을 일시에 폭발시키며 폭포처럼 사정했다.

순간 최경호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별이 하얗게 쏟아졌다. 한순간 뇌가 하얀 별빛호수에 풍덩 빠진 것 같았다. 그 무수한 별들 하나하나가 모두 비수가 되어 뇌세포를 후벼 파기 시작했다. 아아! 최경호는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았다. 최경호는 아득한 어둠 속 낭떠러지로 끝없이 추락했다.

바늘 끝 같이 아주 작은 미세한 빛 한 점도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어둠, 아득히 먼 어둠 속 심연에서 푸른빛 한 점이 나타나 점점 크게 다가왔다. 푸른빛 후광 중심에 은발노인이 하얀 빛으로 서 있었다. 그 빛에 눈이 부셨다. 황홀했다. 그 빛이 점점 다가와 최경호의 머릿속을 환하게 비추고 점점 위로 솟아올라 작아지며 멀어져갔다. 후광도 점점 소멸해갔다.

다시 완전한 어둠, 최경호는 심장에 총알을 관통당한 것처럼 허리를 꺾고 털썩 여자의 배 위에 엎어졌다. 두 개의 산봉우리 같은 여자의 유방 사이 계곡에 철썩 얼굴을 묻었다. 최경호는 끝없는 블랙홀 속으로 깊이깊이 빠져 들어갔다.
 

   
 

잠시 후, 여자가 최경호의 상체를 밀어내며 허리를 일으켰다. 여자가 최경호의 어깨를 힘겹게 들어 올려 밀었다. 뒤로 밀린 최경호가 털썩 소파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주저앉았다. 가슴과 아랫배가 들숨날숨에 오르락내리락 거리지 않는다면 숨이 끊어진 줄로 착각할 만치 전혀 의식이 없었다.

여자가 최경호가 앉아있는 소파와 테이블 사이 공간에 내려섰다. 여자가 테이블 위 사각휴지통에서 휴지를 북북 뽑았다. 테이블 위 양주병을 기울여 화장지를 술에 흠뻑 적시더니 알코올 솜으로 상처를 소독하는 것처럼 음부를 조심스럽게 닦았다. 적셔진 휴지를 테이블 위에 던지고 다시 휴지를 여러 장 뽑아 같은 동작을 되풀이 했다. 여자는 같은 동작을 세 번이나 되풀이 했다.

여자가 소파에 떨어져 있는 브래지어와 팬티를 주워 입고 티셔츠와 스커트도 껴입었다. 테이블 위에 흩뿌려진 지폐도 하나하나 집어 들었다. 여자가 몸을 돌려 나가려다말고 다시 양주병을 들어 남은 양주를 테이블 위에 수북하게 쌓인 휴지에 쏟았다.

여자가 오른손바닥 가득 젖은 휴지를 집어 들었다. 손가락 사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최경호의 페니스는 그새 축 늘어져 있었다. 여자가 젖은 휴지뭉치를 최경호의 사타구니 사이에 철썩 집어던지며 쏘듯이 말했다.
― 변태 새끼! 어디 귀신에 씌었나 봐!
여자가 소파와 테이블 사이를 걸어 나와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2018. 11. 12.(월) 연재 제5회 <진실의 파수꾼>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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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인간의 내면에는 고유한 신성神性이 존재한다. 이 신성은 통상적인 경우에는 이성, 특히 욕망이나 이기심이라는 두꺼운 껍질에 갇혀 발현되지 않는다. 이 신성은 뇌과학적 관점에서 대뇌 신피질의 작용에 의한 고착화된 이성의 벽을 뚫고 순수한 잠재의식에 이를 때 발현될 수 있다.
 

   
 

작중인물 최경호의 M룸살롱에서의 행위는 비록 악인일지라도 그 내면에 신성이 존재함을 나타낸다. 과거 자신이 행한 범죄행위에 대하여 술과 마약에 의하여 자신도 모르게 잠재의식에 이르고, 이것이 신성의 작용에 의한 죄의식을 일깨워 환각을 불러일으킨다.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신성의 탐구, 이것은 이 소설 전편을 일관하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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