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교향곡 / 연재 제3회 <특종>
Symphony in C minor ‘Fate’

특종

연산로터리 소재 해성빌딩 5층에 있는 《21세기 정치문화연구소》는 무소속 김인환 선거사무실이다. 창밖으로 로터리를 가로질러 맞은편 거성빌딩 7층에 있는 정해현 선거사무실이 빤히 보였다.

개표소에서 개표상황을 취재하고 있던 KNB방송 정시영 기자는 방금 이곳에 도착하여 선거사무장에게 당선자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러나 정작 당선자인 김인환은 아직 사무실에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인환은 투표가 마감된 저녁 여섯시 경에 잠깐 사무실에 들러 최종 투표상황을 살펴보고는 다시 사무실을 나간 이후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승리로 인한 왁자지껄한 축제분위기 속에서 선거사무장이 전화기를 붙들고 고함치듯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 아니, 전화를 받지 않는다고? 그럼 언제 나갔는지도 모르고?
― …….
― 뭐라고? 체크아웃한 사람은 없었다고?
― …….
―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야?
그때 정시영의 휴대전화에 음성메시지가 왔음을 알리는 알람표시가 들어왔다.

― 첫 번째 정보, 마린시티호텔 804호.

음울하게 울리는 탁한 남자음성이었다.
마린시티호텔? 체크아웃?
정시영은 선거사무장의 ‘체크아웃’이라는 말에 문득 이상한 예감이 들어 다가가 물었다.
― 혹시 당선자가 계신 곳이 마린시티호텔 아닙니까?
― 아니, 정 기자님이 그걸 어떻게……?

순간 정시영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섬광처럼 스쳤다. 김인환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 그것은 특종을 쫓는 기자의 본능적인 직감이었다.
― 갑시다.
정시영은 카메라기자의 팔을 끌다시피 사무실을 나서 곧바로 현장중계차에 올랐다.
― 나도 함께 갑시다.
선거사무장이 급히 따라 나와 허락도 없이 중계차에 타며 말했다.

― 마린시티호텔 알지요? 최대한 빨리 갑시다.
정시영이 운전기사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선거사무장이 정시영의 태도가 심상찮음을 느꼈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 당선자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긴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빨리 갑시다.

정시영이 다시 한 번 재촉하며 휴대전화를 꺼내 114로 전화를 했다.
― 마린시티호텔 부탁합니다.
곧이어 정시영이 이번에는 마린시티호텔로 전화를 했다.
― 마린시티호텔이죠. KNB방송 정시영 기잡니다. 지금 곧 취재진과 경찰이 도착할 테니까 804호실에 아무도 접근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호텔에서도 문을 열면 안 됩니다. 취재진과 경찰이 갈 때까지 804호실에 어느 누구도 들어가면 안 됩니다. 긴급 상황입니다. 알겠지요?
 

경찰까지 들먹이며 큰소리로 전화를 마친 정시영이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중계차는 어느 듯 시내를 벗어나 마린시티호텔이 있는 해변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

해운대경찰서 강력계 박경일 경위는 아내와 막 관계를 끝내고 쏟아지는 잠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때 침대 머리맡에 놓인 휴대전화가 울렸다. 또 비상인가? 짜증이 났다. 팔을 뻗어 폴더를 열었다. 나야, 시영이, 귀에 익은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고교동창 정시영 기자였다. 학창시절부터 친했고, 요즘도 퇴근 후 자주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곤 했다. 흥분되어 있었다.

― 거두절미하고 지금 바로 마린시티호텔로 좀 와 줘야겠어. 긴급 상황이야!
― 마린시티호텔? 오밤중에 무슨 뚱딴지 소리야?
― 농담 아냐! 김인환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겼어. 나도 지금 그리로 가고 있는 중이야.
― 김인환이 누군데?
― 국회의원 당선자. 오늘 개표방송 못 봤어? 군말 말고. 급해. 마린시티호텔 804호야. 빨리 와.

순간 박경일은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강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팽팽한 긴장감과 전율이었다.
― 최 경위, 비상이야! 출동!

박경일이 휴대전화로 전화를 하면서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 계단을 후다닥 뛰어내려왔다. 박경일이 아파트주차장에 세워둔 제 차에 올라 새벽어둠 속을 맹렬한 속도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

― KNB방송 정시영 기잡니다. 804호에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지요?
― 예.
호텔 프런트에 있던 젊은 남자직원이 말했다.
― 사무장님께서는 이곳에서 경찰을 기다렸다가 함께 와 주세요.

선거사무장을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게 하고 정시영은 호텔 직원과 함께 804호실로 올라가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아무 응답이 없었다. 직원이 보조키로 방문을 열었다. 정시영과 카메라기자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거실 바닥에 가운을 입은 한 남자가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로 반듯하게 누워 있었다. 선거벽보에 붙어있던 낯익은 얼굴이었다. 목에서 흘러나온 피가 몸체 아래 하얀 가운을 흠뻑 적시고 있었다. 바닥에 깔린 자주색 카펫에도 피가 흥건했다. 깨어진 샴페인병 유리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방안에 켜져 있는 TV 화면에는 여전히 개표방송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시영의 뒤에 서 있던 카메라기자가 조심조심 방안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TV 화면에 자막과 함께 김인환 피살 소식을 긴급속보로 전하는 정시영의 얼굴이 나타났다.

― 긴급속보입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김인환 후보가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에서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화면은 당선자의 사체가 발견된 마린시티호텔 804호실 실내 전경입니다. 당선자인터뷰를 위해 이곳 호텔에 도착한 본 기자에 의해 최초로 발견된 사체의 목에 깊은 자상이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당선자는 분명 누군가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

비록 패배했지만 정신을 차려야 했다. 선거종사원들과 지지자들에게 패배에 연연하지 않는 대범함을 보여야 했다. 그가 평소 최경호에게 하는 것처럼 시정잡배나 쓰는 막말이나 해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여우가면을 쓰더라도 지지자나 유권자들 앞에서 그는 항상 근엄하면서도 소탈하며 겸손한 선량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속에서는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지만, 정해현은 전혀 내색하지 않는 표정으로 선거종사원들과 지지자들이 운집해 있는 사무실로 나갔다. 패배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사무실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정해현은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다.

― 여러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렬히 지지를 해주시는 여러분들의 성원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 어머! 저것 보세요.
정해현의 인사말에도 불구하고 뒤쪽에서 여전히 개표방송을 보고 있던 한 여자가 큰소리로 외쳤다. 사무실에 있던 모든 시선이 TV로 향했다.

― 긴급속보입니다.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예상을 뒤엎고 당선된 김인환 후보가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에서 피살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보이는 화면은…….

이럴 수가! 순간 정해현은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조금 전 최경호가 전화로 김인환의 목줄을 따 놓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최경호가 한 말은 사실이란 말인가? 그가 홧김에 김인환을 죽여 버리라고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말인가? 김인환이 살해되었다니! 
 

정해현은 사무실에 운집한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최경호를 찾아보았다. 최경호도 사무실 중간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붉게 물든 목덜미와 안색, 핏발이 선명한 눈동자는 TV에 비친 피살자의 목에서 흘러내린 핏빛을 연상시켰다. 술을 마신 표정이 역력했다.

정해현은 최경호가 사무실을 나간 시간을 헤아려 보았다. 김인환이 피살된 장소가 마린시티호텔이라면, 그가 물벼락을 맞고 방을 나간 후 호텔에 가서 김인환을 살해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간 정해현은 갑자기 등줄기에서 일어난 찬 기운이 전신을 확 휘감는 것을 느꼈다. 적의와 살의를 품은 최경호가 야수처럼 형형한 눈빛으로 TV를 응시하고 있었다.

*

― 현장을 보존해. 모두 밖으로 나가요.
박경일이 마린시티호텔 804호실의 문을 박차듯이 들어서며 외쳤다. 같은 강력계 소속 최수환 경위가 정시영과 카메라기자의 등을 떠밀어 방밖으로 쫓아냈다. 어지럽게 흔들리는 TV 화면에 피살 현장의 실내 전경이 다시 한 번 비쳐지고 있었다.

*

패배에 망연자실해 있던 정해현의 선거사무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특히 당선이 확정된 후보가 임기를 개시하기 전 피살된 경우나, 다른 이유로 사망한 경우,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느냐는 법적인 문제가 대두되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매스컴이 법률전문가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여러 갈래로 보도를 하고 있었다.

보도내용에 따르면 김인환이 피살된 시점은 선거가 있은 날 자정경이라고 했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당선인이 없는 것에 해당하고, 결국 이 지역구는 90일 이내에 재선거를 실시하여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사무실은 마치 정해현이 당선이라도 된 것처럼 다시 축제분위기로 변했다. 비록 90일 이내에 재선거를 치러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지만, 강력한 경쟁자인 김인환이 없는 마당에 정해현에 맞설 수 있는 마땅한 다른 인물이 없었다. 따라서 사실상 정해현은 이미 당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최경호는 생각했다. 정해현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인가. 그리고 이렇게 운이 좋은 사람의 보좌관인 그 자신은 또 얼마나 대단한 행운아인가. 정해현의 당선은 그에게도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피살된 김인환에 대한 애도의 감정은 눈곱만치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김인환을 살해한 자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그 살인자가 고마워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최경호는 아직 깨지 않은 술기운 속에서도 각 방송사에 정해현의 기자회견 사실을 통보했다.
 

정해현이 근엄하고 비통한 목소리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 먼저 상대후보였던 김인환 씨의 피살에 대한 심경을 피력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고인은 정말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과 함께 치른 이번 선거는 어느 선거보다도 공정한 선거였습니다. 그분의 불행에 대하여 저는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신장시키기 위하여 일생을 보낸 훌륭한 인권변호사 한 분을 잃었습니다. 저는 그분을 앗아간 폭력에 대하여, 그분의 생명을 앗아간 만행에 대하여 철저한 법의 응징을 촉구합니다.

이 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의 폭력도 저는 거부합니다. 폭력은 이 사회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야 합니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저의 가슴에서 우러나는 진심어린 애도를 표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당선자의 예기치 않은 죽음으로 조만간 재선거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여기에 다시 출마를 하실 건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가 벌써 재선거를 논하는 것은 그분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일로 여겨집니다. 김인환 씨는 결코 용서받지 못할 만행에 의하여 생명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비통한 심정으로 그분의 불행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의 재선거 출마 여부는 이러한 불행한 사태에 대한 수습이 끝난 시점에 가서 결정될 것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오직 고인의 명복을 비는 간절한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 2018. 11. 5.(월) 연재 제4회 <용의자> 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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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와의 짧은 소통

▲ 천년의 숲, 제주 비자림의 연리목

 오래되고 깊은 사랑에는
부대끼고 상처를 입어
지우지 못하는 흉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믿음의 끈을 놓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흉터는 더욱 아름답습니다.

▲ 임재도 소설가

▲ 임재도 작가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경남 창녕 길곡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다. 부산 동아대학교 법학과 및 동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 주요 작품으로 장편소설 『코리아타워(상/하)」, 『피터팬, 법정에 서다』 등이 있고, 기타 다수의 중,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했다.

▲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친일재산의 사회 환원 방법으로 《코리아타워》라는 한국의 상징건물을 짓고자 했던 건축공학박사 유경준! 건축공사 계약을 체결한 바로 그날 밤, 그는 교통사고로 숨지고 만다. 그로부터 3년 후, 아버지의 죽음이 교통사고를 가장한 살인이라는 익명의 메일을 받고 살인자들의 배후를 추적하는 딸 유휘진!
신출내기 변호사인 그녀 앞에 서서히 드러나는 검은 세력의 실체는?

▲‘웰빙(well-being)’과 ‘웰다잉(well-dying)’은 같은 선상에 있다.
식물인간 아버지의 고귀한 죽음을 위해 병원을 몰래 탈출한 어린 아들에게 덧씌워진 존속살인죄!
소년은 과연 어떤 판결을 받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