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서시序詩

                                               변 종 환

▲ 사진 조원희

밤새 신열에 들떠 있다가
꽃이 피었다
나직이 말을 건네는 그것은
시간을 견딘 보람이다
속을 비우면서 저 가득한 것들
피고 지는 일이 내 탓이리니
시린 마음으로 꽃을 본다
탄생과 소멸
사랑의 몸짓으로 다가오는 찰나
이승의 한 생이 저문다
오, 찬란한 슬픔이여
눈부신 침묵이여

*작가 노트

▲ 변종환 시인

우리는 아주 많이 좋아하면 사랑한다고 하는데, 사랑은 좋아함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는 좋아함 이상으로 걱정, 보살핌, 의존, 즐거움, 외로움 등 여러 가지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동반되는 감정은 너무나 즐거운 쾌락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습니다. 복수심에 불타는 분노도 사랑 때문에 생깁니다. 사랑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달라 어떤 사람은 열정과 동일시하고, 어떤 사람은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한편 자신들의 사랑이 진정한 사랑일까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지요.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도 사랑에 대한 정의는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면 꽃이 피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요? “밤새 신열에 들떠 있다가” 꽃이 피었습니다. 그리고 나직이 말을 건넵니다. 그것은 “시간을 견딘 보람”이지요. 어느 시인은 인생의 온갖 고통과 신산함으로부터 도피하지도 말고, 그 둘은 모두 함께 그냥 맛보라고 했습니다. ‘번뇌’와 ‘해탈’ 그것이 하나임을 허공을 보며 깨달으라고 했지요.

꽃이 피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속을 비우면서 가득 채우는 충만함이 바로 꽃이 피는 것입니다. 기다림의 결과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만족을 누리기 쉽고 평화를 누리기도 쉽지요. 칭찬을 받는다고 해서 거룩해지지 않고 비난을 받는다고 해서 비천해지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로 입니다. “찬란한 슬픔” “눈부신 침묵”처럼.

변종환 시인은 현재 부산진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이며 전 부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과 부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부산문학상 본상」·「부산PEN문학상 대상」등 다수를 수상했으며 시집으로『송천리에서 쓴 편지』외 다수, 산문집으로『餘滴』외 2권이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