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변 종 환

갈 곳을 미리 정하지는 마세요
이 강산 어디를 가도
높고 낮은 산들은
거기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잖아요
계곡 이쪽저쪽
푸른 숲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보면
산자락 끝에서 물소리도 들리겠지요
길 따라 피어있는
산국 몇 송이는 꺾지 마세요
하나님이 꽂아두신 자리에 있어야 하니까요
산과 들과 또 지천으로 깔려있는
들풀과 나무와 돌 자갈－
그 들꽃 하나하나 이름을 모른다고 실망마세요
나도 아직 당신의 이름을 모르니까요
집들과 집들,
마을과 마을 사이
그 비어있는 공간 전부를
하늘이라 여기시고,
산새 몇 마리 날고 있거들랑
그냥 기뻐하세요
그냥 기뻐하세요

*작가 노트

▲ 변종환 시인

지금은 여행의 계절이다. 사람마다 어디로 떠나볼까 여기저기 물어보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길로 가야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우리는 자신만의 진실한 순간 속에서 여행을 한다. 여행자는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복을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행은 환한 길을 걷는 것도 좋지만,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안개 속을 거니는 것도 좋다.

길을 묻는 제자에게 붓다가 한 말을 생각해본다.
“아무 것도 믿지 말라. 그것을 어디에서 읽었든, 그것을 누가 말했든, 설령 내가 한 말이라도 의심하라. 직접 보고 경험한 뒤에, 자신의 이성과 상식에 부합되면 그것에 따라 살아가라.”

변종환 시인은 현재 부산진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이며 전 부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과 부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부산문학상 시부문 본상」 · 「부산PEN문학상 대상」등 다수를 수상했다. 시집으로 『송천리에서 쓴 편지』 외 다수, 산문집으로 『餘滴』 외 2권이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