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에서

                                                 변 종 환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막장에서
우리가 캐내는 것이
어찌 석탄뿐이겠느냐
세상의 슬픔 그 깊은 절망의 암반을 깨트려
우리가 캐내는 것은 차라리 희망이어야 한다
검은 연탄가루 날리는 탄광촌
희미한 전등 속에서
새벽이면 날아오르는
아이들의 고단한 꿈이어야 한다
어두운 갱도를 내려가
일백오십팔 미터 막장으로 내려가
암반보다 더 두꺼운 절망을 딛고
우리가 캐내는 것이
어찌 석탄뿐이겠느냐
눈물뿐이겠느냐

*작가 노트

▲ 변종환 시인

끝은 또 다른 시작점이라고 했습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문득 탄광의 막장을 생각합니다. 종착역에서 출발하는 삶의 무한궤도, 순환하는 그 속에서 순간의 희망을 봅니다. 두 해전, 강원도 여행길에서 태백, 영월, 정선의 탄광촌을 지나온 적이 있었습니다. 적막한 탄광촌은 막장의 현실 그대로였습니다. 탄광촌 아이들의 고단한 꿈은 이제 이 세상 어디에선가 절망을 딛고 일어선 우리의 희망이겠지요.

변종환 시인은 현재 부산진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이며 전 부산광역시문인협회 회장과 부산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시집으로 「송천리에서 쓴 편지」 외 다수, 산문집으로 『餘滴』 외 2권이 있다. 부산PEN문학상 대상 ·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등 다수를 수상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