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를 두고

                                   박 정 숙

붉은 가사 입은 스님 따라
웃는 영정 사진 앞세운 상주들 종종 걸음이네

600년 뿌리 깊은 매화나무
바람결에 합장하며 극락왕생 재를 지내네

먼 시간 속에서 별이 되어 찾아온 어리연 꽃봉오리
핀 듯 만 듯 초록에 가려 고요롭네.

지당에는 몇 대를 이어왔을지 모를 올챙이들
꼬리만 떼면 해탈이라고 이리저리 요란하네

가고 오는 생의 길 분주하고
바람 타는 대웅전 추녀의 물고기는 눈 한 번 감을 틈이 없네

일체 만물이 저리 바쁘니
헤매던 영혼은 이제야 길 찾았나 보네

선암사 해우소에 걸린 어느 시인의 시를 두고
우리는 아직 익숙한 우리 길을 따라 하산하네

❚작가 노트

선암사에 가서 여러 장면을 보았다. 재를 지내는 상주들이 줄줄이 스님의 이끌음에 따라가고 영정 사진의 주인공은 웃고 있다. 유족들은 망인의 웃음을 기억하고 싶었을 것이다, 600년 된 매화나무도 그 광경 많이 보았는지 바람결에 합장한다.

몇 대를 그 작은 연못에서 살았는지 모를 올챙이는 꼬리를 버리려고 안간힘을 쓴다. 목어는 눈 한번 감은 적 없다. 만물이 모두 분주하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톱니바퀴 맞물린 듯 잘 돌아가는 세상이다. 선암사에 와서 모두 득도하였나 보다. 시간이 지나면 다 알게 되나 보다. 해우소는 모든 중생이 가는 곳, 시 안 읽은 사람도 절문을 나선다. 다 제 갈 길 알고 찾아서 간다. 득도한 것처럼 막힘없는 걸음으로.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 박정숙(朴靜淑) 시인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 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영남문학상(2021), 계간문예작가상(2023)을 수상했다. 영남문학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시향문학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로 활동 중이다.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국내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