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힘
― 모정
                                    박 정 숙

남성시장 골목 담벼락 아래 한 평 노점상하는 할머니
몇 줌 채소를 떨이처럼 펼쳐 놓고 직접 기른 거라 호객하신다

잘 자란 자식들 자랑도 하시며 붙박이처럼 앉은 반생의 자리
경작할 굽은 시간이 어디 있었을까마는

한 치 이동도 못하지만 커다란 느티나무는
해마다 씨앗이 멀리 날아가도록 했고 너른 그늘도 만들었지

매미들은 신나게 놀다가 홀연히 다 떠났고
풀도 시든 그 자리

자식들에게 고로쇠 다 뽑아주고 말라가는 나무에게도
따스한 볕 한 줌 환히 찾아가고 있었다.

모정이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발생하는 일
뿌리는 지상의 희망을 위해 막장까지 파고들어 갔다

❚ 작가 노트

나는 시장 구경을 좋아한다. 시장에 가면 생기가 넘치고 사람 사는 모습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 에코백에 가득 담는 장보기도 행복이다. 시장 노점상 하시는 할머니는 늘 그 자리에 앉아 계시면서 직접 기른 채소라고 손님을 부르고, 다른 데서 공급받아 판매하는 것을 알면서도 가서 흥정하는 재미도 좋다. 나무 같은 그 할머니는 그 자리에서 한 뼘 그늘 만들어 자식들 거두어 주셨다. 고목처럼 여위어 가시면서도 자식 생각하시는 마음을 아는지 햇살이 좌판 구석구석 따스하게 비추어 준다. 그러니 어찌 희망을 버리시겠나.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박정숙(朴靜淑) 시인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 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영남문학상(2021), 계간문예작가상(2023)을 수상했다. 영남문학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시향문학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로 활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국내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