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

                                  박 정 숙

등짐 진 일생을
구르는 재미로 순응하는 바퀴

구르다가도
딱 멈춘 그 자리를 최고로 아는 주사위

굴리면 둥글둥글
세상 어디든 가겠다는 구슬,

허수아비 같은
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바람 한 줄기에도
온몸 던져 저항하는 저 일관성

❚ 작가 노트

요즘은 동네 놀이터를 보아도 제한된 그 공간에서만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 같다. 어릴 적에 여자애들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고무줄 놀이를 했고, 남자애들은 굴렁쇠 굴리기, 바람개비 돌리기로 온 동네를 휘젓고 다녔던 모습이 생각난다.

바퀴는 순응하며 굴러가고, 주사위는 던져졌다가 멈추면 그 자리에서 처분을 기다리고, 구슬은 어디든 굴려주면 따르겠다고 한다.

그러나 풍향계나 바람개비는 자긍심과 저항심으로 존재를 보여준다. 얼핏 바람이 시키는 대로 도는 것 같지만 그건 온몸으로 바람에 저항하는 모습이다. 미약하여 세파에 시달리어 밀리는 것 같아도 저항하기에 살아서 도는 것이다.

낙하산에 매달린 사람도 펼친 천 조각이 바람에 저항해 주었기에 생존하는 것.

매사에 남모르게 일을 돕고 희생하는 숨은 공로가 따로 있음을 알아야만 하겠다.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박정숙(朴靜淑) 시인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영남문학상(2021), 계간문예작가상(2023)을 수상했다. 영남문학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시향문학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로 할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국내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