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주, 가라앉다

                                  박 정 숙
 

막걸리를 밥 삼아 먹던 친구의 문상객
막걸리 잔은 가득 찼다가 비워지길 반복했다

설움과 억울함을 섞은 것인지
미완의 삶과 미지의 생을 합집합으로 묶으려 함인지

그토록 오래 그는
탁류에 목젖을 맡긴 채 깊이 빠져 있었다

그가 그랬듯이 혼탁함을 다 마시려던 문상객들은
아니야, 아니야, 이건 아니야

끝이 이래선 안 된다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장례식장을 떠났다

그의 영정 앞 오래된 술잔에는
맑은 술이 위로 분리되고 있었다

그냥 두기만 해도
절로 침잠하는 세상을 두고 사람들은 떠나갔다

❚ 작가 노트

언론인인 그 친구는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즐겼다. 때문에 주기적으로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고, 내 간은 이제 깨끗해졌다면서 막걸리를 마셨다. 그렇게 마시고도 새벽이면 신문에 낼 원고가 완성되어있는 놀라움을 보였다.

세상이 탁해 보여서 세상에 어울리기 위해 막걸리를 많이 마셨는지 알 수는 없다. 그러다가 부음을 받았다. 세상을 떠난 것이다.

문상객이 따른 탁주가 밤새 맑아졌다.
찌꺼기가 다 가라앉은 맑은 물이 떠 올랐다.
그의 세상에는 설움도 한도 없고
술잔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모두 가라앉을 것이다.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박정숙 시인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영남문학상(2021), 계간문예작가상(2023)을 수상했다. 영남문학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시향문학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로 할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국내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