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

                                  김 경 희
 

건넌방 아버지 마른 헛기침 소리가 들린다
몇 번짼가
유채색 멜로디 위에 얹은 기침 소리도
벗겨진 여린 속내를 재우지 못한다
처마 밑
고드름 한기 속에 늘어선 대구포
마른 안줏감으로 언니 손에 들려 입장한다
겨울바람이 가만가만 흔드는 시간이
달을 매달고 동쪽으로 기우는데
묶여버린 걸음은 누구도 풀지 못한 채 익어가는 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어릴 적 함경도 싸락눈 내리던 겨울밤을
잊지 못해 애창하는 큰 오빠 노랫소리와
건넌방 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모른 척 악수를 한다
마른 가슴은 부은 채로 날갯짓하고
지나간 어젯밤은 발끝에서 밟히는데
시간을 새김질하는 기억 속 그날 다시 불러
오늘 밤 품은 달빛 속에서
또 한 번 옷고름을 푼다

❚ 작가 노트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하소설이자 그의 필생의 역작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소설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야기는 벨 에포크 시대에 프랑스 신흥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화자가 많은 일을 겪고 중년이 된 시점에서 시작된다.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을 한입 베어 물면서 그 맛과 향기와 분위기에 일종의 데자뷰를 느끼며 그 데자뷰를 통해 과거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러면서 시점은 과거로 넘어가 자신이 아직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이후 점점 작중의 화자는 이야기 속에서 성장해가게 된다. 작가로서 살고 싶었던 주인공은 몇 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나 최후에 이르러 자신이 살아온 인생 그 자체가 드라마이며 최고의 글 소재임을 깨닫고 비로소 펜을 붙잡게 된다.

그렇다. ‘지나가버린 시간’,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미련은 시인이 아니라도 기억력이 살아있는 누구나 떠올리며 과거 속에 파묻혀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한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두 송이 눈을 봐도 고향 눈이요”/ ‘어릴 적 함경도 싸락눈 내리던 겨울밤을/ 잊지 못해 애창하는 큰 오빠 노랫소리와/ 건넌방 아버지 헛기침 소리가 모른 척 악수를 한다’

시인이 된 사람은 누구나 나의 마음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를 쓰면서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이다. 시는 나의 동반자이며 나를 후원하는 후견인이리라. 

❚김경희 시인은...

▲ 김경희 시인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동의대 겸임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성악가이자 음악 교육학 박사.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 자립계획특별위원장을 역임하였고,
현재. 시사위문화예술인협회 회장, 국제펜 한국본부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
부산여류시인협회 부회장, 한국바다문학회 부회장, (사)한국꽃꽂이협회 부산지역연 합회 회장.

(주)Ocean Jade Shipping 대표이사 재임 중.

저서: 시집 『시는 멜로디를 타고』, 『꽃물, 손끝에 지던 날』, 『그대 입술에서 꽃이라 불리던 내 이름』, 『잃어버린 시간』 외 석·박사 논문집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