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뉴브 강가에서

                                  박 정 숙 
 

울음 삼킨 그 강물
다시 잠잠해졌더라

그날 밤의 세찬 물살
혹독한 비바람은
많은 목숨을 앗아갔지

달빛은 예전 그대로
물살따라 흐르고

다리 옆 한글 위령비 하나
말없이 바람에 젖고 있네

오래 더 고요해져야
오래 더 아득해져야
그래야 다뉴브 강이지

두 손 모으고 기도하네
강물은 오늘도 흘러가네

❚작가 노트

폭우로 그토록 순하디순한 다뉴브강의 물살이 너무나 급격하게 흐르는 것을 부다페스트 세체니 다리를 지나다가 보면서 무서움을 느꼈다. 배를 타고 싶다는 계획을 접고 숙소로 갔다. 한밤중에 전화랑 문자가 폭주하기에 살펴보니 유람선이 침몰하여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고 걱정하는 지인들의 연락이었다.

2019년 5월 그렇게 아까운 목숨들이 세상을 떠났고 3년 뒤 그 자리에 가 보니 자그마한 비가 있었다. 떠난 영혼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한 것인지 한글 위령비였다. 그 옆에는 제2차 세계대전 중 희생된 유대인을 기리기 위한 신발 조각품이 있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운명을 달리한 그분들의 저세상에서는 신발도 필요 없으시겠지.

헝가리 무곡, 다뉴브강의 왈츠, 그 달빛 얼마나 듣고 싶고, 보고 싶어 했을까, 못다 이룬 꿈을 생각하면서 두 손 모으고 기도한다.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흐르는 세월을 보며,

더 고요해져야지
더 아득해져야지
그래야 다뉴브강이지

오실 때 맨발이듯 가시고서도 맨발로 다 잊고 훨훨 도솔천 지나가소서.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 박정숙(朴靜淑) 시인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 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했고, 영남문학상(2021), 계간문예작가상(2023)을 수상했다.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한국본부, 시향문학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로 할동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