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숙 시인 첫 번째 시집 『반려』 출간
― 관계와 관계의 끈을 이어주는 <반려>의 시인

박정숙 시인이 첫 시집 『반려』를 출간했다.
 

첫 시집 《반려》,
세월만큼 무겁다

그래도
꿈 하나 이루었다

새로운 꿈을 생각하니
주위가 모두 환하게 보인다

부끄럽지 않은 시의 집을
짓도록 연마해야겠다

첫 시집을 내는 시인의 소감이다.
첫 시집에 대하여 ‘세월만큼 무겁다’고 한 것은,
그만큼 이 시집을 내는 시인의 감회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먼저 이 시집의 제목으로 삼은 표제시 <반려>를 보자.

지구도 사람처럼 달 하나 데리고 다닌다니까,
달도 강아지처럼 지구를 따라 다닌다니까

박덩이 같은 아기가
온 세상인 엄마 주위를 빙빙 따라 다닌다니까,

끝없는 헤엄 끊을 수 없는 유영
인연의 긴 줄에 꽃술처럼 이어진

성가시지도 않고 사랑스럽기만 한
부풀었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그런 거라니까,

우주도 그래서 아직 소멸하지 않는다니까
사랑이 없어 봐, 다 없어진다니까

캄캄해진다니까

―「반려」(전문) ―

<반려>의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라는 말이다. 이 말에는 사랑과 믿음으로 서로를 보살피며 함께 살아간다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반려>의 관계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관계와 관계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은 끈, 줄이 존재해야 한다. 인연의 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박정숙 시인은 ‘인연의 긴 줄에 꽃술처럼 이어진’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시인을 ‘관계와 관계의 끈을 이어주는 <반려>의 시인’이라고 한 이유이다. 이 인연의 끈을 지구와 달 사이의 우주로 확장하는 발상의 참신함과 상상력이 더 놀랍다.

박정숙 시인의 이 시집에 대하여 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은 “박정숙 시인의 시는 우리가 날마다 보고 쥐고 만질 수 있는 찰나의 삶, 오늘의 현실에 바글거리는 실감을 시의 제재로 삼는다. ―(중략) ― 대상을 보는 시선은 순정하고, 이미지와 어휘는 단순하다. 그이는 여백이 많은 시를 쓰는데, 그렇게 복잡하고 난해해지는 오늘의 시 경향에서 멀리 벗어난다. 그이의 시가 보여 주는 단순함과 투명함은 분명 시가 지향해야 할 미덕 중 하나일 테다. ”라고 평한다.

한편 이 시집의 평설을 쓴 공영해 시인은 ‘박정숙 시인의 시에는 잘 익은 와인 향이 배어 있다. 코르크 마개를 뽑자 펑 소리와 함께 터지는 기분 좋은 향기와 웃음소리를 《반려》에서 만난다.’라고 한다.

공영해 시인이 이 시집에서 뽑은 다른 시 한 편을 본다.

이슬 젖은 달빛
흔들며 우는 귀뚜라미 소리

막내 동생 실루엣 두고

달에게로 가신 오빠

가을이면 익는 기억 한 방울
일어선다

달빛 머금고 피는
쑥부쟁이 성근 꽃무리
떨고 있다

춥다
― 「쑥부쟁이 꽃」 전문 ―

인연은 인간관계에서 소중한 가치이다. 시인들은 그 인연 관계를 소중하게 다룬다. 그중에서도 혈육 간의 만남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이 시는 혈육(오빠)에 대한 그리움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감정을 배제한 시인의 내면적 은유는 추상적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힘이 있다, 라고 평한다.
 

이 시집은 제1부 아지랑이 피다(「교동 교택」외 13), 제2부 강은 흐른다(「기다림의 미학」외 13), 제3부 땅이 숨쉬다(「나이테」외 13), 제4부 하늘이 내려온다(「정신을 찾다」외 13), 제5부 바람개비 돌다(「성묫길」외 13)로 편집되고, 총 65편의 시가 실려 있다.

그리고 이 시집에 실린 시는 관계와 관계의 끈, 줄을 매개로 하면서도, 장석주 시인이 위에서 평한 것처럼 ‘여백’이 많은데, 시인은 이 여백을 타인에 대한 배려와 믿음, 나아가 사물과 우주에 대한 큰 사랑으로 채우고 있다.

박정숙 시인은 가냘픈 여성이지만, 남성들도 하기 힘든 대한검도회 공인 4단의 무예인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인은 무예를 수련하는 것처럼, 검을 연마하듯 내면의 자아 안으로 들어가 시를 쓴다. 자기를 내면에서 다스리며 올바르고 강한 기운으로 울림이 큰 시를 독자들에게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시인은 이성적 논리에 강하지만 감성은 순수하여 정 앞에서 울고 웃으며 내상을 당하여도 조용히 다스리는 문맹인의 꿈에 목말라하는 자칭 ‘음유시인’이다. ‘정신으로 이룰 수 있는 우리들의 영원한 세계는 무엇일까. 시의 힘으로 닿을 수 있는 반려의 세계 아닐까.’라는 공영해 시인의 논평도 오래 잔상이 남는다.

박정숙 시인의 프로필을 간단히 소개한다.

▲ 박정숙 시인

경남 창원 출생.
2019년《영남문학》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2022년 제6회 영남문학상 수상.
계간문예작가회 수석이사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향문학회 회원
시집 《반려(2023)》
◎ 이메일 주소: jeongsook1738@gmail.com

시인에게 이 시집에 실린 표제시 「반려」와 이 시집의 평설에 언급된 시 외에 시인이 직접 뽑을 시는 어떤 시냐고 물어보았다. 「봄날은 간다」, 「나이테」, 「선암사를 두고」,「정답 찾기」, 「2.0 너머」를 추천한다. 이중 「나이테」를 소개한다.
 

나이테

몸에다 감아온
유년기부터 장년기까지 한 획 한 획
까마득한 흔적 위로
내일은 어떤 획을 그으려나
노년기부터는 다른

손바닥 발바닥
온 뼈마디가 쑤시는데
많이 숨 쉬고 삼킨 목에도
많이 웃었던 입가에도

굵은 주름 남기는 것이
그 무슨 흉인가
내가 감아 온
내가 접어온 세월인데

계간문예 시인선 184
박정숙 시집 《반려》

펴낸 곳 도서출판 계간문예
지은이 박정숙
발행인 정종명
132 페이지,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