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주 시인의 감성 수필 《바람이 두고 간 풍경》 출간

경남에서 활발한 시작(詩作)과 갤리그라피 작가로 활동하는 홍성주 시인이 수필집 《바람이 두고 간 풍경》을 출간하였다.
 

오늘이라는 산을 넘어
내려가는 길
레드 카펫이 빛바랜 채 깔렸다.
암벽을 뚫고
그 사이에 뿌리를 내린 나무를 보며
강한 삶의 근원을 느낀다.

산은 산이다.
겨울이 지나는 중일 뿐.
쌓인 낙엽은 발효를 꿈꾸고 있다.
새로운 봄을 바라며.

이 수필집을 내는 홍성주 시인의 말이다.

이 수필집에 대하여 오종문 시인은 ‘어느 순간에서는 따뜻한 마을을 전달받았고, 어느 대목에서는 가족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작가의 자유분방한 생각과 철학을 마주 대하기도 했다. 아니, 또 어느 대목에 이르러서는 순간, 울컥하기도 했다.’라고 하면서, ‘시인은 이 수필집을 통해 지난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기반으로 사유와 해석의 파장을 일으켜 독자의 실제 삶에 자유를 선물한다.’라고 한다.

나아가‘팬데믹 시대 거리두기의 불안과 외로움, 고립감에서 벗어나 혼자 웅크리는 응축의 시간에 삶의 의미와 활력을 불어넣는 홍성주의 수필집 『바람이 두고 간 풍경』은 마음을 치유해 준다.’라고 한다.
 

이 수필집은 제1부 봄 ― 마음 출구(9편), 제2부 기억 ― 나를 만나러 가는 길(8편), 제3부 여행― 풍경(7편), 제4부 삶 ― 인생(8편), 제5부 청춘 ― 다시 ‘첫’을 기다리며(7편) 총 5부 39편의 수필로 구성되어 있다.

산문이지만, 시인의 시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독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잔잔하면서도 큰 울림을 준다. 중간중간에 실린 삽화 같은 사진도 글의 의미를 더욱 살려 준다. 갤리그라피 개인 전시회를 열만치 미술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은 시인의 감수성이 발휘된 수필집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 디지털 세대의 취향과 트렌더에 잘 맞는 수필집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홍성주 시인은 충북 청주 출생으로 2020년 《새한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였고, 시조시학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인간의 일생은 생명의 탄생으로부터 시작되어
그 지난한 시간과 역사를 거치며
하나의 거대한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
이것은 오직 살아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 수필집 《제4부 삶 ― 인생》의 표제글이다.

이 수필집에 실린 수필 「비버의 달」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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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버의 달

붉은 달이다. 고속도로 한가운데 유난히 커다란 달이 동그랗게 떠 있다. 달은 곧 산 위에 걸터앉았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숨었다. 사라진 듯싶었는데 정면에서 나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다. 돌연 길 뒤에서 뛰어오는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때로는 매우 가까이에서 흐르듯 다가오고 있는 것 같다. 갈색과 붉은색이 섞인 화사한 달빛이 눈길을 끈다. 오늘은 예전에 무심코 보던 달이 아니다. 커다란 달은 밝으면서도 여러 빛깔을 함께 보여 주고 있다.

11월 붉은빛이 도는 달을 ‘비버의 달’이라고 한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털갈이하는 비버의 털색을 닮아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평상시 비버의 털은 윤기 나는 갈색 계열의 빛깔이다. ‘야생의 목수’라고 불리는 비버는 두 개의 귀여운 앞니가 꽤나 인상적이다. 예쁘고 앙증맞은 이름에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달을 바라본다. 검은색 하늘 위에 주홍색 색종이로 오려 붙인 듯 선명하게 보인다. 커다랗고 둥근 달 안에는 무수한 전설과 사연들이 숨어 있는 것 같다. 넓적 꼬리를 끌면서 달아나는 비버처럼, 달빛을 비추며 움직이는 달그림자가 서로 닮은 모습이다.

달이 붉게 보이는 것은 달에 도달하는 빛이 지구 대기를 거치는 상황일 때, 붉은색 계열이 주로 달에 닿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구에서 관측하는 슈퍼문은 평상시 지구와 달 사이가 가장 멀 때보다 몇만 Km나 가까운 거리에 놓인다. 지금 보이는 달은 슈퍼문 보다는 멀리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늘에 떠 있는 달이 이처럼 크게 보이는 것은 ‘달 착시현상’ 때문이다. 주변 지형 등 인식의 차이와 대기의 상태에 따라 우리 눈의 렌즈 효과로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때로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내 생각과 같다고 미루어 짐작하여 상대방을 대할 때가 있다. 보이는 것만을 믿어버리므로 겪는 혼란스러움이다. 그로 인해 타인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음을 알았을 때 실망감을 느낀다. 달이 착시현상을 일으키듯 사람들 관계에서도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다. 달은 착시현상이라 할지라도 붉으면 붉게, 푸른빛이면 푸르게 볼 수 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명확하게 볼 수가 없다. 숫자로도, 가늠으로도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만큼의 거리에 세워두고 품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가까이 있다고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것도 아니며, 멀리 있다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달을 바라보듯 사람의 마음도 눈에 보이는 빛깔로 받아들인다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오해는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달은 멀리 있기에 숫자로 기록되는 거리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도리어 사람의 마음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때가 있다. 그 때문에 수없이 고심하고도 난감한 오해의 상황을 만나고는 한다. 때때로 가까이 있어도 서로에게 먼 거리감을 느끼기도 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거리를 헤아릴 수 없을 때가 많다.

달과 지구의 거리를 말하듯 명확하게 수치로 계산하여 마음을 말할 수 있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는 좀 더 투명하게 맺어질 수 있을까. 가족이나 연인 사이에 마주 앉아도 말없이 휴대전화만 바라보는 모습을 자주 접한다. 몸은 함께 있으나 마음은 멀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평소 서로에게 무심한 것은 아닌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연한 기회에 남편의 직장 동료로부터 남편이 직장에서 상처를 경험했던 일에 대해 들었다. 혼란스럽고 마음이 상했을 상황을 타인에게 전해 듣고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은 힘든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남편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늘 자신의 일이 최우선이었던 만큼 매우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얼마쯤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남편은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무슨 일이든 서로 나누면 위로가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마음만 더욱 상할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고 한다.

눈빛과 목소리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헤아릴 수 있다고 믿던 때가 있었다. 이제야 생각해 보니 항상 눈빛만으로 서로를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기쁘다고, 즐겁다고 말하는 소통이 필요한 것 같다. 서로에게 마음을 표현함으로 달보다도 멀리 느껴졌던 우리의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너무 가까워서 또는 익숙해서 놓쳐버렸던 서로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서로에게 소홀했던 시간을 함께 나누는 여유를 남겨두어야 할 것 같다.

집에 도착할 즈음 비버의 달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평소에 보던 달처럼 이제는 하얗게 평범한 달이 되어 나를 바라보고 있다. 먼 길을 달려오며 바라보던 오렌지빛 붉은 달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비버의 달을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상대방에게 먼저 다가가겠다는 아름다운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슈퍼문보다 가깝고 비버의 달보다 고운 달이 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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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두고 간 풍경》
지은이 홍성주
펴낸곳 이미지북
232페이지,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