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운주사에서 · 2

                                  변 종 환

용화세계를 꿈꾸면
더욱 아름다운 여기
겹겹의 바위 아래
못난 돌부처들 추위에 떨고
지상에는 눈이 내리는데
운주사 깊은 계곡
천불천탑은 묵언이다
영구산 천불협곡을 떠돌다
세속의 정을 벗어두고
와불님 곁에 나란히 누워
북두칠성 우러르며
나 또한 구김살 없는 영혼으로
머슴부처라도 되어볼까
허허로운 생의 끝자락을 잡고
그래, 산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작가 노트

▲ 변종환 시인

‘구름이 머무는 절’, 화순 영구산 ‘운주사’의 겨울은 눈이 내려야 진가를 알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선정되어 이 일대는 못생긴 돌부처가 저절로 탄생할 것만 같은 지질과 주변 풍광이 한결 우리 민초의 마음에 살포시 와 닿는다.

그래서 ‘와불’과 ‘천불천탑’으로 널리 알려진 ‘운주사’는 많은 전설과 숨겨진 이야기의 근원지이기도 하다. 협곡 사이로 이어진 계곡과 산등성이에 흐트러지듯 자유분방하게 세워진 불탑과 불상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절에서는 느낄 수 없던 기이한 배치이기도 하다.

눈 내리는 야트막한 산 중턱에 자리 잡고 반듯하게 드러누운 와불은 천지개벽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이 나라 민초들의 염원을 끌어안고 염화세상을 기원하는 것만 같다. ‘운주사’ 경내 곳곳에 정좌한 돌부처는 가장 낮은 곳에서 여리게 살아가는 민초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허허로운 생의 끝자락을 잡고/ 그래, 산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변종환 시인은…

* 1967년 기획시집 『水平線 너머』(親學社) 상재, 문예지 『문학시대』 『자유문학』 『문학예술』『문예연구』 등 작품활동 * 현) 부산진구문화예술인협의회 회장 · 한국현대문학작가연대 부이사장 ·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 부산진문화재단 이사 * 부산문인협회 제16대 회장 · 부산시인협회 제10대 회장 · 한국문인협회 ·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등 역임 * 시집 『우리 어촌계장 박씨』 『풀잎의 잠』 『송천리에서 쓴 편지』 『풀잎의 고요』 『겨울 운주사에서』 등 7권 * 산문집 『餘滴』 등 4권 * bjh900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