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선유줄불놀이
― 하회선유줄불놀이 <영남문학의 밤> 행사를 다녀와서

                                소설가 김 미 진

만송정 솔숲 위로 불꽃이 활활 타오른다. 연 꼬리처럼 긴 꼬리가 밤하늘에 춤을 추듯 부용대를 향해 날아오른다. 흐르는 강 위엔 나룻배 한 척이 어둠 속에 등불을 밝히며 유유자적 노닐고 있다. 술상을 마주하고 앉은 두 선비의 술잔 위로 시조 한 구절이 읊어질 때마다 부용대 단애斷崖에선 “낙화야!” 하며 불붙은 솔가지 묶음이 벼랑 아래로 폭포수처럼 떨어진다. 배 위에선 한껏 치장한 여인의 치맛자락이 사각거리며 춤사위로 흥을 돋운다. 안동 하회마을에 450년간 전해오는 <하회선유줄불놀이>다.

지난 10월 29일은 하회선유줄불놀이가 ‘영남문학의 밤’으로 지정되어 협회의 일부 회원과 문우들이 행사에 참여하였다. 5,000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선유줄불놀이를 보기 위해 하회마을을 찾았다. 자동차의 긴 행렬을 따라 가을밤을 밝히는 초승달 아래 문우들과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목적지까지 걸어 들어갔다. 매표소에서 만송정 소나무 숲까진 걸어서 약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생전 처음 선유줄불놀이를 볼 생각에 설레는 가슴을 애써 가라앉히며 행사 장소에 도착했다.

하회선유줄불놀이는 광복 후 경축행사로 부활하였다. 해마다 음력 7월 16일 밤이면 하회마을 선비들이 중심이 되어 부용대 아래 고고히 흐르는 강물 위로 나룻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기며 불꽃축제를 벌인다. 이 엄청난 행사를 위해서 세 가지 요건이 두루 갖추어져야만 한다. 높은 단애와 그 밑을 흐르는 강, 동아줄을 연결할 수 있는 튼튼한 나무이다. 다행히 만송정이라는 소나무 군락이 부용대를 마주 보며 웅비하게 서 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펼쳐지는 천혜의 절경 앞에서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불꽃이 점화되자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환호성과 탄성이 쏟아진다. 불꽃은 가을 밤하늘에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서서히 타들어 간다. 가족과 연인이 모래 위에 돗자리를 깔고 앉거나 서서 불꽃을 바라보며 환희로 가득 찬 표정들이다. 부용대를 향해 타들어 가는 불꽃에 매료되어 하나같이 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광복을 맞이할 당시 하회마을 사람들의 기쁨이 얼마나 컸으면 저런 웅장한 놀이를 만들어냈을까 생각하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전율이 온몸에 전해진다. 강바람을 타고 일렁이는 불꽃 속에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잃고 억압과 온갖 설움을 받아야 했던 민족의 한과 눈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하다.

나룻배가 어스름 강물 위에 등불을 훤히 밝히고 떠 있다. <영남문학의 밤>을 맞이하여 협회 이사장과 회원 두 명이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나룻배에 승선하였다. 선비 복장의 이사장과 한복으로 곱게 치장한 회원 두 명, 하회마을 풍산류씨 문중 어른 한 분, 장승명장 타목 선생 등이 출연하였다. 극단의 아름다운 여인이 탄 배가 강 중앙에 다다르자 뱃놀이가 시작된다. 선비의 시조 두 편이 오천여 관중 앞을 휘돌아 나오면 부용대 위에선 관광객들의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는 “낙화야!” 함성에 맞춰 불덩어리가 절벽 아래로 굴러떨어진다. 선비들과 시를 읊던 황진이가 되살아난 듯 여인이 낭랑한 음성으로 시조를 읊조리고 나면, 관광객들의 하나 된 “낙화야!” 떼창 속에 또다시 불꽃이 떨어진다. 자연과 사람이 만들어 낸 웅대함을 지켜보는 관광객들과 행사에 참여한 주인공들이 하나 되는 벅찬 순간이 아닐 수 없다.

하회선유줄불놀이를 바라보며 하회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허 도령의 슬픈 사랑의 전설에 깊이 빠져든다. 부용대를 향해 타오르는 불꽃이 하회탈을 만들던 허 도령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여인의 애타는 마음처럼 애달프다. 신의 계시를 받은 허 도령은 사랑하는 여인을 남겨둔 채 하회탈을 만들기 위해 외딴곳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 누구도 탈을 만드는 걸 봐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허 도령이 하회탈을 만드는 동안 여인의 그리움은 커져만 갔다. 그리움을 견디지 못한 여인은 허 도령을 찾아가 문구멍으로 슬며시 보는 순간, 허 도령이 그만 죽고 만다. 신을 노하게 만든 그들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사위어가는 불꽃처럼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만약 여인이 조금만 더 참고 허 도령을 기다렸더라면 그들의 사랑은 이루어졌을까. 만송정에 걸린 줄불은 부용대를 향하여 애잔하게 타오르는가 싶더니 여인의 눈물처럼 강바람을 타고 뚝뚝 떨어진다.

선유줄불놀이는 한 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차가운 강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자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화려한 옷차림과 달리 온몸으로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구경 온 많은 관광객 앞에서 웃으며 추위를 버텨내야 하는 것이다. 살신성인의 정신이 없다면 그 또한 힘들 것이리라. 아이러니하게도 물살에 비친 등불의 그림자는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옛것을 소중히 여기며 관광객들과 함께 호흡한다. 역사 속으로 숨어버렸던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기 위해 멀리 영국에서 엘리자베스 여왕도 하회마을을 방문하지 않았던가. 하회마을은 이제 명실공히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적인 명승지로 도약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처럼 ‘무슨 일이든 미리 대비해두면 걱정할 일이 없다’고 선조(1567~1608년) 때 영의정과 임진왜란 시 4도 도체찰사를 지낸 서애 류성룡柳成龍은 말한다. 그는 가장 아끼던 장군 이순신李舜臣이 죽고 이듬해 고향 하회마을로 돌아와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그에 대비하자는 『징비록』을 써서 후세에 알렸다. 그는 말로만 하는 선비가 아니라, 직접 몸으로 실천하는 선비며 관료였다. 양반과 천민의 경계를 두지 않고 인재를 등용했으며,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며 임금에게 직언도 서슴지 않았던 충신이었다.

서애 류성룡柳成龍 선생과 그의 형님 겸암 류운룡柳雲龍 선생은 충신이자 선비의 표상이다. 그분들의 삶의 흔적과 이 동네의 지형지물이 절묘한 융합을 이루고 있다. 행사에서 영남문학 이사장이 지은 시조 두 편을 회원 두 명과 함께 윤송한 작품을 보면 마을의 운치가 그림처럼 보여지게 된다.

강물도 유유하게 허리를 굽혀 돌고
장엄한 부용대와 만송정이 장관일세
스스로
낮춘 마음이
만세에 빛나도다.

부귀와 명예보다 학문을 즐겨하며
외로운 목민관이요 사도의 표본이라
현판에
흐르는 글귀
심중에 새기노라.
- 장사현 시조 「겸암정사謙菴精舍를 바라보며」 전문

낙동강 굽이 도는 절경 위에 부용대
고아한 연꽃송이 청청한 만송정 숲
학문과
충절의 혼이
교교하게 흐른다.

흐르는 강물 위에 나룻배 띄워놓고
막걸이 한잔으로 풍류를 읊조리니
이곳이
선경仙境이로다
어진 선비 음덕일세.
- 장사현 시조 「부용대에서」 전문

하회선유줄불놀이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교차한다. 그동안 대인기피증으로 인해 사람이 많은 곳을 꺼려왔다. 혼자 있는 게 좋았고 공동체적인 삶을 멀리했다. 하지만 선유줄불놀이를 보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생각의 틀을 조금씩 바꿔보려 한다. 낯선 사람과도 함께 하는 놀이문화를 통해서 친숙해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소중한 체험이다. 고생스럽더라도 서로 협조하면서 정을 나누는 하회마을 사람들처럼, <영남문학의 밤>을 통해 협회의 한 사람으로서 긍지를 가져보는 밤이다. 이제 혼자 외로움을 견디기보다 거리낌 없이 밖으로 나가서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보리라.

행사 후 타목 김종흥 선생이 운영하는 목석원에서 뒤풀이를 하였다. 지례예술촌장으로 계시는 김원길 원로 시인을 비롯하여 안동에 사시는 이강순 아동문학가 등 영남문학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김원길 시인은 1970대 초에 미당 서정주 시인의 총애를 받아서 함께 맥주를 마시며, 시를 읊었다는 낭만적인 여담도 들으며 우리는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시월 초승달 아래 화려한 불꽃놀이 꽃무리가 점점이 가슴속에 스며들면서 또 하나의 전설이 될 운치 있는 가을밤을 수놓고 있다.

▲ 김미진 소설가는 …

▲ 김미진 소설가

- 경기도 양평 출생, 경주 거주. 소설가
- 동리목월문예창작대 수료, 영남대학교 문학예술과정 수료
- 계간 《영남문학》 2018년 소설 부문 신인상 등단
- 제6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소설부문 가작, 제2회 경상북도관광체험 문학공모전 수필부문 입선, 제6회 송암문학상 수상
-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이사, 동리목월기념사업회 회원, 동리목월총동문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