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 마중

                                   박 정 숙

집을 등에 지고 뻘밭을 기어가듯
상치 밭 더듬던 느림보 달팽이
눈 깜짝 할 사이 보이지 않는다

큰 오빠 달팽이관은 깜깜이 속
여든 해 긴 여행 중 메아리도
안개 낀 가을 아침 적막이다

이슬방울 소리 툭툭 고막을 두드리니
달팽이는 잠망경 두 개 다시 올렸고
오빠는 손으로 두 귀를 모았다

오래 기다린 이는
필시 소리 나는 쪽으로
잰걸음 서둘러 마중 갈 것이다

▲ 작가노트 

▲ 박정숙(朴靜淑) 시인

누가 달팽이를 느림보라 했나, 집 한 채 지고도 상치 밭에서 금방 보이지 않는다. 긴 나이 여행을 하면서 점점 귀도 어두워 진 아버지 같은 오빠는 청아한 이슬방울 소리를 듣고 나와서 세상을 살피는 움직임을 보았다. 두 눈 감추고 다시 초록이파리 뒤로 사라지는 달팽이, 마냥 느리기만 해 보이는 걸음이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삶의 연속이다.

그를 누군가가 불렀을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잰걸음 서둘러 마중을 떠난 그를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 저 세상에서도 그리워하는 소리를 들을 귀는 필요할 것이다. 달팽이야, 달팽이관을 열어두어라.

▲ 박정숙(朴靜淑) 시인은 ……

창원 출생으로 2019년 영남문학 겨울호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사)영남문학예술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계간문예작가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