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짝 홀짝

                                   조 승 래

햇살 좋은 담벼락 아래서 친구들과 구슬 가지고
홀짝 놀이를 했어요.
홀수냐 짝수냐 알아맞히는 놀이 모두 신중했어요.
작은 주먹 속의 수, 아무거나 말해도 맞거나 틀리거나
늘 답이 있었지요.
상으로 딴 딱지를 책갈피 속에 넣었어요

짝수 페이지와 홀수 페이지 사이에는 보관할 수 있고
홀수 페이지와 짝수 페이지 속에는
그 아무것도 보관할 수 없어요
성경 불경 도덕경 교과서도
11페이지와 12페이지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어요
10페이지와 11페이지는 서로 볼 수 있어요

책을 만드는 사람은 알고
책을 읽는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우려낸 녹차 한 잔
홀짝 홀짝 음미하는 날도 좋은날이네요

* 작가 노트

▲ 조승래 시인

음과 양, 하늘과 땅, 홀수와 짝수로 대분류 하고 0과 1의 2진법으로 세상은 돌아가지만 0과 1 사이에 실제로는 무수한 수치가 있다. 남을 이기려고하기 보다는 놀이 자체가 재미있어서 유년시절 담벼락 아래에서 친구들과 구슬치기도 하고 작은 주먹 속의 구슬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알아맞히기 하던 추억이 또렷하다.

시집도 짝수 페이지와 홀수 페이지가 있다. 홀수 페이지와 짝수 페이지에는 아무 것도 넣을 수 없지만 짝수 페이지와 홀수 페이지 사이에는 네 입 크로버와 추억의 편지도 넣을 수 있다. 짝수가 홀수를 바라보는 데에 더 여유가 있고 포용력이 있다고 굳이 설명을 미화해 보지만 책의 겉장이 1 페이지로 출발하는 관행일 뿐, 이 사실을 몰라도 홀짝 홀짝 차 한 잔 음미하면서 시만 쓸 수 있다면 행복한 나날일 것이다.

▲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 『내 생의 워낭소리』, 『타지 않는 점』, 『하오의 숲』,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임재도 시인과 공동시집 『공감 여행』 , 김일태 등 7인 공동 시집 『길 위의 길』 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계간문예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년)을 수상하였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포에지창원, 함안문인회 동인 및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한국시인협회와 文學의 집 서울 이사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