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불식不耕不食

                                   조 승 래

허리 동여매고 수없이 뽑아냈던
투명 실타래만이 삶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허공에 쳐 놓은 그물망에 이슬이 맺히어
겹겹이 목걸이가 된 것을 발견한 새벽

그 영롱한 아름다움으로
먹는 일 외에도 다른 기쁨이 있음을 통찰한

거미는 비로소
하루를 쉬기로 한다

* 작가 노트 

▲ 조승래 시인

그물망 던져 잡은 것으로 사는 어부나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일용작업자나 내 노동의 대가는 내 삶의 원천이다. 공짜를 바라지 않으며 무위도식을 하지 않고, ‘일일불경一日不耕 이면 일일불식 一日不食’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직접 일하지 않은 날은 그 하루를 금식하던 수행자의 삶을 떠 올리게 된다.

온 몸을 짜서 나온 실로 만든 그물을 쳐 놓고, 진동이 오면 그건 먹이일 것이므로 냉큼 달려가야 하는데 거미가 가서 보니 그물이 밤새 이슬에 젖어 먹이 포획은 이미 불가능하다.
이에 먹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거미의 눈앞에는 이슬방울들이 그물에 맺혀 몇 겹의 영롱한 진주 목걸이로 변해 있지 않은가, 굶는 슬픔으로 좌절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먹는 일 외에도 또 다른 기쁜 일들이 있다.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살펴보니 그 슬픔 속에도 기쁨이 남아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거미는 황홀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하루를 쉬기로 했다. 멈추어 뒤돌아보아야 할 때가 오면 좀 쉬어주는 것도 좋은 일, 앞만 보며 달려온 나를 때로는 토닥토닥 격려해 주고 싶을 때도 있다.

▲ 조승래(趙勝來) 시인은……

경남 함안 출생으로 2010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 『몽고조랑말』, 『내 생의 워낭소리』, 『타지 않는 점』, 『하오의 숲』, 『칭다오 잔교 위』, 『뼈가 눕다』, 『어느 봄바다 활동성 어류에 대한 보고서』, 임재도 시인과 공동시집 『공감 여행』 , 김일태 등 7인 공동 시집 『길 위의 길』 등을 펴냈다. 『칭다오 잔교 위』는 2015년 세종도서 문학 나눔에 선정되었고, 계간문예문학상(2020), 조지훈 문학상(2021년)을 수상하였다. 한국타이어 상무이사, 단국대학교 상경대학 겸임교수(경영학박사)를 했고, 가락문학회, 시와시학회, 포에지창원, 함안문인회 동인 및 계간문예작가회 부회장, 한국시인협회와 文學의 집 서울 이사로 활동 중이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