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숨결

                                    공 영 해

장대비 속으로
아우가 떠나간 뒤

젖은 아침 숲을
햇살이 찾아왔다

산 자의
길을 가꾸는
꽃숨결이 가쁘다
<꽃숨결> 전문. 2020년 ≪시와소금≫ 봄호.

* 작가 노트

▲ 공영해 시인

장대비가 내리던 날 벗이 떠나갔다. 그는 40년 동안 나와 산행을 일주일에 한 번씩 했고 뒤풀이로 소주를 즐겨 마시던 벗이었다. 나이로는 그가 내 아우와 동갑이지만 거리낄 것이 없었다. 나는 그의 형이었고 그는 내 아우였지만 죽이 맞는 친구였다. 갑자기 그가 떠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하였다. 아우는 정을 준 사람의 환유이다.

아우는 떠나갔지만 나(산 자)는 일상을 포기할 수 없다. 아우를 보낸 다음 날 아침, 나의 일과는 변함이 없다. 늘 하는 대로 가까운 산을 찾아 걷는다. 비 그친, 우거진 여름 숲을 찾아드는 햇살이 반갑다. 숲을 뚫고 사선으로 내리는 햇살과 숲이 내뿜는 젖은 안개를 마시며 맥문동 꽃이 한창 피고 있었다. 꽃은 며칠 전부터 피고 있었지만 오늘 따라 그 보라색 꽃숨결이 유달리 가슴에 와 닿는다. 역광을 배경으로 폰카에 꽃을 몇 장 담아본다.

그렇다. 산 자는 살아야 하고 죽은 아우에 대한 기억은 내 마음의 한 모서리에서 차차 잊히어질 것이다. 젖은 숲에 피어오르는 땅김이 군락을 이룬 맥문동 꽃무리들이 내뿜는 숨결로 와 닿는다. 산 자의 길은 숨 가빠야 한다.

말의 절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문학이 단시조이다. 군더더기가 있어서는 아니된다. 골짜기를 오르다가도 헉헉거리며 내 뒤를 따라올 것 같은 아우 생각이 나고 막걸리를 마시다가도 그에 대한 생각에 울컥 가슴이 미어질 때가 있다. ‘맥문동 꽃의 이미지’는 이렇게 <꽃숨결>을 낳는다.

▲ 공영해 시인은 ……

《시조문학》신인상 등단(1999). 〇 가락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경남시조문학상 수상 외. 〇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경남시조문학회 회원. 〇시조집 《낮은 기침》, 《천주산 내 사랑》,《아카시아 꽃숲에서》외, 선집《처용의 달 》. 삼형제 문집 《방앗간집 아이들》 Ⅰ, Ⅱ, Ⅲ집.

▲ 기사제공 //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