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한 때
                                   공 영 해 

꽃 활짝 만 평 밭을 적화摘花하는* 아들 두고
모꼬지 사흘걸이 꽃 시각을 재촉하며
산비알 오르내리며 용을 쓰는 화산댁

아들아, 속지 마라 꽃 만발은 속임수다
한 가쟁이* 여남은 개 실한 것만 꽃값 한다
수밀도 굵은 단물이 자네 손에 달렸구마

벌 지난 꽃이라도 꽃값 못할 꽃이라면
모질게 두 말 없이 거름으로 쓸 수밖에
밭 만 평 때 아닌 사정司正 피가 듣는 꽃 한 때
≪한국동서문학≫ 2021년 여름호 발표

* 적화摘花하다 : 꽃이나 과실의 품질을 좋게 하기 위하여 적당한 수의 꽃을 남기고 다른 것을 솎아 내다.
* 가쟁이 : ‘가지’의 경상도 방언.
* 편집자 주 ; 1연 2행의 “사흘걸이”는 “사흘거리”의 오기가 아니다. 시인은 이 시의 ‘동적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흘걸이”로 표기하였다.

* 작가 노트

▲ 공영해 시인

복숭아꽃이 절정이다. 만 평 도화원桃花園이 분홍 이불을 펼쳐 놓은 듯하다. 벌들에게는 바쁜 즐거운 모꼬지이다. 그러나 이 모꼬지도 길어야 “사흘걸이”, 시각이 촉박한 노동의 현장이다. 벌보다 사람이 더 바쁘다. 피는 꽃을 그냥 두어도 되겠으나 과일 농사를 짓는 성실한 농사꾼은 양질의 과일을 생산하려면 적뢰摘蕾, 적화摘花, 적과摘果 작업을 실기치 않아야 한다.

농촌의 인구 감소로 인한 노동력 부족 현상을 화산댁과 아들을 내세워 독자들의 몫으로 서사의 빌미를 남겨 놓는다. 노모를 모시고 사는 50대 노총각의 바쁜 일손이 행간에 스미어 있어야 할 텐데.

꽃이 다 지기 전, 사흘 동안 적화를 끝내자고 방방 뛰는 화산댁의 말은 너무 당연하다. 그냥 던져 놓는 말에서 작업의 필요성과 체험에서 얻은 생의 철학 및 사명감이 보인다. “꽃값”은 “수밀도 굵은 단물”이다. “수밀도”는 노동의 결과물이며 소비자에 대한 약속이다. “활짝 핀 만 평 밭”이 복숭아밭임에랴.

셋째 수는 꽃따기 작업이 단순 작업이 아님을 화산댁의 말을 슬쩍 비틀어 던져 놓는다. “벌”을 ‘벌罰’로, “꽃값”을 ‘사람 값’으로 읽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종장에서 독자들 스스로 ‘꽃 한 때’에 담긴 보편적 농법과 인간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면 그만이다.

스스로 피고 지는 꽃이라지만 의미 없는 꽃은 없다. 적화한다 하여 남은 꽃들이 다 단물이 많고 굵은 ‘수밀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몇 번의 적과를 거쳐 ‘수밀도’는 익게 된다. 우리는 오늘도 도원桃園을 오르내리는 화산댁의 마음을 외면해서는 아니 된다.

▲ 공영해 시인은 ……

《시조문학》신인상 등단(1999). 〇 가락문학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경남시조문학상 수상 외. 〇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경남시조문학회 회원. 〇시조집 《낮은 기침》, 《천주산 내 사랑》,《아카시아 꽃숲에서》외, 선집《처용의 달 》. 삼형제 문집 《방앗간집 아이들》 Ⅰ, Ⅱ, Ⅲ집.

▲ 기사제공 // 임재도 부울경뉴스 총괄본부장, 소설가,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