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 새벽 두 시, 나는 아직도 불이 꺼지지 않은 둘째아이의 방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첫째는 이제 고등학교 1학년, 둘째는 중학교 2학년인데, 둘 다 사내아이다. 둘째는 제 형과 마찬가지로 공부를 썩 잘하지는 못해도 그나마 영 뒤떨어지지는 않는 고만고만한 개구쟁이다. 방안에서 뭔가 사태를 수습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문 밖까지 들렸다. 아이는 분명 이 늦은 시간까지도 컴퓨터게임에 빠져 있었을 것이다. 노크소리를 들은 아이는 급하게 컴퓨터 전원을 껐을 것이고, 공부하고 있었다는 표시를 내기 위해 황급히 책을 펼쳤을 것이다. 제 딴에는 사태를 수습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방문 앞에서 가만히 기다렸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의외로 문을 연 아이는 첫째였다.
― 함께 있었어?
― 예, 수학 가르쳐 주고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는 제 형 뒤에 선 둘째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빙글빙글, 배시시 웃고 있었다. 거짓말을 할 때 보이는 버릇이었다. 책상 위에 노트와 수학 책이 펼쳐져 있고, 컴퓨터 모니터는 꺼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둘째의 표정으로 금방 알 수 있었다.
― 그래……. 이제 그만 자거라. 일찍 일어나야지.
나는 모른 체 하며 아이들의 어깨를 차례로 다독여주고 문을 나서려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아이의 책상 오른쪽 구석 모서리에 놓여있는 둥근 투명플라스틱 용기에 눈이 갔던 것이다. 커다란 페트 물병의 중간 허리를 잘라 아래쪽 몸체에 뚜껑을 씌운 것처럼 생겼는데, 그 용기 안에는 젖은 나무톱밥처럼 보이는 갈색 물질이 채워져 있었다.
― 저건 뭐니?
― 아, 이거요. 장수풍뎅이 애벌레요. 저 안에서 애벌레가 자라 장수풍뎅이가 되요.
둘째 아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 장수풍뎅이 애벌레? 어디에서 났는데?
― 학교 앞 문방구점에서 팔아요.
― 그래? 그것 참…… . 그걸 어디에 쓰려고?
― 요즘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달팽이를 키우는 아이들이 많아요. 애완동물로요.
첫째가 말했다.
― 애완동물? 강아지나 고양이처럼? 그럼 애완충이구나.
― 예, 장수풍뎅이 큰 것은 한 마리에 삼만 원 하는 것도 있어요.
둘째가 말했다.
― 뭐? 그럼 저 애벌레는?
― 오천 원요.
애벌레라면 분명 알을 부화시킨 것일 텐데, 달걀을 부화시켜 병아리를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장수풍뎅이 알을 인공적으로 부화시켜 애벌레를 생산한다니. 더구나 그런 작은 애벌레 한 마리 값이 오천 원이나 한다니. 마당이나 뒤뜰에서 암탉과 병아리들이 작은 애벌레나 모이를 쪼아 먹는 모습은 어릴 적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그런 애벌레를 그 애벌레를 잡아먹는 닭보다 더 비싼 값으로 팔고 있다는 사실이 실제 장수풍뎅이를 보는 것 보다 더 놀랍고 신기했다.
내가 어릴 적에는 웬만한 시골에는 장수풍뎅이나 말똥구리, 참나무 집게벌레라고 불렀던 왕사슴벌레 등 지금은 구경하기 힘든 곤충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수시로 고향을 다녀오곤 했지만, 최근에 그런 곤충들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흔하던 곤충들이 이제는 희귀해지다보니 누군가가 애완용으로 판매할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아마 시골에서 자란 4, 50대 정도의 어른이라면 어릴 적 소 먹이러 가서 이런 곤충들을 잡아 경주를 시키거나 싸움을 시키곤 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장수풍뎅이나 왕사슴벌레는 주로 참나무 밑에서 서식하고 있었고, 말똥구리는 쇠똥 아래에 구멍을 파고 서식하고 있었다. 쇠똥무더기 가장자리에 말똥구리가 땅속으로 들어가면서 배출한 보드라운 흙더미가 쌓여 있고, 이 흙을 걷어내면 작은 구멍이 나타난다. 우리 시골 개구쟁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추를 꺼내어 이 구멍을 조준하여 사정없이 오줌을 갈겼다. 불시에 오줌 홍수를 만난 말똥구리가 뒤뚱거리며 구멍 밖으로 나오고, 우리는 이놈들을 잡아 서로 경주를 시키거나 싸움을 시켰던 것이다.
싸움은 씨름을 하는 것처럼 한 놈이 다른 한 놈을 먼저 뒤집어엎는 쪽이 이기는 놀이였다. 말똥구리 싸움은 뿔 달린 수놈이 그 어엿한 풍채에도 불구하고 뿔 없는 암놈에게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암놈은 뿔이 없는 납작한 주걱턱을 수놈의 배 아래로 집어넣어 제보다 덩치가 더 큰 수놈을 여지없이 뒤집어 버리곤 했다.
이런 싸움은 간혹 장수풍뎅이나 참나무 집게벌레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장수풍뎅이 싸움을 시킬 때는 날아가 버리지 않게 다리에 실을 묶어 싸움을 시켰다. ‘장수’라는 이름처럼, 곤충 중에서도 제일 힘이 센 장수풍뎅이 싸움은 어린 동네 아이들에게는 사뭇 스릴을 느끼는 흥미진진한 유희였다.
이런 유년의 추억이 있는 나는 아이가 사다 놓은 그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무척 궁금했다. 그렇게 흔하던 곤충이었지만, 그것들을 잡아 집에서 키울 생각은 못했고, 더구나 돈을 주고 사고판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투명플라스틱 사육통 안에는 젖은 톱밥만 보이고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애벌레는 톱밥 속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 어디 한 번 보자.
나는 참지 못하고 사육통의 뚜껑을 열려고 했다.
― 아, 안 돼요. 아빠!
둘째가 기겁을 하며 나를 말렸다.
― 왜?
― 지금 아마 번데기 방을 만들었을 걸요. 번데기 방을 헤집어 버리면 죽고 말아요. 가만히 두었다가 장수풍뎅이가 기어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 그래……?
결국 나는 그 애벌레를 보지 못한 채 아이의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자연환경이 좋은 숲이나 들에서 자랄 애벌레가 그 좁은 플라스틱 사육통 안에서 과연 살아남을까? 나는 자리에 누워서도 그 애벌레가 궁금하고 걱정되었다.
그 다음날부터 나는 시간 틈틈이 사육통을 들여다보았다.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톱밥을 헤집어 볼 수도 없었다. 아이는 습도가 유지되어야 한다면서 스프레이로 조심스럽게 물을 분사해 줄 뿐 애벌레가 숨어 있는 톱밥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게 했다.
― 이상하다. 일주일만 지나면 풍뎅이가 나올 거라 했는데……?
팔일 째가 되는 날, 아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렇다고 톱밥을 헤집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수도 없었다. 살아있는데, 괜히 건드렸다가 진짜 죽게 만들어 버릴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일요일, 나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그날 오후, 아이가 학원에 간 사이에 사육통의 뚜껑을 열고 송곳으로 톱밥을 헤집어 보았던 것이다. 애벌레는 아이의 말처럼 번데기 방을 만들어 놓고 그 속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송곳 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아도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조금 더 세게 애벌레의 몸통을 찔러보았다. 그런데, 아뿔싸! 송곳에 찔린 애벌레의 몸통에서 눈물 같은 액체가 삐죽 솟아나왔다. 제발 아무 탈이 없어야 할 텐데. 나는 표시나지 않게 톱밥을 다시 덮어둘 수밖에 없었다.
혹시 이 때문에 애벌레가 죽을지도 모른다. 아이가 알게 된다면? 실망한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어떡해야하나. 생각 끝에, 나는 그날 오후 늦게 둘째가 다니는 학교 앞 문방구점으로 갔다. 같은 애벌레 사육통을 사서 아이 모르게 바꿔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곳에 그런 물건은 없었다. 모두 반품해버렸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 빌딩 숲에서 장수풍뎅이 애벌레를 찾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런 일이 있은 그날 저녁, 나는 그 장수풍뎅이를 만났다.
팔월 초 휴가철이고, 일요일이라 대부분 피서를 떠난 아파트 단지 내는 한산했다.
― 저 위 계곡 가든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을까?
저녁 무렵이 되어, 나는 아내에게 넌지시 물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외곽 순환도로 위쪽 계곡 숲에는 가든식당이 많았다.
― 아이들은요?
방학이지만 벌써부터 수능을 준비하느라 학교에 간 첫째는 물론 학원에 간 둘째도 집에 오지 않고 있었다.
― 나중에 갔다 와서 챙겨주지 뭐.
무덤덤한 척 말했지만, 우리끼리만 가자고 한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비록 실수였지만, 낮에 있었던 일은 여전이 맘에 걸려 있었다. 혹시 식당이 있는 숲에 가면 장수풍뎅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 하나라도 눈에 띄면 아이 몰래 그놈을 잡아 사육통에 넣어두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더구나 큰 놈 한 마리 값이 삼 만 원이나 한다니, 그런 놈을 잡아 준다면 아이가 얼마나 좋아할까.
나는 아내를 차에 태우고 계곡 중간쯤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이전에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 식당 전용주차장이 있었지만, 계곡에 놀러온 피서객들의 차로 주차장은 꽉 차 있었다. 나는 도로 갓길에 차를 세워두고, 아내와 함께 식당으로 걸어 올라갔다. 어릴 적 경험에 의하면 장수풍뎅이나 왕사슴벌레는 참나무가 있는 곳에서 많이 볼 수 있었다. 나는 식당으로 향하는 자연석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근처에 참나무가 있는가하고 연신 두리번거렸다. 그런 나를 보고 아내가 말했다.
― 왜 그렇게 두리번거려요?
― 으응? 혹시 이 근처에 참나무가 있나 해서.
― 참나무는 왜요?
― 사실은 말이야.
―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그때서야 나는 아내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 애벌레가 죽을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혹시 이곳에 장수풍뎅이가 있나 보려고.
― 어쩜, 그럴 수가……? 단둘이 저녁 먹자고 한 것은 괜한 말이었네요.
아내가 싫지 않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거렸다. 식당에는 손님이 많았다. 음식이 나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우리는 근처 숲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참나무 몇 그루를 발견하고 그 아래를 살펴보았지만, 장수풍뎅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 이런 곳에 뭐가 있겠어요. 그만하고 가요.
실제 장수풍뎅이를 본 적도 없다는 아내가 말했다. 아내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이 넓은 숲속에서 작은 장수풍뎅이를 찾겠다는 생각 자체가 애초부터 틀린 것인지도 몰랐다.
우리가 식사를 마쳤을 때는 어두워져 있었다. 다시 갓길로 내려와 차에 오른 나는 시동을 걸고 헤드라이트를 켰다. 그때였다. 전조등 불빛에 드러난 바로 눈 앞 아스팔트 도로 위에 뭔가 꿈틀꿈틀,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는 작은 물체가 보였다. 그 물체는 왕복 2차선 도로를 반대편에서 횡단하여 내 차가 서 있는 갓길로 막 접어들고 있었다. 혹시? 나는 차에서 내려 그 물체 앞으로 갔다. 그놈, 그 장수풍뎅이였다. 앞머리에서 우뚝 솟아 두 가지로 갈라지고, 그 끝에서 다시 두 가지로 갈라진 대형 뿔돌기, 이마처럼 생긴 반듯한 등판 중앙에도 앞쪽으로 구부러진 작은 뿔돌기가 우람하게 솟아나 있었다. 수컷이었다. 내가 어릴 적 보았던 것보다 결코 뒤지지 않을 위엄과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하하, 이놈 봐라. 오매불망,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나타나다니! 아이들도 이렇게 큰 장수풍뎅이 실물을 보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런 놈을 본다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까. 나는 놈이 너무도 신기했다. 아내도 덩달아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 도망갈지 모르니 집에 갈 동안 잡고 있어.
나는 아내에게 놈을 내밀었다.
― 안 돼요.
부산 시내에서만 자라 실물 장수풍뎅이를 처음 보는 아내가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 괜찮아. 물지 않아. 이렇게 잡고 있으면 돼.
나는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잡은 놈의 등판을 아내에게 내보이며 말했다.
― 꺅! 안 돼요. 무서워요.
아내는 처음 보는 놈의 위세에 눌려 비명부터 질렀다. 나는 할 수 없이 트렁크에서 검은 비닐봉지를 꺼내어 그놈을 넣고 끝을 묶어 뒷좌석 바닥에 두었다. 비닐봉지를 완전히 밀봉해 버리면 혹시 놈이 숨을 쉬지 못할 것 같아 끝을 약간 개봉해 두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아이 몰래 놈을 사육통에 넣을 작전계획까지 짰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가 둘째를 거실로 불러내면, 그 사이에 내가 아이의 방에 슬쩍 들어가 놈을 넣어 둔다는 계획이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나는 뒷문을 열고 놈이 든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런데? 어라! 뭔가 허전했다. 분명 비닐봉지에 들어있어야 할 놈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질식하지 않도록 열어둔 비닐봉지 구멍으로 기어 나온 놈이 좌석 밑 어디엔가 숨어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트렁크에서 비상용 손전등을 꺼내어 좌석 밑 곳곳을 비춰보며 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더 참지 못하고 먼저 집으로 올라갔다. 어디에 숨어버린 것일까. 무려 이십분 동안이나 차 안 구석구석을 찾아보았으나 놈의 행방은 묘연했다. 분명 차안에 있을 테니, 언젠가는 제 발로 기어 나오겠지. 나는 포기하고 집으로 올라갔다. 학원에서 돌아온 둘째의 밥을 챙겨주고 있던 아내가 가만히 눈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고개를 돌렸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일어나자마자 주차장으로 갔다. 출근 전 이십분 동안 다시 샅샅이 수색했으나 놈은 보이지 않았다. 시간만 허비한 나는 급하게 회사로 차를 몰았다. 한창 차량 행렬이 밀려드는 출근길, 시내 왕복 8차선 대로상이었다. 문득 조수석 바닥을 보니, 언제 나타났는지 놈이 그곳에서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놈을 잡기 위해 팔을 뻗어 보았으나 닿지 않았다. 위험하기도 했다. 차량이 홍수를 이룬 출근길에서 무턱대고 차를 세울 수도 없었다. 제발 어디 숨지 말고 그 자리에 있어라.
드디어 회사 주차장, 그때까지도 놈은 그곳에 있었다. 안전띠를 풀고 재빨리 손을 뻗었다. 순간, 놈이 내 손보다 먼저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분명 의자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사무실로 올라갔다. 점심시간, 식사도 거른 채 곧바로 주차장으로 갔다. 팔월, 시멘트 바닥 복사열을 받은 주차장은 찌는 듯 했다. 놈은 보이지 않았다. 이십분 후, 땀에 흥건히 젖은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퇴근 시간, 차문을 열자마자 먼저 놈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퇴근길, 8차선 대로를 운행하고 있는데, 놈이 조수석 바닥에 다시 나타났다. 찌는 팔월 폭염, 물 한 방울 마시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차 안에 갇혀 있었던 놈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치 씩씩하게 보였다. 아침처럼, 차량이 홍수를 이루는 러시아워 시간에 도로 한복판에서 차를 세울 수는 없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다시 놈은 보이지 않았다. 숨바꼭질도 이런 숨바꼭질이 어디 있을까. 결국 놈을 찾아내지 못하고 힘없이 현관문을 들어서자, 내 심정은 아랑곳없이 둘째가 인사를 하고는 말했다.
― 아빠, 정말 애벌레가 죽어버린 것 같아. 장수풍뎅이가 나오지 않아.
― 아냐, 아빠가 알아보니 애벌레에서 풍뎅이가 되기까지는 이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 며칠 더 기다려보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일은 반드시 놈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보다도 내일도 찾아내지 못하면 놈은 차 안에서 질식하거나 물을 마시지 못해 죽고 말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보다도 놈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무거워졌다. 나는 고민 끝에 작은 일회용 플라스틱 접시 하나와 냉장고에 넣어둔 푸성귀 몇 잎을 가지고 다시 아파트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차 조수석 바닥에 접시를 놓고 차에 있는 먹다 남은 생수병 물을 접시에 조금 부었다. 푸성귀에도 물을 뿌려 적시고 접시 옆에 놓아두었다. 놈도 먹고 살아야 할 것이었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다시 주차장으로 갔다. 푸성귀를 뜯어먹은 흔적이라도 있을까하고 먼저 살펴보았으나 아무 표시도 없었다. 또다시 수색 또 수색, 그러나 놈은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밤새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데 아내가 말했다.
― 여보, 조금 전에 전화가 왔는데, 부산 엄마가 편찮으신가 봐요. 오늘은 버스로 출근하세요.
우리가 사는 김해에서 장모님이 계시는 부산에 다녀와야겠으니, 승용차는 자기가 써야겠다는 말이었다.
― 장수풍뎅이가 차에 있으니 차문을 열어 놓으면 안 돼.
놈이 차 안에서 질식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차안에서 탈출하더라도 차들이 쌩쌩 달리는 부산 시내에서는 결국에는 비명횡사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나는 아내에게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점심시간이 되어갈 무렵,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 여보, 풍뎅이가 나타났어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발밑으로 기어 나와 까닥 잘못했으면 큰 사고 날 뻔 했다고요. 너무 놀라 지금도 가슴이 쿵쿵거려요.
― 그래? 잡았어?
― 잡긴요. 무서워서 손도 못 대겠던데. 지금은 또 숨어 버리고 보이지 않아요.
― 뭐라고? 에이, 그놈 참……, 장모님은 어때?
― 오늘 병원에서 검사받기로 했어요. 저녁에 집에 갔다가 내일 결과를 보러 다시 와야 할 것 같아요.
― 내가 데리러 갈까?
― 이제 괜찮아요. 혼자 갈게요.
― 그래, 풍뎅이는 신경 쓰지 마. 다시 나타나더라고 당황하지 말고 운전만 조심해.
퇴근하니, 아내는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다. 둘째가 제 방에서 나와 말했다.
― 아빠, 아무래도 애벌레가 이상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결국 죽고 말았구나,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 원인이 나 때문이라면……? 아이가 알기라도 하면……?
― 아직 열흘 밖에 지나지 않았어. 좀 더 기다려보자. 아직 풍뎅이가 되지 않았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분명 아내는 놈이 차안에 있었다고 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주차장으로 갔다. 수색 또 수색, 그러나 놈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놈이 마시도록 접시에 물을 새로 갈아주고 싱싱한 푸성귀상도 다시 차려주었다.
다음 날 아침, 출근 전, 나는 다시 놈의 수색작업을 시작했다. 또다시 허탕, 이제는 은근히 화가 나기 시작했다. 출근 시간도 늦어 있었다.
― 오전 근무만 하고 오면 안 돼요? 같이 검사 결과를 보러 가게요.
화난 얼굴로 아침을 먹는 나에게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 그래, 잠깐 회사에 나갔다가 일찍 들어올게.
그저께처럼 출근하는 차 안에서 놈은 나타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임박하여 조퇴를 하고 돌아가는 차 속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니, 아이는 학원에 가고 없었다. 애벌레가 진짜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아이가 없는 틈을 타 확인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육통을 열고 지난번처럼 송곳으로 톱밥을 살금살금 헤집어 가기 시작했다. 설마 죽기야 했을라고? 가슴을 졸였지만, 내 기대는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번데기 방 속에 누운 애벌레는 이미 죽어 흐물흐물해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부패되면서 흘러내린 누런 액체가 번데기 방을 적시고 있었다.
― 엄마! 악!
부산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막 속도를 올리는 순간, 옆에 앉은 아내가 갑자기 놀라 소리쳤다. 놈이었다. 조수석에 앉은 아내의 발밑에 놈이 나타난 것이었다.
― 잡아!
내가 소리 질렀다.
― 어떻게 잡아요. 무서워요.
아내가 구두를 신은 채로 시트 위로 발을 올려 피하며 말했다.
― 괜찮아. 등을 잡으면 돼.
― 무서워요. 못하겠어요.
― 괜찮다니까. 그냥 잡아.
― 저걸 어떻게 잡아요. 물면 어떡해요.
― 하, 이런, 내 참! 그냥 잡으면 된다니까. 물지 않아.
나는 몇 번이나 소리를 질렀다. 그래도 아내는 바로 발밑에 있는 놈을 잡지 못했다. 여기에서 놓쳐버리면 영영 놈을 찾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를 세운 후 안전띠를 풀고 놈에게 팔을 내밀었다. 그러나 놈이 나보다 더 빨랐다. 놈은 다시 의자 밑으로 쏙 들어가고 말았다. 마치 “용용 죽겠지”하며 약 올리기라도 하듯이.
― 그걸 하나 못 잡고 있어.
내가 아내에게 화를 냈다.
― 놓친 사람이 누군데, 누구에게 화를 내요.
아내가 눈을 흘기면서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그 일로 말미암아 부산에 도착하기까지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행히 장모님의 건강은 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 집까지 장모님을 태워다주는 부산시내 도로였다.
― 아이고 무시라! 이기 뭣고?
갑자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장모님이 기겁을 하며 소리쳤다. 놈이 뒷좌석에 앉은 장모님의 발아래에 나타난 것이었다.
― 엄마, 장수풍뎅이래요. 잡아요.
옆에 앉은 아내가 뒤로 돌린 고개를 쭉 빼고 바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 아이고, 무시라. 야, 이 눔아, 어디로 와. 저리 가. 저리 가.
아내가 앉은 조수석 뒷좌석에 앉아있던 장모님은 오히려 겁을 먹고 발을 모두 시트 위로 올리고 내가 앉은 운전석 뒷좌석으로 움칠움칠 피하며 손사래를 쳤다. 나는 비상등을 켜고 차들로 홍수를 이룬 시내 도로 갓길에 주차한 후 서둘러 차에서 내려 뒷좌석의 문을 열었다. 그러나 이미 늦은 뒤였다. 놈은 다시 좌석 아래로 쏙 기어들어가 버렸던 것이다. 주정차 금지구역에 멈춰 선 내 차를 보고 택시며 다른 차들이 빵빵거리며 투덜댔다.
그런 소동을 겪은 뒤 장모님을 모셔다드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부산 시내를 벗어날 즈음,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면서 날씨가 후텁지근해 졌다. 잠깐 차창을 열어 놓더라도 그동안에 설마 놈이 탈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 환기를 시키기 위해 나는 잠시 차창을 내렸다가 다시 올렸다. 너무 오래 열어두면 그 사이에 놈이 창밖으로 탈출해 버릴지도 몰랐다. 행여 도로 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쌩쌩 달리는 그 많은 차바퀴를 비켜나지는 못할 것이었다. 갈 때와는 달리 놈은 고속도로에서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시 놈의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애벌레가 죽은 사실을 안 이상 이제는 기필코 놈을 생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애벌레가 죽었다는 말을 들은 아내도 나를 도왔다. 아내와 둘이서 의자 밑 구석구석을 세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놈은 보이지 않았다. 또다시 허탕을 친 나는 힘이 빠져 차문을 닫고 돌아섰다.
― 여기 있어요. 여기요.
나는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아내가 오른쪽 뒷좌석 차체 지붕 아래 유리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놈은 그 유리창에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밖으로 나온 놈이 날아가 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나는 급히 다가가 놈의 등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삼일 동안이나 차 안에 갇혀 있었기 때문에 이미 탈진이라도 했을 놈이 이렇게 완강할 줄이야. 힘이 장사라서 장수풍뎅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놈은 억세게 생긴 여섯 개의 다리를 그 매끄러운 유리창에 바짝 붙이고 있었다. 필사적이었다. 잘 떨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힘을 주어 떼어내려고 하다가는 자칫 다리가 떨어져 버릴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잠시 생각한 나는 아내에게 지갑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도록 했다. 조심스럽게 유리창과 놈의 발 틈으로 명함을 살살 밀어 넣어 떼어낸 발이 다시 유리창에 달라붙지 못하게 했다. 다섯 개의 다리를 그렇게 유리창에서 분리시켰다. 이제 오른쪽 앞다리 하나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유독 그 다리만은 명함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왜 이렇지? 유심히 살펴보니, 그 다리는 떼어낸 다른 다리들처럼 그냥 유리창에 붙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닫혀있는 유리창과 고무 창틀 사이에 꽉 끼어 있었다.
나는 고속도로로 접어들면서 잠깐 창문을 내렸던 것을 떠올렸다. 아마 창문이 내려진 그 틈을 이용하여 놈은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막 창문을 넘기 직전, 내가 다시 창문을 올리는 바람에 놈의 앞다리 하나가 유리창과 고무 창틀 사이에 끼어버린 모양이었다. 다리가 이미 부러져버렸을 수도 있었다. 아내가 차의 시동을 걸고 창문을 내렸다. 그러나 그 다리는 창틀 고무 사이에 꽉 끼어 빠지지 않았다. 무작정 꺼내다가는 필시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말 것 같았다.
운전석에 앉아있는 아내에게 머리에 꽂고 있는 머리핀을 달라고 했다. 나는 그것을 고무 창틀 사이에 넣어 조심스럽게 다리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아뿔싸! 결국 머리핀을 잘못 놀려 앞 쪽 마디 하나가 뚝 떨어져 나가버린 것이다. 나는 그런 놈을 집어 들고 망연자실 서 있었다. 그때 아내가 운전석에서 고개를 내밀고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했다.
― 너무 불쌍해요. 이제 그만 살려줘요.
그랬다. 놈은 이유도 모른 채 나에게 붙들려 팔월 폭염이 찌는 차 속에 삼일 동안이나 감금당해 있었다. 앞다리 하나가 창틈에 끼여 매달린 채 차량이 질주하는 고속도로에 떨어져 죽을 고비를 무수하게 넘겼다. 그러고도 모자라 종내에는 앞다리 마디 하나까지 절단되어 버린 것이다.
시멘트로 둘러싸인 아파트 단지 내에 풀어주었다가는 환경이 맞지 않아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 아내가 운전을 하고, 나는 조수석에 앉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놈의 등판을 좌우에서 반듯하게 잡고 있었다. 또다시 비닐봉지에 넣는다거나 하는 허술한 방법으로 가두었다가 다시 놈이 도망가 버리면 속수무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우리는 놈을 살려주기 위해서 처음 놈을 잡았던 그 가든 식당으로 갔다.
그곳 숲속 어디에 놈의 서식처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마 참나무가 있는 곳이 놈이 살던 곳일 것이다. 나는 지난 번 숲속에서 보았던 참나무 아래 둥치에 놈을 살며시 내려놓았다. 놈은 잘려져 버린 앞다리로 힘겹게 뒤뚱거리며 풀숲으로 사라졌다. 과연 살아갔을까.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누워서도 여전히 걱정되었다. 얼핏 잠이 든 꿈속, 풀숲에 죽어 쓰러져 있는 놈의 몸에 개미떼가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었다.
다음 날, 다른 날보다 일찍 퇴근을 한 나는 우기다시피 아내를 종용하여 다시 그 식당으로 갔다. 제발, 어젯밤 꿈에서 본 그 광경은 펼쳐져 있지 않아야 할 텐데. 나는 어제 놈을 놓아 준 참나무 아래 풀숲을 샅샅이 뒤져 보았다. 다행이 놈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면 놈은 제 살 곳을 찾아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살아갔구나. 겨우 안심이 된 나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차를 세워 둔 갓길로 내려왔다.
아직 어두워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는 갓길에 세워 둔 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 내 차 앞 도로 중앙선 쯤 아스팔트 위에서 뭔가 작은 물체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물체는 놈이 건너오던 것처럼 도로를 횡단하여 우리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오고 있었다. 나는 그 물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장수풍뎅이였다. 혹시 어제 살려준 그놈이 아닐까. 나는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펴보았다. 아니었다. 앞 다리가 온전했다. 그놈보다는 덩치도 작고 뿔돌기도 없는 암컷이었다.
사실, 어제 그놈의 입장에서 나를 생각한다면, 나란 존재는 정말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릴 철천지원수가 따로 없을 것이다. 그놈에게 있어 나는, 아무 죄 없는 제 놈을 납치하여 폭염이 푹푹 찌는 차속에 삼일 동안이나 감금한 유괴범이었다. 떨어져 죽던 말든 제 놈을 유리창 틈에 끼워 매달고 고속도로를 질주한 살인미수 폭주족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종내에는 제 놈의 앞다리 마디 하나를 속절없이 잘라버린 흉악범이 아닌가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놈의 입장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순전히 내 편한 데로 지레 짐작을 했다.
― 봐, 장수풍뎅이야. 암놈이야.
나는 뒤따라오고 있는 아내에게 그 암컷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내가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 어제 그놈이 자기를 살려주었다고 고맙다고 제 짝을 보낸 것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 풍뎅이를 잡기 위해 도로 중앙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내디뎠다.
― 조심해요. 악!
내 비명보다 아내의 비명소리가 먼저 터져 나왔다. 검은 물체 하나가 굉음을 내며 눈앞을 스쳐지나가며 내 오른 발등에서 우지끈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아 방금 눈앞을 스쳐간 물체를 바라보았다. 검정풍뎅이였다. 풍뎅이처럼 생긴 검정색 폭스바겐 승용차 하나가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며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풍뎅이 승용차의 바퀴 하나가 성큼 앞으로 내딛은 내 오른 발등을 휑하니 밟고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
너무 고통스러워 눈물이 났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도로를 건너오고 있는 그 풍뎅이를 바라보았다.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마치 “거 봐, 너도 한번 당해 봐.” 하면서, 드디어 제 짝의 다리를 잘라버린 내게 통쾌한 복수를 했다는 듯이 휘휘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아내가 사색이 된 얼굴로 뛰어와 발을 거머잡고 있는 나를 부축하여 차에 태웠다.
― 아아아! 안 돼, 풍뎅이! 저 풍뎅이!
나는 한편으로는 비명을 지르고, 한편으로는 아내가 모는 차가 도로 위 그 풍뎅이를 치어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소리를 질렀다.
― 지금 그깟 풍뎅이가 문제에요? 당신 발이 문제지. 계속 우기면서 여기 오자고 할 때부터 이상했다니까.
아내가 앙칼지게 쏘아 붙이며 차를 몰아 나갔다.
다음날 저녁, 발등 뼈가 다섯 조각으로 분쇄 골절되어 버린 나는 네 시간에 걸친 뼈 접합 수술을 받고 깁스를 한 채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내가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에 아이 둘이 함께 병실로 들어섰다. 병원에 있는 동안, 아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물론 내가 애벌레를 죽였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장수풍뎅이를 잡으려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고는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 보기가 민망했다.
― 아빠, 괜찮아요?
둘째가 말했다.
― 그래, 한 달 반만 지나면 낫는다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방학인데, 아빠가 다쳐 바닷가에도 못 가게 돼버렸어. 미안하다.
― 괜찮아요. 대신 공부 많이 하게 되어 더 좋지요 뭐.
첫째가 밝은 얼굴로 씩씩하게 말하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그때 아내가 들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 저녁 먹지 않았지? 아빤 괜찮으니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그래, 아빠 걱정은 말고 엄마한테 맛있는 거 사 달라 해.
내가 말했다. 그때 둘째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 참, 아빠. 장수풍뎅이 애벌레 말이에요.
결국 아이가 알게 되고 말았구나. 가슴 한 쪽이 찡해 왔다.
― 으응? 그 애벌레……?
나는 겸연쩍은 나머지 말끝을 얼버무렸다.
― 장수풍뎅이가 됐어요. 오늘 아침 보니 장수풍뎅이가 되어 기어 나왔어요.
그렇게 말하는 아이의 등 뒤에 선 아내가 한쪽 눈을 찡긋했다.
― 그래? 그것 참 잘 되었구나.
― 근데요. 제가 살려줬어요. 작은 통 속에 갇혀 살아야 할 걔가 너무 불쌍하게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방생해 줬어요. 아파트 근처에서는 못 살 것 같아서 엄마와 함께 숲속 가든 식당까지 가서 놓아줬어요. 아까 낮에요.
― 그래, 그것 참 잘했다.
내가 맞장구를 치자, 둘째가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빙글빙글, 배시시 웃었다.
― 그렇죠? 아빠, 제가 잘 살려줬죠?
― 그럼, 장수풍뎅이는 원래 제가 태어난 숲에서 살아야지.
능청스런 아이의 거짓말에 가슴 한 구석이 아릿하게 저려왔다.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병실을 나갔다. 아이들의 얼굴과 “거 봐, 너도 한 번 당해 봐.” 하면서 휘휘 콧노래를 부르던 장수풍뎅이의 모습이 겹쳐 눈앞에 어른거렸다.
* 임재도 작가는……
▲ 임재도 작가
경남 창녕 길곡 출생
작품 // 장편추리소설
『퍼펙트크라임 - 빛은 저울로 달 수 없다』(전3권 ; 2007년)
『피터팬, 법정에 서다』(2014년)
『코리아타워』(상/하 ; 2015년)
『살인 교향곡』(2018년 10월 ~2019년 10월, 부울경뉴스에 연재)
『심판』(2020년)
시집 『공감여행』(2020년 2인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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