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길

                                                 안 순 자      

산에 오르면서 편한 길을 택할까 아니면 조금 힘들어도 오르막을 택할까 잠시 망설일 때가 있다. 작정하지 않고서는 대체로 힘든 길을 일부러 골라 오른 경우는 없다. 늘 가던 안전한 길을 무심코 택해 걷는다. 풀이 우거져 길이 거의 나지 않는 숲길을 문득 걷고 싶은 유혹이 없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걸어보지 못한 길」의 시 구절처럼 매번, 다른 날 한 번 걸어보리라 마음만 먹는다.

우리의 삶에도 어떤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취할 수 없기에 오로지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고민이 있다. 인적이 드문 길을 택할 때는 모험심과 용기가 필요하다. 대체로 사람들은 미리 길이 닦인 안전한 곳을 찾기 마련이다. 평탄한 길은 실패의 확률이 낮거니와 많은 사람들이 다녔기 때문에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또 혼자가 아니기에 외롭지 않다.

간혹 새로운 인생을 경험하기 위해서 또는 다채롭고 풍부한 삶을 원하는 사람은 험난한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안정된 삶이 눈앞에 있는데도 먼 길을 택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신감과 개척 정신이 강하다고 보겠다.

딸이 캐나다로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지났다. 딸이 프로스트의 시를 읽었을까?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다. 엄마인 나는 암담하고 두렵기만 한데, 딸은 아는 이 하나 없고 한 번도 가 본 적도 없는 낯선 곳으로 희망과 꿈을 안고 갔다. 거기서 취업을 했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딸의 마음을 알기에 공부 할 수 있게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딸을 멀리 보내지 않으려고 부모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카드였다. 달콤한 제안이고 순간 흔들리긴 했지만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면서 거절했다. 훗날 자기 힘으로 공부하겠다는 거였다. 당차게 거절하는 딸이 내심 믿음직스럽기도 했다. 딸의 잠재력을 믿기로 했다. 정신적으로는 벌써 독립을 한 셈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마음을 다독였다.

16세 때 내 곁을 떠나 한창 예쁘고 싱그러운 시절의 딸의 모습을 놓쳤다. 손가락으로 셀 정도의 횟수로 겨우 보았으니 볼 때마다 아쉽고 목말랐다. 객지에서 혼자 무얼 해 먹고 살까 싶은 걱정과 딸과 엄마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누릴 수 없어 우울한 한 때를 보냈다. 그러나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못 참을 것도 없다 싶었다.

가까이 지내던 문우가 KOICA 단원으로 페루로 또 떠난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녀에게서 내 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굳이 떠나고 싶은가, 무엇을 위해서인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보다 소중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마음이 불쑥 들었다. 딸을 향한 화살이 방향을 틀어 그녀에게 날아갔다. 딸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떠난다고 했다.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를 수없이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이라 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2년 넘게 있었던 문우도 봉사단원의 이름으로 또 가족 곁을 떠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은 행복을 추구하기 마련이니 행복하기 위해 내린 결정 아니었을까.

분명 누군가의 부름이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자신의 내면의 부름이라고 생각된다. 주어지는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가는 힘이 그녀에게 있었다. 장벽을 이겨나가는 힘과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발휘하고 저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만든 것이다.

문학은 익숙함이 아닌 낯설게 하기다. 문학을 통해 상상력을 키우고 도전의식을 배운다. 나는 문학을 하면서도 내게 주어진 이 자리, 안정이 보장된 지금의 삶을 벗어나지 않으려 움켜쥐고 있다. 어떤 돌발상황이 일어나면 불안하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실험할 수 있는 공간에 몸을 과감하게 던진 그녀 그리고 내 딸. 사람들이 많이 다닌 평탄하고 안전한 길을 마다하고 뱀이 나올지도 모를 숲이 우거진 길을 선택한 그녀들이야말로 문학적인 삶을 살아내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나는 딸에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씩씩하게 가라고 응원한다. 오랜 세월이 지나, 안락한 삶에 만족하지 않고 낯선 길을 선택한 자신의 판단으로 운명이 달라졌음을, 그래서 오래 충만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노라 회상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안순자 수필가

▲ 안순자 수필가는……
2000년 ˂한국문인˃ 수필 신인상을 받으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2015년 경남문화예술진흥기금 지원으로 첫 수필집 『양재천 풍경』을 출간하여 경남문협 우수작품집상을 수상했다. 현재 경남문인협회. 창원문인협회. 경남수필문학회. 가향문학회, 목향수필문학회. 경남창원시낭송협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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