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고향 4

                                                  홍 진 기

눈 맑은 산도랑에 달이 빠진 옹자물에

밀었다 당겼다가
등을 미는 물결무늬

달안개
가다 또 서네
밤새가 길게 우네

사랑은 잘 모르지만 절로 익어 좋은 날

비구름 재를 넘다
제풀에 무너지고

골 깊어
꽃 지는 적막
조각달이 시리네

* 작가 노트

▲ 홍진기 시인

세월이 멀어질수록 추억은 다가선다. 다가서는 추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고향이 있고, 부모형제 일가친척은 그 한가운데 어제인 듯 생생하게 예나 이제나 그때 그대로 너무나 또렷하다. 손발이 시려 울었던, 사금파리에, 가시에, 베이고 찔렸던 추억은 더욱 아름다운 어린 시절의 꽃으로 피어난다. 추억은 눈물도 꽃인 것이 분명하다.

내겐 그 무엇, 그 어느 것보다 절실하고 또렷한 그리움이 고향에 있다. 눈물 없이는 넘길 수 없는, 생각할수록 서글프고 아픈 추억, 아파서 더욱 그리워지는, 갈수록 덧쌓이는 애달픈 고향에의 설운 지난날이 있다. 내 할머니, 내 어머니, 내 고모님들에 대한 그리움이며 보고 싶음이다. 그리워서 자주 울고 있는 요즘의 아픔이다. 아파서 더욱 그리운 애달픔이다.

여태도 이리 보고픈 사람 다 돌아가시고, 알몸으로 재잘거리며 마냥 즐겁기만 하던 그때 그 알동무들 뿔뿔이 떠나 흩어지고, 더러는 죽어갔거나 아니면 행방을 몰라 만날 수도 없으니 더욱 그립다. 배를 바닥에 대고 기던 그 냇물도 이미 마른지 오래고, 참꽃이 뒤덮던 봄날의 안산, 밤마다 별똥이 떨어져서 다음날 별똥 찾으러 달려갔던 철이 없어 더욱 귀여운 한 시절, 그 산도 이미 옛 산이 아니니 차오르는 그리움 이대로 눈물 어린다.

고란이란 놈 보리밭 두렁에 우두커니 섰던 모습도 보고 싶다. 풀잎 하나도 새로 피는 나뭇잎, 오는 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감나무의 숨은 눈, 떨어지는 나뭇잎, 바람에 굴러가던 가랑잎도 되살아 지금 또 설운 정을 들춰 돋운다.

그래서 고향이 없는 사람을 불행한 사람이라 하나보다. 난 고향이 있어 그래도 행복한 사람이다. 그리워할 고향이기에 내 고향이다. 그 동무들과 구슬 따먹기, 딱지치기 한 번 하고 싶다. 숨바꼭질도 딱 한 번만이라도 ……. 

小井 홍진기
<현대문학>(79) 자유시, <시조문학>(80) 시조 각 천료. <낙엽을 쓸며>(100인선집) <무늬> <거울>등 8집 냄. 조연현문학상, 경남문학상, 경남예술인상외. 한국문협, 국제펜한국본부, 한국시조시협,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등 자문. 한국현대시협, 가락문학, 포에지창원 등 고문.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