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면도의 여름

                                                 강 현 순 

마음이 공허하여 창을 연다. 별이 촘촘히 박혀 있는 까만 밤하늘을 기대했건만 온통 희뿌연 잿빛만 가득하다. 맥없이 오도카니 서서 내다보노라니 그날이 불쑥 생각난다.

태양과 지구가 가장 가깝다는 한여름 어느 날이었다. 각기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는 세 자매가 서로 보고픈 맘에 충남의 안면도에서 만났다.

서울에 살고 있는 막냇동생이 어쩌다 가 본 안면도에 반해 그곳에 집 한 채를 마련해 두었던 것이다. 직장 다니고 있는 두 딸아이 시집보내고 나서 부부가 오붓하게 살아갈 거라 하였다. 언니들을 맞이하려고 막내는 서울에서 진작 와 있었다.

동생의 집은 동화책 속에서 옮겨온 듯 참 예뻤다. 집 안팎을 부부가 시간 날 때마다 곱게 단장하고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다. 방이 세 개였는데 그 중 하나를 들여다보다가 놀라움에 입이 벌어졌다. 벽면 네 곳에 온통 ‘시詩’가 씌어져 있는 게 아닌가. 동생이 붓 펜으로 자신의 시를 포함한 명시名詩 스무여 편을 써놓았던 것. 과연 시인다운 발상이었다. 나는, ‘오늘밤 이 방에서 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집 구경은 나중에 하라며 동생이 언니와 나를 차에 태웠다. 멀지 않은 곳에 명품 소나무 ‘안면송’이 있는 자연휴양림에 갔다. 안내판에, 국내 최고의 소나무 천연림으로 수령이 100년 내외라고 씌어져 있었다. 동생이 서둘러 온 까닭은 12시부터 14시까지인 점심나절에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리라. 피톤치드는 활엽수보다 소나무 같은 침엽수에서, 또한 초여름부터 초가을에 더 많이 내뿜는다고 한다.

우리는 시원스레 쭉쭉 뻗어 오른 적송에서 뿜어 나오는 솔향을 맡으며 솔밭 길을 거닐었다. 나란히 서서 길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휴 - 하고 내쉬기를 반복하니 웃음이 나왔다. 마주보며 웃는 모습은 정겨웠고 눈빛은 따스했다. 나무들이 아낌없이 내주는 향기를 피부에도 닿게 하려고 팔소매를 걷어붙여서는 여기저기 놓여 있는 평상에 드러눕기도 하였다. 솔밭 사이로 내비치는 뜨거운 햇빛이 썩 반갑지는 않지만 삼림욕을 제대로 즐기자면 그쯤은 대수가 아니었다.

휴양림에서 벗어나 꽃박람회를 둘러본 뒤 ‘꽃지 해변’으로 갔다. 예쁜 이름 ‘꽃지’는 백사장을 따라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란다. 슬픈 전설을 담고 있는 할배․할매 바위 사이로 붉게 물드는 낙조가 아름다워서 사계절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태안 팔경 중 하나이며 변산의 채석강, 강화의 석모도와 함께 서해안 3대 낙조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우리가 찾았을 때도 할배․할매 바위 너머로 곱게 물든 일몰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진풍경을 펼치고 있었다. 나도 카메라를 들고 그들 틈으로 파고들었다. 둥실한 주홍빛 덩어리는 많은 사람들의 셔터 세례를 받는 게 쑥스러웠는지 시나브로 바다 속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사랑과 정성이 가득한 저녁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또다시 그곳에 갔다. 백사장에 돗자리를 펼치고 나란히 누웠다. 하늘이 마치 먹물을 뿌린 듯 새까맣다 보니 별빛이 더욱 영롱해 보였다. 다이아몬드가 총총 박혀 있는 것 같았다. 저 수많은 별들이 우리들 가슴에 와르르 쏟아지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낮에는 태양 빛이 너무 밝아서 별을 볼 수 없지만 우주에는 수천 억 개의 별이 빛나고 있다 한다. 우리는 난생 처음 별을 보는 듯 동심으로 돌아가 “와! 별이다!” 소리 질렀다. 그때 제부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저기 북두칠성이 있네요.” 하여 순식간에 네 사람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아졌다.

북두칠성이 주위의 별보다 확연히 밝고 모양이 뚜렷하므로 가장 찾기 쉬운 별자리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치 숨은 보석이라도 발견한 듯 마음이 들떴다. 삽시간에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떠오르는가 하면 알퐁스 도데의 ‘별’ 이야기도 생각났다.

시간이 차츰 지날수록 따뜻한 물속에 들앉은 듯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다정한 피붙이들과의 만남이 주는 선물이지 싶었다.

그날 밤, 별빛이 언제 내 눈에 들어왔는지 눈이 반짝반짝 빛나면서 당최 잠이 오질 않았다. 덕분에 ‘시가 있는 방’에 혼자 누워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며 스무여 편의 시를 모두 감상하였다. 따뜻하고 예쁜 시 몇 편은 외울 정도였다.

기도실 / 강현덕

울려고 갔다가
울지 못한 날 있었다
앞서 온 슬픔에
내 슬픔은 밀려나고
그 여자
들썩이던 어깨에
내 눈물까지 주고 온 날

내다본 밤하늘에서 안면도 꽃지 해변의 별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어서, 언니동생이 보고파지는 것이어서, 열어둔 창을 닫지 못하고 있다.

▲ 강현순 수필가

▲ 강현순 수필가는 ……
· 1993년 《한국수필》로 문단 데뷔
· 수필집 『좋은 예감』, 『세 번째 나무』, 『꿈꾸는 섬』, 『꽃과 사람』
· 경남수필문학회 회장, 경남문학 편집장, 경남문인협회 부회장 역임
· (현) 창원문협, 경남문협, 경남문학관, 한국수필작가회,‧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수상 남명문학상신인상, 경남문학상신인상, 경남문협우수작품집상, 부산한국수필문학상, 시민불교문화상(문학부문), 한국수필문학상, 경남수필문학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