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관

                                                한 상 권

주산지에서 풍경화를 그리다가
왕버들나무처럼 온몸이 젖어 있다가
야송미술관 옆 넓은 밥집 마당으로 옮겼다.
송소고택의 헛담에 대해 이야기하며
잠시 단풍과 단풍 사이를 붉게 거닐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진 창가에 앉아 점심을 먹는 것인데
갑자기 작은 새 한 마리가
가을 식당 통유리에 부딪혀 기역자로 꺾였다.
누군가 단지 유리창 밖의 일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느 우주에선가 온 몸을 던져
지워지지 않는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옹호했지만
텅 빈 구두로 가득 찬 밥집을 걸어 나오면서
발 앞에 떨어진 단풍잎 하나를 주우면서
온몸으로 다가가지 않으면 닿지 않는 길 위에서
문득 가을이라는 유리 속에서
새와 세계와 나의 관계를 잃어버린 것이다.

* 작가 노트

▲ 한상권 시인

늦가을 주산지에서 가을이 깊어간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곳을 빠져나왔다. 버스를 타고 몇 군데를 더 들렀다가 일행들과 마당이 넓은 어느 밥집에 이르렀다. 마당을 깊게 채운 단풍잎을 보면서 가을이 떠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조금씩 거닐다가 밥집 안으로 들어가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옆에 있는 통유리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 짓지 못한 어느 새 한 마리의 슬픈 몸짓, 아니 이게 무슨 눈먼 사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느 우주의 한 조각이 어떤 순리를 위해 온몸을 던지는 일이라 해도 그것을 옹호하고 싶지 않았다. 무르익지 않고 깊어지지도 않은 이 무모함을 어찌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때 나는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화해하지 못할 막막함을 느꼈던 것이다.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작품 활동을 시작함. 시집 『단디』(2015)와 2018년 상반기 청소년 교양도서로 선정된 청소년 시집 『그 아이에게 물었다』(2018)가 있음.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