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과

                                                 전 성 희

▲ 사진 서문희

빛의 회로를 따라 당도는 높아진다
비탈진 과원을 꺾어 들어가면
햇살이 교차되는 숨결
달콤한 과육이 협연으로 흐른다
허공을 접촉하며
아낌없이 제 몸 달구어 낸
소리 없는 치유의 흔적이 저물어간다
우주로 힘차게 열기를 뿜어내며
결실의 풍경을 밀어 올리는
나무들의 변함없는 방정식
이맘때면 허물어지지 않는
직선의 방식을 가르쳐 준다
제 살을 삭혀 낸
메마른 가지의 상흔들이
산고의 흔적으로 깊이를 재는
모든 허방 견뎌온 삶의 문장이 된다
당도 높은 생이 줄기를 빠져나가면
저무는 저 헐거운 몸짓
여윈 바람들이 허공을 휘젓는다

*작가 노트

▲ 전성희 시인

올해는 예상치 못한 기류 탓으로 낙과가 풍성해진 구월이다. 열매는 모성의 빛을 따라 당도를 더해 가는데 정성 들여 자식들 같은 달콤한 과육을 만들기 위해 쉼 없는 과원의 손길은, 둥글지 못한 결실에 고된 한숨만 내쉬게 된다.

행여 다칠세라 다져온 나무들의 몸짓처럼 이제는 자식들을 멀리서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고의 흔적처럼 하루하루의 문장을 심장에 새기며 삶의 발자욱마다 찍혀 온 행복과 시련의 시간들이 아늑하게 가을바람 타고 살갗에 와 닿는다. 또 다른 내일을 기록하는 홀가분한 구월의 일상들, 여물은 과육을 항시 기대하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나무는 외롭고 곧게 겨울을 이겨내며 또 다른 새봄을 기다린다.

전성희 시인은 부산 출생이며, 2003년 『문학예술』 신인상으로 등단하였다. 새부산시인협회작품상 외 다수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비어 있다는 건 언제나 낯설다』 외 2권, 전자시집 2권이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신작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의 신작시를 시인이 쓴 작가 노트와 함께 발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