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나물의 노래       

                                                김 찬 식

▲ 그림 안기태

무명치마를 두른 며느리
시루 속에 죽비를 맞으며
잔치 뒤의 무성한 뒷말
똬리에 이고 깊은 우물을 건넌
어머니

집안의 잔치 때면
어머니는 아랫목 콩시루에
눈가의 이슬로 새싹을 틔우고
샛노란 소망을 밝히며
찬 어둠을 헹구었지

어두운 시루 속에 버티는 외발의 발레
서로를 의지하며 물의 뼈대 속
세상의 뭇소리 뿌리로 내리며
시루 속에 공명하는 정
아랫목에 둘러앉은 식구들의
소리없는 합창 ‘어머니의 노래’
잔주름주름 마다 스며든다

❚ 작가 노트

▲ 김찬식 시인

60~70년대는 잘사는 집이나 못사는 집이나 집집마다 콩나물시루가 있었다.
특히 집안의 대사나 잔치를 앞두고는 큰 콩나물시루가 방구들 목에 놓였다.
가끔씩은 식구들이 번갈아 가면서 콩나물시루에 물을 뿌려주기도 하였지만 콩나물 기르는 일은 대부분 어머니의 몫이었다.
콩나물국이 식탁에 오를 때면 반듯이 어머니가 생각나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한때는 어머니와 그 시절의 향수가 그리워 조그만 콩나물시루를 구입해서 콩나물을 길러 식탁에 올리기도 하였는데 용기를 청소하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어서 포기한 일이 있기도 하였다.
바다의 어류 중 작은 물고기들은 떼거리로 모여 큰 형태의 어류군을 이뤄 큰물고기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생존을 유지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콩나물시루의 콩나물도 마찬가지다. 낱낱의 콩나물은 연약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빽빽한 콩나물시루의 콩나물은 서로가 서로의 뼈대를 기대면서 서로를 어루만지며 물관으로 부지런히 영양을 실어 날라 시루 속에서 꼿꼿하게 버텨내는 콩나물이 된다.
방구들 목의 시루 속 콩나물은 부모님의 사랑얘기나 집안의 뒷담 등 온갖 동네소문을 들으면서 자랐을 것이나 꼿꼿한 뼈대의 정신으로 비밀을 지키며 자기만의 길을 지켜왔던 것이다. 있는 말 없는 말 이말 저말 전하면서 이간질과 반목질시하는 인간들이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혼을 파는 인간들보다, 무명無名이나마 꼿꼿이 자기만의 자존과 자신존재의 숭고함을 지켜나가는 콩나물이야 말로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정신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김찬식 시인은 부산에서 출생하였으며 서울의 문학월간지인 [심상]으로 등단하였다. 현재 부산광역시문인협회 부회장, (사)부산시인협회 부이사장 이다. 국제펜클럽 부산지역위원회 부회장과 중앙공무원연수원 초빙강사를 역임하였고 시집으로는 『누구나의 가슴에도 강물은 흐른다』외 공저 다수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발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