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서곡

                                                김 석 규

▲ 사진 서문희

그림자로 발등을 덮어 폭양을 건너온 여름이여
화상의 흔적 하나둘 비로소 훈장으로 빛나고
비지땀 걷힌 자리에 잔잔히 밀리는 삶의 그늘
잘 가라, 피곤으로 얼룩진 날의 장중한 진혼을 위해
무성하던 추억 하나만으로도 넘쳐나는 축배
하늬바람 서늘히 또 북천의 우레를 몰아서 오면
들녘엔 찬비 먼 산엔 이미 눈발이 날리고
하얗게 여윈 불빛 하늘가에 어룽이는 저녁이여

*작가 노트

▲ 김석규 시인

지난여름은 폭염의 기록이었다. 연일 폭염특보에다 폭염경보, 폭염주의보로 이어졌으며 전국 곳곳의 최고 온도는 서로 다투어 키를 자랑하기에 땀을 쏟았다. 푹푹 찌는 열기는 한 달이 넘게 이어지면서 아예 식을 줄 모르는 지열과 복사열은 밤새도록 기승을 부리는 열대야로 되어 서민들만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오죽했으면 전에 없던 초열대야란 말까지 생겼을까.

은근히 기대했던 소나기 한 줄금마저도 야박했으며 멀찌감치 들려오던 태풍 소식도 슬그머니 진로를 바꾸어 옆으로 새어나가 버렸다.

어느덧 성큼 가을이 발등에 떨어졌다. 계절은 언제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였다. 해무에 가려졌던 먼 바다 수평선의 어깨가 눈이 시리도록 또렷해질 때 푸르던 잎새들이 조금은 피로해 보이고 꽃들은 꽃들대로 까맣게 잘 익은 씨앗들을 어디에다 내려놓을까 궁리를 할 때는 이미 가을이 와 있다. 파랗게 높아가는 하늘뿐인 서창으로 흘러드는 한 주먹의 햇살이 유정하다.

김석규 시인은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에 이어, 『현대문학』 청마 유치환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윤동주문학상 외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풀잎』 외 다수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