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재봉틀

                                               김 살 로 메

엄마 집 마루 창가에는 재봉틀이 놓여 있다. 수동 바퀴와 발판이 달린 아주 오래된 것이다. 몇 십 년 동안 길들이고 윤을 낸 엄마의 손길 덕분인지 창으로 햇살이 내리면 재봉틀 검은 머리는 유난히 반짝인다. 몸체를 받치는 선반 위에는 자투리 꽃무늬 천이 이리저리 널려 있다. 익숙하게 순서대로 실을 꿴 엄마는 손으로 바퀴를 돌리는 동시에 발로는 장방형의 페달을 밟는다. 마법 같은 엄마의 솜씨에 금세 자투리 천은 화사한 베갯잇으로 재탄생된다. 오르락내리락하는 발판 위의 엄마 발과 바퀴를 돌리는 엄마 손 그리고 꽃무늬 천을 내려다보는 늙은 엄마의 순한 눈빛.

엄마의 발을 넘고 손을 지나 잠시 아련한 기억의 창가로 떠나본다. 순전히 『히다리』 포목점 때문이다. 히다리 포목점은 엄마의 재봉틀을 떠올리게 하는 소설이다. 다다다다, 소리를 내는 재봉틀 발판 곁을 주인공 모리오는 안식처로 생각한다. 그 위에 쪼그리고 앉아 배를 타는 느낌으로 혼자만의 황홀한 시간 여행을 한다. 순한 모리오와는 달리 그 시절의 나는 격자무늬 엄마의 재봉틀 페달이 창살 같다고 생각했다. 쉼 없이 돌아가는 엄마의 재봉틀 소리가 성가시고 싫었다. 쉼 없이 돌고 도는 그 소시를 동조 없는 연민으로 일관했다. 엄마의 삶이, 비루한 한 가계의 일상이 엄마가 박아내는 저 환한 꽃무늬 완제품처럼 밝아질 날이 있을까.

상처 많은 청년 모리오는 엄마가 죽은 뒤, 가보 같은 재봉틀을 자신의 아파트로 옮겨온다. 그리곤 엄마처럼 바느질을 한다. 스커트에 맞춤한 꽃무늬 천을 찾아 몇 시간이나 헤맨 끝에 검은 고양이 ‘사부로’씨의 안내로 히다리 포목점에 이른다. 나는 모리오가 아니므로 그런 시간이 온다 해도 엄마의 재봉틀을 소중히 간수하지 않을 것 같다. 재봉틀의 기본도 모르는 나는 바느질을 시도하기는커녕 모리오처럼 꽃무늬 천을 찾아 오래된 섬유거리를 헤매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엄마가 남긴 베갯잇, 방석, 이불보 등 다양한 소품들을 보면서 재봉틀을 돌리고 돌리던, 굳은살 밴 엄마 뒤꿈치를 오래 기억할 것이다. 바늘 자국이 지나간 엄마 오른손 검지의 상처를 떠올리며 당신 노동의 숭고함을 되뇌는 것도 잊지 않겠지. 모리오가 제 엄마의 꽃무늬 스커트를 재현할 때, 나는 가만 엄마의 베갯잇에 얼굴을 묻게 되겠지. 가끔 꿈길에서나 청년 모리오를 만나면 재봉틀 돌리던 엄마의 창가에 대해 회한에 잠겨 읊게 되겠지. 

▲ 김살로메 작가

김살로메 작가는 2004년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폭설』이 당선되어 바닷가 소도시에서 책읽기의 즐거움과 글쓰기의 괴로움을 나누며 좋은 사람들과 활동하고 있다. 소설집으로 『라요하네의 우산』 (2016 세종도서문학나눔 선정), 일천(一千) 글자 미니 에세이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2018)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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