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몰, 다대포에서

                                                 김 창 균

부산에 팔경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다대포 일몰이다. 저녁 해 떨어지는 풍경은 자연의 섭리이니 기이한 풍경은 아니다. 다대포의 일몰은 해가 저무는 풍경이 아니라, 천지강산이 저무는 풍경이다.

그 곳은 한반도의 끝이면서, 남쪽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 강원도 산골에서부터 칠백 리를 흘러온 낙동강이 여정을 끝내고, 남쪽 바다는 그 물을 받아 다시 열린다. 강물과 바닷물의 만남은 순하지 않은데, 가덕도가 그 둘을 중재하려 한다.

그러나 섬은 오히려 쫓겨나고 하구의 모래섬과 철새들이 강과 바다를 화해시킨다. 다대포의 황혼은 바로 그 곳에서부터 온다. 바람이 갈대숲 사이로 스며들고, 해가 산 뒤로 넘어가기 시작하면 강의 잔물결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바다의 파도는 기병처럼 창날을 세운다. 그리고 수평선은 바다의 오가는 문을 닫는다. 모래 언덕에 핀 나문재와 영산홍의 따가운 불평도 멈춰지고, 그 아래를 기어 다니는 바다 게의 부산함도 느려진다. 일몰이 시작되는 것이다.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며 바람이 서늘해진다. 빛들은 어느 순간 서쪽 하늘을 붉은색에서 황색으로 다시 금빛으로 물들이고, 바다는 빛의 입자들로 술렁인다. 이 때 붉은 빛줄기가 바다와 대지로 연결된다. 구름은 빛과 어울리면서 군데군데 어둠을 드러낸다. 어둠은 빛이 생기기 전 허공의 본 모습이다. 그 허공과 빛들이 서로 스며들면서 어둠과 밝음이 물감처럼 풀어지기 시작한다. 빛의 가루가 어둠과 섞인다. 하늘은 붉음에서 분홍으로 다시 자주색으로 물들어 가며 변화가 무상(無常)하고, 해는 섬과 산들의 뒤편으로 천천히 넘어간다. 곧이어 어둠이 빛의 뒤를 따라 오고 철새들이 갈대밭 위를 선회하며 황혼 속으로 날아간다.

다대포의 황혼은 산과 바다와 강이 함께 저문다. 도시의 마천루 뒤로 떨어지는 해의 삭막함이나 시골 벌판의 적막한 일몰이 아니라, 천지강산의 화려한 일몰이다.

해가 질 때 섬과 산은 빛의 그림자가 되며, 하늘과 바다와 강은 해의 무대가 되어 일몰의 운명을 보여준다. 빛은 천지강산으로 흩어져 강과 바다의 물결을 반짝이게 하고, 하늘의 끝에서부터 수채화의 붓질을 힘차게 그려낸다. 빛의 입자들이 사물들을 비춰 이 세상은 아름다운데, 이 하루가 저물어가는 모습은 쓸쓸하다. 빛이 스며든 하늘의 망망(茫茫)함은 이 세상 저 너머의 부처를 보여준다. 그러나 속세의 간난신고를 겪는 중생에게는 막막하고 서러운 풍경이다.

다대포 개펄 위를 산책할 수 있게 다리가 하나 놓였다. 이리저리 길이 구부러지게 배치해 놓아 단조롭지 않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도록, 다리 서너 곳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해 지는 저녁 그곳에 서면 바람이 황혼을 불러온다. 갈대숲이 서걱거리고, 빛은 어둠으로 변해가며 바다와 산의 그림자 뒤로 넘어간다. 몰운대와 가덕도 사이로 바다는 저물어가고 금빛으로 빛나던 하늘도 강과 바다로 내려앉는다. 황혼의 문이 닫히는 것이다. 그 문 사이로 바람은 불어오면서, 고요 속으로 모든 사물을 밀어 넣는다.

그 시간에 사람의 등불이 켜진다. 생각해 보면 그 등불 또한 황혼이다.

▲ 김창균 수필가

김창균 작가는 2010년 『한국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하여 수필을 쓰고 있으며 현재 김창균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로 활동 중이다. 수필집으로 『요중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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