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늄의 분홍미소

                                                박 미 정

▲ 그림 아댈라 리

마드리드 골목 집 코발트빛 창틀에
제라늄을 연달아 얹어놓고
수다를 떨던 목소리들이
나를 떠나지 않는다.

꽃대를 쭉 빼고
창밖을 보고 선 우리 집 분홍꽃
타임머신을 타다가 무엇에 들켰는지
눈물을 꺾는다.

피드백의 손길은
콜른 범선 모양의 물그릇으로
흙을 추슬러 뿌리를 다져 주고
세르반테스의 문체를 더듬는다.

막간극 여러 편의 회화성에 빠져
사모했음에도 불구하고
초록실로 엮는 그물에 휘감겨버린
돈키호테의 위험한 모험을 외면하다가

대륙성 기후를 연상케 하는
끝날 줄 모르는 여름비 속에서
귀부인 돌시네아의 마법을 푸는 일을 생각한 끝에
발을 짚지 못한 도로원표를 기억해 낸다.

아하, 그것
가슴에 걸어두게 한 그리움의 통증
찾았으니, 어루만져 삭이고
나를 그리워하는 분홍 미소를 지구에다 심는다.

*작가 노트

▲ 박미정 시인

여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워지나 보다.
사람을 떠났던 여행에서 돌아와 한참 만에 다시 그리워지는 사람들.
마드리드에서 아프리카를 보았다고 너스레를 떨어도 괜찮을까.
떠나서 좋았던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수다였다니 나도 참 어처구니가 없다.
1990년의 마드리드는 언제부터인가 제라늄의 분홍미소로 피어, 현실의 거울이라 칭하는『돈키호테』를 다시 읽게 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다.

박미정은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평론가이다. 여성문학상 대상, 부산문학상 대상, 한국해양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 『맥놀이』 외 6권, 수필집 『해무를 벗기다』, 저서로는 『한국 현대 해양시 연구』 등 다수가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 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