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란다스의 개를 아십니까

                                                  정 병 국

▲ 사진 이정덕

아마도 초등학교 사학년 가을에 있었던 일이랍니다. 제가 일학년 때 혼자되신 어머니는 책은커녕 공책이나 연필조차도 새것을 사 준 적이 없었기에 동화책 같은 것은 우리 집 방에서 굴러다닌 적이 없었답니다. 어머니는 겨울이면 마치 중환자처럼 앓아 누우셨고 저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과 남동생을 챙기며 땔감을 해 나르느라 달리 책을 접할 시간도 없었답니다. 겨울 저녁때면 마른 풀이라도 뜯어다가 아궁이에 연기라도 쬐어야 설잠이라도 잘 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사학년 여름 방학 때 동화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방학 때 책 좀 읽으라며 마을 단위로 동화책을 한 권씩 배분했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네 명의 학생이 있었고 책을 제가 먼저 읽기로 했답니다. 제목은 『사랑의 학교』였지요. 그 책을 내가 다 읽기도 전에 수해가(1972년도의 큰 수해) 나서 작은 개울가에 웅크리고 있던 우리 초가집은 가재도구를 건질 새도 없이 흔적도 없이 떠내려갔는데 그때 그 책도 함께 떠내려갔었지요. 방학이 끝나고 반납을 해야 했으나 감감 무소식처럼 버텼답니다. 그 동화책으로 동화에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에 학교 책은 제게 오랫동안 그림의 떡이 되었답니다. 

그해 가을에 추억으로 남기기도 벅찬 사건이 생겼답니다. 메뚜기 잡기와 벼이삭을 줍던 때였습니다. 우리 마을의 면소재지는 그 당시 10킬로 이상 떨어진 먼 곳이었는데 서커스가 들어와서 공연을 벌였습니다. 그 사실이 우리 마을 골짜기 골짜기에도 퍼졌었지요. 어린 마음에 무척이나 가고 싶었답니다. 엄마 손길에 이끌려 다녀온 아이들의 자랑에는 서커스란 신기함의 극치였었답니다.

 어느 일요일 엄마는 아침 일찍 벼 베기 날품 팔러 가셨고 저는 기회다 싶어 엄마가 감춰둔 백 원짜리 종이돈을 꺼내 면소재지를 걸어서 갔었습니다. 멀고 먼 길이었음에도 주머니에 꾸겨진 그 백 원짜리가 원인모를 자신감을 심어주었었답니다. 세상이 다 내 것이었지요. 막상 도착하고 보니 먹거리들이 지천이었고 천막으로 가려진 서커스는 자연스럽게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아까운 돈이어서 군것질 조차도 어려웠었는데 이상하게도 문구사를 겸한 서점에는 선뜻 발을 들여 고 말았었지요. 그때 눈에 띤 책이 『플란다스의 개』였지요. 아마도 제목이 동물을 상징했었기에 호기심으로 고른 책이었었지요. 백 원을 거슬러 주시더군요. 눈을 딱 감고 십 원어치의 찐빵을 샀습니다. 고픈 배를 채우고도 남을 양이었습니다. 두 동생들이 생각나서 조금만 베어 물고 비닐봉지에 꼭꼭 쌌습니다. 입에 살살 녹는 맛이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제원군 백운면에서 동강의 삼분 일 정도 크기가 되는 물길을 따라 걸어 10킬로 정도 내려오면 닿는 곳입니다. 그 길을 따라 걸으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그 내용은 바로 저의 이야기와 진배없었답니다. 동네에서 최고의 가난, 겨울이면 앓아 누우시던 엄마, 가장 풍요롭게 사는 같은 반 친구 정숙이에게로 향했던 짝사랑 같은 게 바로 저의 이야기로 귀결되었었지요. 세상을 이기지 못하고 네로가 루벤스의 그림 앞에서 가냘픈 어깨를 뒤로하고 죽는 장면에서 한없이 울면서 걸어내려 왔답니다. 서산에 지던 해조차도 내가 사랑하는 하늘에 붉은 눈물을 뿌려 주었답니다. 

그날 저녁이었습니다. 벼 베기에서 돌아오신 엄마는 곧바로 돈이 없어진 것을 눈치 채셨고 또 범인이 저임을 대번에 눈치 채셨답니다. 저는 표정이 용의주도하지 못했었거든요. 다짜고짜 매를 들고 제가 까무러칠 정도로 때리셨답니다. 까닭모를 설움들이 몰려와서 악머구리처럼 서럽게 우니까 겁에 질린 두 동생들도 함께 울었었지요. 울다 지쳐 곯아 떨어진 나를 엄마가 깨웠습니다. 밀가루만 동동 뜨는 수제비라도 먹고 자라고……. 그리고 물으셨습니다. 그 훔친 돈을 어디에 썼냐고. 얼른 『플란다스의 개』와 남은 돈 그리고 두 동생들 주려고 남겨왔던 빈 찐빵봉지를 엄마 앞에 내놓았었지요. 그리고 엎드려 흐느끼며 용서를 빌었습니다. 일체의 품목들을 점검하신 엄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언뜻 지나갔습니다. 그것으로 제 죄는 씻은 듯이 앞 개울물에 떠내려갔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풍요롭게 가을 해는 떠올랐습니다. 까닭 없이 저의 얼굴을 마주 보지 못하시는 엄마의 얼굴 눈 주위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만큼이나 퉁퉁 부어 있었습니다. 

▲ 정병국 시인

정병국 작가는 계간 『문예춘추』(2010)에 수필로, 『한국문학작가회』(2016) 에 단편소설 『아버지』로 등단하였다. 현재 청주에서 자영업을 하며 글을 쓰고 여행을 즐기며 아마추어 테너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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