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전역

                                                       임 재 도

부산 서면에 부전역이 있다

부전역의 승객은 역 앞 부전시장 상인들의 왁자한 흥정소리와 역 뒤 옛 하야리아 부대 미군들의 꼬부랑 영어말과 서면로타리 옛 부산탑 그림자와 옛 북성 태화 동보 대한극장의 은막을 누볐던 배우들과 서면 복개천 입구 영광도서의 신간도서 책향기와 부전도서관의 오래된 소장도서 책누룩 곰팡이냄새와 롯데백화점 자리 옛 부산상고 학생들의 색 바랜 교복 이름표와 서면시장의 쪽파양념 비빔손칼국수와 부암 당감 하천변 노란개나리와 그 옆 옛 진양고무 신발공장 본드 냄새와 그 공장 맞은편 가야 개금 철도공작창에서 수리 중인 많은 화차와 연산 거제 정착피난민들의 억세고 구수한 팔도사투리와 이들의 주름진 시간과 눈물 젖은 망향 등등 인데,

최근 부산시민공원의 역사의 물결 등 많은 볼거리와 뽀로로도서관의 아동도서와 미로공원에 울려 퍼지는 해맑은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전포동 카페거리의 커피향이 새로 늘었다.

부전역을 출발한 기차는 해운대 기장 일광을 지나 포항 고래등 분수 물줄기 너머 멀리 울릉 독도를 바라보며 덜커덕 덜커덕 추억의 여정 바퀴를 느리게 굴려 푸른 동해안의 아름다운 서정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한반도의 척추 태백산맥의 등줄기를 따라가는
동해남부선의 첫 번째 꼬리마디뼈
釜田驛
부전역

* 작가 노트

▲ 임재도 작가

 작가를 꿈꾸는 가난한 시골소년이 있었다. 너무 가난하여 시골에서 생계조차 유지하기 힘들어 부산으로 이사를 했다. 소년이 중학 2학년이 되던 해였다. 소년은 학교에 가지 못하고 동사무소의 사환으로 취직을 했다. 버스비가 아까워 4, 5 km 정도 출퇴근길을 손바닥만 한 메모지에 수학공식과 영어단어를 옮겨 적고 걸어가며 공부했다.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는 도시락을 싸서 서면 복개천변 영광도서를 지나 꽤 먼 부전도서관까지 걸어가 문학서적을 대출받아 밤늦도록 읽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영광도서와 그 근처 부산상고 앞을 걸어가면서 마주치는 교복 입은 또래아이들이 부럽다기보다는 언제 한번이라도 영광도서에 진열된 새 책을 사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공부하여 일 년 후 중학검정고시를 합격하여 또래아이들처럼 중학과정을 마쳤다. 일 년 후 다시 고등검정고시를 합격했다. 또래아이들보다 일 년 반이나 일찍 고등학교 과정을 마쳤다.
그러나 소년은 대학에 갈 수 없었다.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조선소의 직업훈련소에 들어갔다. 기관수리, 용접, 선반 등 일 년 과정의 직업훈련 과정을 마치고 정규직 기능사원이 되었다. 잔업과 특근을 하면 월급이 꽤 많았다.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6개월 후, 조선소 작업현장에서의 가스폭발사고, 그 사고로 소년은 전신 95%, 2-3도 화상에 양쪽 고막이 녹아버리는 산재사고를 당했다. 부산 메리놀병원 화상특별 중환자실에서 죽음과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소년이 살아날 확률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러나 소년은 기적처럼 살아났고, 그 후 몇 년간에 걸친 수차례의 피부이식, 고막이식 수술을 거쳐 만학으로 대학에 진학하였다.
지금 그 소년이 쓴 소설이 어릴 적 동경의 대상이던 영광도서의 베스트셀러 특별매대에 진열되었고, 부전도서관의 소장도서 목록에도 올라있다. 소년은 참 행복한 작가이다. 소년은 이제 이 행복을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들과 나눌 것이다. 희망과 치유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와 소설을 쓸 것이다.

일광해수욕장의 오영수 선생 문학비

어떻게 하면 지방의 소외된 작가들이 나름 의미 있는 발표지면을 마련할 수 있을 까? 인터넷방송 신문 부울경뉴스 대표 안태준 박사를 만나 협조를 구하고자 부산 기장으로 갔다. 안 박사와 일광해수욕장 해변 횟집에서 반주로 소주를 곁들여 늦은 점심을 먹고 해변을 거닐었다. 

그곳 일광에 「갯마을」오영수 선생 문학비와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를 둘러보며 얘기하는 도중에 안 박사가 부산 부전역에서 노인들에게 무료 기차탑승을 시작한 이래로 일광을 찾아오는 노인관광객이 부쩍 늘었다는 얘기를 했다. 부전역의 기차가 추억의 관광열차가 됐다는 얘기를 웃으면서 했다. 

- 일광해수욕장의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

부전역!
소년시절 부전역이 있는 서면 근처에 살면서 힘든 시절을 보냈던 나에게는 그 단어 하나가 새삼 새롭게 가슴으로 다가왔다. 부전역은 그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고, 나아가 부산시민의 애환과 추억의 상징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 당시 나처럼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사람뿐만 아니라 대다수 부산시민들의 공통된 정서일 것이다.
동해남부선의 시발점 부전역!
부전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오늘도 한반도의 척추 태백산맥을 따라 부산시민의 애환과 추억을 싣고 동해안의 아름다운 서정 속으로 천천히 들어간다.

임재도는 소설가이자 시인으로 장편소설 『피터 팬, 법정에 서다』(2014년), 『코리아타워(상/하)』(20115년) 등을 펴냈고, 기타 다수의 중, 단편소설과 시를 발표했다. 2017년 <제1회 영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