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간을 보다

                                                             김 일 태

비우면 길이 난다는 걸
서산 개펄에 와서 보았다

사랑에 이르는 요령도 그럴 것이다
속에서 비움으로써 그대에게 다가가는 요령
그때 그 노승도 그랬을 것이다

깊은 밤 섬이 길을 열어 육지를 다녀가듯
그대가 잠시잠깐 나를 다녀간들 어떠랴
온종일 막막한 그리움으로 자불거리다가
하루 한두 번 온몸으로 서로를 받을 수 있다면

시월의 보름달 좇아
간월섬이 길을 끊고 바다에 둥둥 뜨듯
그런 철없는 사랑 한번 해보고 싶네

*간월도(간월암) : 무학대사가 이곳에서 달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하여 이름 붙여진 충남 서산의 바닷가 작은 섬과 암자.

* 작가 노트

▲ 김일태 시인

시도 음식처럼 맛이 있다. 글맛이라고.
음식 만들 듯이 시를 쓰라 했는데 아직도 시의 간을 맞추는데 서툴러 내 시는 감칠맛이 부족하다. 현란한 기술과 다양한 시어로 잘 짜인 작품을 보면 부럽다.
향유의 시대, 세상 모든 것이 즐기는 자의 몫이 되어가고 있다. 삶이 유희이듯 시 쓰기는 주술행위만 같다. 미워하는 이를 만들지 말자.
문득 삶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져 어깨가 처지는 날은 도망쳐야 한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즐기지 못한다. 인생은 결국 놀이다.
헛것이 난무하는 세상, 사랑도 미움도 일상의 엄살까지 참 사치스럽다.
가난과 외로움의 다른 이름인 시인, 무능력의 표상인 시인을 가난해도 외로워도 능력 없어도 시인이 될 수 있다고 고쳐 읽어본다.

김일태는 1998년 『시와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부처고기』외 7권을 펴냈다. 시와시학상, 김달진창원문학상, 하동문학상, 창원시문화상, 경상남도문화상, 시민불교문화상 등을 수상하였고, 현재 고향의봄기념사업회 회장, 창원세계아동문학축전 운영위원장, 경남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