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김 승 강

두 번째 날이 저물자
나는 다시 술집을 찾아나섰다
시장통을 기웃거리는데 한 선술집이 눈에 들어왔다
선술집 출입문 유리에는
빨간 페인트 글씨로
안주일절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그 문구가 정겨워
격자창 미닫이문을 밀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문을 들어서자
너댓 명이서 술을 마시고 있던 일행이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 일행은 손님들 중에서도
유별나게 눈에 띄었는데
모두 후줄근한 양복에
잠자리 안경을 쓰고 있었다
놀랍게도 내가 다 아는 사람들이었고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는 체를 하려는 순간
그들은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나는 선술집 창가 한쪽 귀퉁이에서
출입문을 등지고 앉아
버릇대로 혼자 술과 밥을 먹었다
출입문 유리의 안주일체라는 문구가
등으로 박혀 들어와 술잔에 어른거렸다

* 작가 노트

▲ 김승강 시인

오래 전, 반 톤 트럭에 두부를 싣고 사흘에 한번 씩 통영 해안의 굴가공공장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겨울이었고 굴가공공장은 주로 응달에 있었지만 역시 통영은 동양의 나폴리란 별명대로 햇빛은 화사했고 물빛은 맑았다. 등단 전이었다.
얼마 전에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통영의 전통시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카메라는 큰 고무 대야 안에서 펄떡펄떡 뛰고 있는 생선들을 지나, 건어물가게의 건어물을 지나, 어느 허름한 선술집을 비추고 있었다. 순간 내 시선은 선술집에 고정되었다. 시에서처럼 격자창 미닫이문 선술집의 유리창에는 ‘안주일절’이란 문구가 빨간 페인트 글씨로 적혀 있었다. 티브이를 보다말고 메모를 해뒀다 나중에 시로 옮긴 게 이 시다.
시는 쉽게 쓰윽 나왔다. 선술집 안의 풍경에는 오래 전 통영에서의 두부장수의 경험과 현재의 시인으로서의 내 자의식이 투영되었지 싶다. 다시 말해, 통영에서는 두부장수의 내가 시인의 나를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술집 중앙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는 저들은 나보다 먼저 통영이란 제목으로 시를 쓴 시인 백석을 포함하여 근대 이후 통영이 낳은 위대한 예술가들일 테고…… 시의 마지막 부분에 가서 ‘안주일절’을 ‘안주일체’로 고쳐 썼는데, 고쳐 쓰느냐 마느냐로 사실 갈등을 좀 했다. 만약 내가 선술집을 낸다면 저 선술집처럼 일부러라도 격자창에 ‘안주일절’이라고 쓰고 싶다. 참고로, 1행의 ‘두 번째 날이 저물자’는 아시겠지만 내가 만든 문구가 아니다. 아마 종교서적에서 보았던 것 같다. 별 뜻 없이 사용했고 이후 몇 편의 시에서 더 사용했다. 일종의 마중물 같은 것이다.

김승강은 2003년 《문학 ․ 판》으로 등단하여 시집 『흑백다방』(2006년)을 시작으로 『어깨 위의 슬픔』(2017년) 등 총 4권의 작품집을 펴냈다. 이제까지 시인이 펴낸 4권의 작품집 중 3권이 세종도서 문학나눔 우수도서에 선정되었다.

* 부울경뉴스 『오늘의 자작추천시』는 부산 ․ 울산 ․ 경남 ․ 대구 ․ 경북에서 활동하는 중견시인들의 자작추천시를 시인이 직접 쓴 작가노트와 함께 소개하는 지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