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시인

아득한 고대, 일단의 인간들이 하늘에 닿는 탑을 쌓겠다고 덤볐다. 재료는 흙벽돌, 만드는 공정은 먼저 황토에다 짚여물을 썰어 넣어 잘 섞어 물로 이긴 다음 벽돌을 만든다. 그런 뒤에 또 벽돌을 불에 굽는다. 벽돌과 벽돌 사이에는 모르타르 대신 역청(콜타르)을 채운다. 영차! 영차! 인간들은 합심하여 탑을 쌓아 올라갔다. 그 탑은 하루하루 순조롭게 높이를 더해갔다. 어느덧 하나님의 구름방석까지 뚫고 솟아오른 그 순간,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구름 위에서 낮잠을 주무시던 하나님은 별안간 기겁을 하고 벌떡 일어나셨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탑의 뾰족한 꼭대기가 하나님의 은밀한 곳을 사정없이 찔렀기 때문이다.

‘이런 고얀 녀석들을 봤나? 하찮은 인간들 주제에 감히 내게 똥침을 찔러?’

화가 머리끝까지 뻗친 하나님은 즉각 응징을 하셨다. 우르르 쾅쾅! 뇌성벽력에다 최첨단 장풍 미사일까지 한꺼번에 쏟아 부어 박살을 내버렸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이 아니라 질투의 하나님, 분노의 하나님이셨다. 바벨탑을 그 바람에 산산조각이 났고, 탑을 쌓던 인간들은 탑과 함께 떼거리로 이승을 하직했던 것이다. 요행히 찰과상을 입거나 중상을 입었지만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인간들은 혼비백산했다. 또다시 벼락이 칠까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당초 한데 오순도순 지내던 인간들은 육대양육대주로 흩어졌고 서로 간에 말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상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실감나게 재구성해 본 것이다.

그런 분노의 하나님이 왜 갑자기 마음을 고쳐 잡수셨을까? 그때가 바로 20세기 초반, 미국 뉴욕에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1934)을 지을 때부터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하늘에 제사를 지낸 것도 아니고 통성 기도를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만 건물 꼭대기에다 피뢰침을 하나를 달았을 뿐이었다. 물론 그때 이후로 하나님은 구름 위에서 잠을 주무시는 일도 없어졌다. 또한 인간들도 생각을 달리 하게 되었다. 간간히 치는 뇌성벽력은 하나님의 분노가 아니라 하나님의 박수 정도로 시시하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초고층빌딩의 역사가 곧 인류문명의 역사이다. 구약시대 바벨탑이 무너졌던 것은 공학적으로 보면, 벽돌의 강도가 약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 보다 강한 건축 재료의 개발은 계속되었다. 벽돌에서 석재로, 석재에서 철근콘크리트로, 철근콘크리트에서 강철 재료로.......

20세기까지만 해도 초고층빌딩은 미국이 주도하였다. 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동양으로 옮겨왔다. 왜 그럴까? 초고층빌딩은 일부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의 경제적 활력이다. 도시가 번성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이 몰려들면 집지을 땅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건물이 하늘로 솟아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1세기 이후부터 초고층 붐은 아시아가 주도하고 있다. 중동의 산유국을 위시해서 아시아의 타이베이, 콸라룸푸르, 홍콩, 상하이, 광조우, 서울, 그리고 부산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도시의 활력은 초고층 건물의 숫자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바야흐로 세상은 국가별 경쟁을 넘어 도시별 경쟁 체제로 들어섰다. 그런 측면에서 부산은 이미 서울을 이미 능가했다. 부산 해운대에 101층 엘시티가 착공을 했다. 시공사는 중국 최고의 국영건설 회사인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C)라고 한다. 중국과 한국의 합작 프로젝트로 인해 두 나라 간의 기술 교류는 물론이고 우호증진에도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예정대로 2018년 준공이 된다면, 엘시티는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세계 속에 우뚝 설 것이다.

글/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