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지향의 일본인(1988)’은 이어령 교수의 역작이다. 일테면 벤또, 라디오, 워크맨, 다다미방, 비좁은 다실(茶室), 가장 짧은 시 하이쿠(俳句) 등등, 일본인의 특별한 개성을 설파한 내용이다.

박하시인

일본에서 워낙 인기를 누렸던 터라 속편 ‘축소지향의 일본인 그 이후’라는 책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이 책 이전까지는 일본문화 비평서로는 루스 베네딕트 여사(Ruth F. Benedict 1887 -1948) 의 ‘국화와 칼(The Chrysanthemum and the Sword)'이 단연 으뜸이었다. 하지만 ’축소지향‘ 등장 이후 ’국화와 칼‘은 금세 빛이 바랠 정도였다. ‘국화와 칼’은 서양인의 시각으로 두루뭉술하다면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인과 한국인의 차이까지 확연히 드러내었으니까 말이다. 필자도 당시에는 무릎을 치며 읽었다. 하지만 필자 생각은 그때와는 좀 달라졌다. 다른 분야는 몰라도 종교건물이나 공공건축물에 있어서는 ‘축소지향’이 아니라 ‘확대지향’이라는 점이다.

지난 주말에 일본 규슈여행을 다녀왔다. ‘더 이상 2세를 생산할 이유도 전혀 없는 터’라 방사능 공포를 무시하고 갔다. 나고야성(名護屋城)이나 구마모토성(熊本城)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였다. 등골이 서늘할 정도였다. 오래 전 도쿄의 황궁이나 나라·교토의 사찰들에서 느낌 그대로였다. 유명한 전래동화 ‘잇슨보오시(一寸法師)’가 떠오른다.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옛날 옛적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외롭게 살았다. 매일 같이 기도를 했는데 내용은 이렇다. ‘손가락만한 아이라도 좋으니 부디 자식 하나 내려주십시오.’ 그러던 어느 날, 손가락만한 아기가 태어나 이름을 잇슨보오시(一寸法師)’로 지었다. 정성들여 키웠지만 나이 들어도 아이는 늘 덩치가 그대로였다. 동네 아이들에게도 늘 놀림감이었다.

잇슨보오시는 열 살이 되자 도시로 떠나기로 작정했다. 노부부는 서운 했지만 밥공기와 젓가락과 바늘을 챙겨주었다. 잇슨보오시는 밥공기는 삿갓처럼 쓰고, 젓가락은 지팡이로 삼고, 또 바늘은 사무라이 칼처럼 허리에 찼다. 강을 건널 때는 밥공기를 배로 삼고 젓가락을 노를 삼아 힘껏 저었다.

마침내 커다란 집 앞에 다다랐다. ‘여보세요! 누구 없어요?’ 하고 소리쳤더니 누가 문을 열고 나왔다. ‘뭔 소리가 들렸는데 아무도 없잖아!’, ‘여기에요! 당신 신발 옆에 있어요!’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며 그를 손바닥에 올린 채로 공주님께 데리고 갔다. 공주님은 잇슨보오시를 아주 귀여워했다. 잇슨보오시는 책장을 넘기거나 먹을 가는 일을 돕고, 때로는 춤추고 노래하며, 때때로 바늘로 칼싸움도 열심히 수련했다.

어느 날 공주님이 산사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못된 도깨비가 만났다. 잇슨보오시는 용감하게 덤볐지만 허사였다. 도깨비가 그를 한입에 꿀꺽 삼켜버렸기 때문이다.

잇슨보오시는 도깨비의 뱃속에 갇혔다. 하지만 바늘로 뱃속을 콕콕 찔러 마침내 도깨비를 굴복시켰다. 공주님이 잇슨보오시의 소원을 물었다. ‘저는 보통사람처럼 키가 컸으면 좋겠어요!’ 공주님이 도깨비가 도망갈 때 버리고 간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자 ‘펑!’하는 소리와 함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엄지동자가 사라진 자리에 훌륭한 청년이 서있는 것이었다.

마침내 잇슨보오시는 공주와 결혼을 하고 시골의 부모님을 모시고 와서 행복하게 살았다.

이 이야기는 일본인의 원형질 같은 소망, 즉 ‘확대지향’을 나타내는 것만 같다. 따지고 보면 건물은 그 시대 기술의 상징을 넘어 정치 철학의 그림자라 할 수 있다. 도쿄의 황궁이나 구마모토성과 같이 거대한 구조물이 그렇고, 역사를 돌아봐도 그렇다. 멀게는 임진왜란을 일으켰고, 가까이는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던 사실만 봐도 그렇다. 최근에는 후쿠시마 방사능 뒤처리까지도 그렇다. 이웃나라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당 기간 ‘나 몰라라!’하는 식이었다. 물론 이어령 교수도 지적한 바 있다. ‘축소지향’의 일본이 ‘확대지향’으로 나갈 때는 결국 엄청난 패배를 초래했다고 말이다. 문제는 그 화(禍)가 이웃인 우리에게 거듭해서 덮쳤다는 사실이다.

일본이 2020년 도쿄올림픽을 유치했다. 세계인의 잔치를 축하하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찜찜한 마음도 전혀 없지 않다. 올림픽을 발판(?)으로 일본인 특유의 ‘확대지향’의 야망을 불태울 것만 같아서 말이다. 우리도 남의 잔치에 떡만 기대할 게 아니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보다 실속을 챙길 묘수를 찾아야 할 것이다.

* 외부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취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