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세요! 여기도 행복! 저기도 행복! 행복이 무슨 인스턴트커피라도 된단 말인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힐링(healing)’이 대세인가 싶더니, 어느새 힐링 대신 행복이 슬그머니 밀고 들어온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힐링도 행복도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박하 시인

청춘 시절, 실연의 아픔도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진다. ‘사랑이 떠나가도 가슴에 멍이 들어도 밥만 잘 먹더라, 죽는 것도 아니더라.’.......이 얼마나 훌륭한 자세인가. 실연을 당하면 그 순간은 갑자기 이승을 하직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견뎌보시라. 세월이 약이다! 긴 인생길에서 보면, 성장통(成長痛)이고 통과의례인 것이다.

요즘에는 행복 구호가 요란하다. 동의해 준적도 없는데 국민 행복 캠페인이라도 벌이는 것 같다. 시도 때도 없이 행복을 외쳐대니, 멀쩡한 사람도 ‘행복강박증’에 걸릴 판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행복 스트레스(탁석산)’라는 책까지 나왔다.

며칠 전, 어느 모임에서 우연히 행복 토론이 열렸다. 평소 알고 지내는 한의사 한 분이 자신의 오지 체험을 들려주었다. 그 분은 십여 전부터 동료 의사들과 함께 매년 가난한 나라를 찾아가 의료봉사를 다닌다고 한다. 한번은 아프가니스탄의 오지마을에 갔단다. 당시에는 탈레반 정권이 무너진 직후라 정국도 불안정하고 민심도 흉흉했다고 한다. 왼 종일 버스를 타고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오지마을로 갔는데 그곳에서 간이 진료소를 차리고 네 시간 정도 가난한 환자들을 진료하는 중에 갑자기 한 청년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대뜸 면담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청년의 말은 이랬다.

‘진료는 고맙지만 여기는 지금 약이 필요한 곳이 아닙니다. 현재로선 빵이 더 필요합니다. 물론 환자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도 빵만 먹을 수 있다면 금방이라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 청년의 말에 일행은 아연실색했다. 마치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일행은 즉석 회의를 거쳐 결국 간이진료소를 걷었다. 그런 다음, 다시 먼 길을 달려 빵을 마련하러 갔다. 좀 더 큰 마을에도 빵 공장은 아예 없었고 몇몇 집에서 빵을 만들고 있었다고 한다. 일행은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여러 마을을 돌면서 빵을 구했다. 마침내 빵 2만 개를 어렵사리 구한 다음 당초 오지마을로 돌아와 배급을 주었다고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행복해하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의료단 일행은 더 이상의 진료를 포기하고 귀국을 했다고 한다. 다만 가까운 미래에 다시 진짜 진료를 위해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뒤로 한 채........그 한의사 분의 얼굴은 아주 편안해 보였다.

아프간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풍요로운가. 그들은 못 먹어서 병인데, 우리는 잘 먹어서 병이니 말이다. 아차! 싶었다. 정말이지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또한 조선시대가 아닌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난 것도 감사하다. 따지고 보면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그리고 보니, 오늘의 이 행복타령이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또한 그 한의사의 체험담을 듣고 내 자신을 돌아보니 부끄럽기 짝이 없다. 별다른 봉사를 한 기억이 없기 때문에 말이다.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또 한 분이 우스개를 하나 했다. 공부를 아무리 많이 한 사람도 결코 행복하지 않다. 석사 따고 박사학위를 딴다 한들 결코 행복하지 않다. 진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박사 위에 또 다른 ‘사’자가 있다는 사실! ‘감사’가 있고, ‘봉사’가 있다고 했다. 다시 말해, 많이 배운 사람일수록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 그 다음으로는 자신의 재능을 주변에 대가없이 베풀어야 한다는 사실! 그럴수록 행복지수가 팍팍 높아진다는 말씀이다. 지금 현재, 당신은 얼마나 행복하십니까? (whpark55@hanmail.net)

글/박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