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하시인

지난 달 초순, 북유럽 여행 중에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 들렀다. 소문대로 세계 제일의 자전거 도시! 실상은 상상보다 더했다. 세 살배기 어린이도 두 발 자전거를 타는 나라, 세 살배기에게 자전거를 가르치는 일이 아버지의 의무란다. 도로의 주인은 자동차가 아니라 숫제 자전거였다. 아가씨도 할머니도 다들 자전거를 타고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것 같다. 나 원 참! 은발의 할머니들이 섹시해 보이다니........그래서 국민 대다수가 비만을 모른단다.

신나게 달리면 바람이 되고, 두 팔을 펼치면 솔개가 되는 기분! 자전거를 맨 처음 배웠을 때 기분이 이랬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에는 자전거가 없었다. 살 형편도 못 되었지만 학교도 가까웠다. 자전거로 통학하는 친구들이 늘 부럽기만 했다.

다행히도 우리 동네 장터로 가는 길목에 ‘곤양 자전거’라는 가게(수리점)가 있었다. 거기에는 나보다 네 살 많은 동이 형이 있었다. 그 형은 만능 재주꾼 부친을 닮아 소년 기술자였다. 그곳은 장날마다 일손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마다 나는 동이 형의 잔심부름을 해주고, 그 대가로 자전거를 빌려 탈 수 있었다. 소위 대물 알바였다.

연습을 끝내고 단독 출격을 하던 어느 아침, 내리막길을 달려갈 때만 해도 황홀했다. 삼거리에서 급커브를 돌다 그만 꽈당 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식당 아줌마가 나타나 개숫물을 길바닥에 뿌렸던 것이다. 그걸 피하려 핸들을 급히 꺾었던 게 화근이었다. 손바닥에서 피가 나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부랴부랴 자전거부터 챙겼다. 빌린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몇 주 전에 벼르던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코펜하겐에서 받은 충격(혹시라도 회춘?) 때문이기도 하고, 그전부터 살 마음도 있었다. 저녁마다 수영강 강변에서 만나는 자전거들을 어지간히 부러웠던 탓이다. 제일 싸다는 인터넷 구매를 마다하고 굳이 매장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국산브랜드로 접이식 자전거, 헬멧, 장갑, 자물쇠 등 일습을 마련했다.

토요일 새벽 드디어 단독 출격을 했다. 집에서부터 회동 수원지까지. 신나게 달리다 보니 개울이 나타났다. 징검다리가 있었지만 개울의 깊이가 얕아보였다. 그냥 페달을 밟았다. 앞바퀴가 갑자기 물 속으로 들어갔다. 운동화가 그만 흠뻑 젖고 말았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신발을 벗어 굴비처럼 엮어 자전거에 매단 뒤, 맨발로 페달을 밟았다. 시간을 보니 벌써 한 시간 반이 지났다. 수영교의 오르막을 오르다말고 체인이 벗겨지고 말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내 재주로는 안 되었다. 뙤약볕 아래 자전거를 끌고 터덜터덜 걸을 수밖에........

월요일 오후에 자전거 대리점을 찾아가 기아를 고쳤다. 통과의례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또 한번의 위기는 안전판 높이 조절! 안전판을 높이면 페달 젓기가 훨씬 편하고, 사이클 선수처럼 폼도 훨씬 멋지다. 하지만 급정거를 할 때면 발이 땅바닥에 닿지 않아 넘어지기 십상이다. 강변 달리기를 끝내고 건널목에 정지를 하려다말고 또다시 꽈당! 경사진 땅에 발이 닿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만 더 바깥쪽이었다면 달려오는 차에 받힐 뻔 했다. 등골이 서늘했다. 그날 돌발 이벤트 기념으로 오른쪽 무릎에 피멍이 남아있다.

‘당장 중고로 팔아야겠소!’ 집사람의 성화가 대단했지만, 왠지 그 성화가 어여쁜 시앗(?)에 대한 질투 같아 보인다. 어쩌겠는가. 자동차도 처음 사면 자잘한 접촉사고가 나듯이, 자전거라고 다를 리가 있을까. 나는 결심을 더욱 굳혔다. 나의 애마부인이 고분고분해지는 그날까지, 아니 탈 때마다 일심동체가 되는 그날까지! 기분이 동할 때마다 정성껏 애무해 주기로 말이다. (whpark55@hanmail.net)

글/박하시인